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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희문의 영화세상] 123년 전에도 지금도 “깨어나라 국민이여”
조희문 필진페이지 + 입력 2024-01-04 06:31:00
 
▲ 조희문 영화평론가·前영화진흥위원회 위원장
우리나라에 영화가 처음 들어온 것은 1901년 무렵이다. 프랑스 파리에서 1895년 12월에 처음 대중 상영을 시작한 이후 6년이 지나서야 신기한 근대 문물을 구경하게 된 것이다. 미국인 여행가 엘리어스 버튼 홈스는 황실에서 영화를 상영했다는 이야기를 그의 ‘여행기’라는 책에서 밝히고 있다.
 
1901년 9월14일자 황성신문에는 ‘영화 속 인물의 활동이 실제 사람들보다 낫다(寫眞活動勝於生人活動)’라는 제목을 붙인 논설기사가 실려 있다. 영화를 보고 나서 감상을 적은 일종의 평론이다. 이때 본 영화가 버튼 홈스가 소개한 영화인지, 아니면 다른 경로를 통해 전해진 것인지는 명확치 않다. 기사 내용 중 1900년 6월에 일어난 의화단 사건을 가리키는 ‘북청사변’을 대상으로 삼아 보여 준다는 대목이 있는 것으로 보아 일본의 촬영단이 만든 작품이 아닐까 미루어 짐작되기도 한다.
 
황성신문의 기사는 출처와 시기를 분명하게 밝혀 주는 자료로서는 국내 영화 상영에 대한 최초의 기록이며, 첫 번째 평론이랄 수도 있다. 기사에서 사진(寫眞)이라고 한 것은 활동사진(活動寫眞)이라는 용어를 줄여서 표기한 것이다. 원문은 한자가 많고 표기도 현재와는 다르지만 내용을 요즘 표현으로 바꾼다면 대강 다음과 같은 내용이다.
 
“사람들이 사진을 보고 신기함에 정신이 팔려 입을 다물지 못한 채 참으로 묘하다고 찬탄해 마지 않는다. 사진이란 곧 촬영한 그림에 지나지 않는데도 그것이 배열되어 움직이는 것이 마치 사람이 살아서 움직이는 것과 같으니 가히 살아 있는 그림(活畵)이라 할 만하다. 북청(北淸·중국 베이징)에 전장(戰場)을 펼쳐놓고 군대가 나오는데 걷는 법(足法)이 느리고 빠른 것, 진(陣)을 치고 이를 변형도 하고 분열했다가 되돌아오는 것이며 흩어지고 모이고 총을 메기도 하고 들기도 하고 치고 받고 쏘아 대는 것이 모두 자연스러워 마치 사람이 살아서 움직이는 것 같았다. … 촬영한 그림이 몸(體)이 되고 전기가 그것을 움직임으로써 활동하게 되는 것이니 이처럼 신기한 조화를 부리는 물건은 본 적도 들은 바도 없다. 우리나라는 어느 세월에 이같이 묘한 기술을 터득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탄식까지도 나왔다. 하지만 나는 말하건대 사진 속에서 사람들이 활동하는 것은 내가 원하는 바가 아니요 진실로 바라는 것은 실제 사람들(生民)의 활동이 활발해지는 것이라고 했다. 그랬더니 어째서 그런가, 사람이라면 누구나 활동을 하지 않는가 하고 반문이 왔다. 나는 다시 대답했다. 오늘날 사람들이 활동이라고 하는 것을 보면, 사진 속 인물의 활동은 오히려 생동감이 있는데 비해 살아 있는 사람들은 오히려 제대로 활동을 하지 않는 것이 오늘날 대한의 선비와 같아서 하는 말이다. … 이렇기 때문에 사진 속 인물의 활동보다도 지금 사람들의 활동을 원한다 하는 것이다.”
 
영화를 본 지사(志士) 평론가는 처음 보는 영화의 신기함보다 어지러운 시국이 더 걱정스러웠는지 “깨어나라 국민이여”라고 외치고 있다. 국운이 위태로운데도 수수방관하는 무리들이 많고 마땅한 대책도 내지 못한 채 이리저리 떼거리를 지어 말로만 묘책이라고 내놓을 뿐 누구도 행동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123년이 지났지만 지금의 대한민국 상황을 예견이라도 한 듯 그대로 가리키는 말이다.
 
2024년 새해가 밝았으나 우리 사회는 도약의 변화냐 혼돈의 퇴보냐를 두고 가히 전쟁을 벌이고 있는 중이다. 지난 시절 우리 사회는 품격과 신뢰를 잃었다. 변칙과 거짓말·위선과 막말이 난무했다. 타협과 설득은 사라지고 수적 우위를 앞세운 막무가내의 난폭함이 수시로 나타났다. 사회적으로 지탄받을 일이 생기면 국민 앞에 사죄하고 그에 대한 책임을 지는 것이 자연스러운 모습이었지만 언젠가부터 그런 모습은 사라지고 모르는 일이라고 잡아떼고 다른 사람 탓을 하는 게 다반사가 되었다. 심지어는 국가 공권력을 비난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정치가 국민이 아니라 사사롭게 개인을 방탄하는 도구로 악용되는 것을 지켜보았고 힘을 가진 다수가 폭력 집단으로 돌변하는 과정도 경험했다. 선출된 대통령에 대해 인정도 하지 않았다. 선거 결과에 대한 불복이었고, 민주주의의 기본에 대한 거부였다. 국회의 다수석을 차지하고 있는 야당은 세상에 자신들만이 존재하고 절대 선을 가진 듯 행동했다. 집단의 광기도 횡행했다. 신뢰와 품격이 사라진 야만의 세상이 계속된 것이다. 123년 전 세상은 외부의 위협을 경계했다면 지금의 대한민국은 안으로부터의 붕괴가 더 걱정스럽다. 새해에는 불법과 탈법·폭력을 극복하고 상식과 품격을 되찾을 수 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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