“열성조 이래 창신(創新)하여 군정을 개혁한 일이 여러 번이었다. 대권의 총람은 고금을 참작하여 심복을 두어 손톱과 어금니같은 훌륭한 군사로 삼아 자신의 손과 발처럼 친히 머리와 눈을 방어하게 하는 일, 철옹성의 업을 공고히 하는 것이 금일의 급선무다. 각국의 대원수 규례에 의거하여 짐은 육해군을 친히 통솔할 것이며 황태자를 원수로 삼을 것이다. 전쟁이나 위급한 일이 아니면 비록 황자나 황손이라도 대장이 될 수 없다. 이에 대해 응당 시행해야 할 온갖 규정을 군부에서 의정하여 품주하고 시행하도록 명한다.”
황자나 황손이라도 대장이 될 수 없다는 것은 이준용이나 의화군을 앞세워 군권을 찬탈하여 군사반란을 도모할 여지를 차단하려는 뜻이다.
1년여의 산고 끝에 1899년 6월22일 ‘원수부관제’가 반포되었다. ‘원수부관제’는 전문에서 다음과 같이 천명했다.
“대황제 폐하는 대원수로서 군기를 총람하고 육해군을 통령하며, 황태자 전하는 원수로서 육해군을 일례로 통솔하여 원수부를 설치한다.”
이렇게 되어 군부는 원수부를 지원하는 일개 정부 부서로 약화되었다. 또한 “어떠한 직임을 막론하고 원수부 관원에는 문사(文事) 관원은 피선될 수 없다”고 하여 군인이 아니면 원수부 관리가 될 수 없음을 못 박았다. 이는 전통적인 문관 통제 원칙을 깨뜨려 군국주의를 추구한 것이 아니라 대한제국의 비상계엄 상황에 맞춘 것이다. 광무 황제는 민영환·이용익 등 문관들에게 참장·부장 등 장관(將官) 계급을 주어 군인 신분으로 전환시킨 뒤 원수부에 발령을 내는 식으로 이 규정을 운용했다.
봉칙 봉령의 경우에 원수부의 총장은 각부 대신에게 ‘지령’할 수 있고 주임 사무로 ‘지조’할 수 있으며 경무사·관찰사·한성부재판소 및 재판소 판사 이하 관원들에게는 주임 사무로도 훈령·지령할 수 있다. 이로써 원수부와 총장은 대한제국 최고 권력기관으로 위상을 높였다. 원수부의 각국 총장직은 황제의 최측근이 돌아가며 순환 보직으로 맡았다. 대한의 군대는 일찍부터 경찰 기능도 수행해 왔는데, 원수부 출범 이후에는 군대의 권한과 위상이 더욱 높아져 대한제국 사회 전체는 비상계엄 상태와 같은 반(半)군정 통제하에 들어갔다. 원수부 관제는 대한제국이 비상계엄 상태의 국내 망명정부임을 반증한다.
광무 황제의 강병정책으로 군사적 균형이 이루어지자 주한 일본공사관과 주한일본군은 은밀하게 암약 방식을 취했는데, 한국 관리에 대한 매수 공작·염탐·사기·밀정 운용·비어 유포·정보 공작·여론조작·분열 공작·이간질 등이었다. 광무 황제는 대한제국의 정보기관으로서 ‘제국익문사(帝國益聞社)’를 설치해 대(對)일본 정보수집 활동을 전개했다.
[글 최문형 그림 박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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