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우석칼럼] 새롭게 쓰는 고골리의 소설 ‘외투’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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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정러시아 시절 외투 한 벌 공무원 연봉의 절반 값
200년 뒤인 지금 20만 원이면 패딩·모직 외투 흔해
세상 좋아졌고 인류의 삶 역시 무한 전진 거듭할 것

조우석 필진페이지 + 입력 2024-01-16 06:31:00

추운 계절에 어울리는 얘기가 하나 있다. 언젠간 해야지 했던 겨울철 외투 얘기다. 그걸 통해 지난 200년 인류의 삶까지를 짚어 보자는 게 오늘 칼럼이다. 외투 하면 제정러시아 시절의 소설가 니콜라이 고골리의 단편소설 ‘외투’부터 생각난다. 이 작품을 두고 대부분의 문학도는 불평등한 이 몹쓸 세상을 개탄하는 쪽이다. 대학입시 논술고사에서도 그렇게 써야 높은 점수를 받는다.

즉 고골리가 당시 러시아 민중의 비참한 삶을 리얼하게 고발했다는 식이다. 이해 못 할 게 아니다. 소설 주인공이 새로 맞춰 입었던 고양이털 외투란 것도 요즘 말로 중저가 제품이다. 그런데도 만년 9등관 하급공무원이 연봉의 3분의 1을 갖다 바쳤다. 조금 좋은 건 연봉의 절반 값이었다. 그걸 모으느라 쪼들리는 삶이 눈물겹다. 더욱이 주인공은 문제의 새 외투를 강도에게 강탈당한다.

되찾으려는 노력도 실패하고 주인공은 끝내 패닉과 고열 속에 숨을 거둔다. 한 인간이 험한 세상의 격랑을 만나 쓰러진 것이다. 하지만 감상주의 푸념 대신 한 번쯤은 이렇게 되물어 봐야 옳다. 고작 외투 하나 때문에 왜 사람이 죽어야 하지? 외투가 200년 전 어마무시한 가격이었던데 비해 21세기 지금은 20~30만 원짜리 패딩이나 모직 외투가 흔하지 않던가?

그런 단순 비교는 논리의 비약이나 일반화의 오류가 수반될 가능성이 없지 않다는 걸 나도 인정한다. 그럼에도 인류 삶에 이런 변화는 어떻게 해서 가능했나를 물어야 우리가 원하는 진짜배기 공부가 아닐까? 이참에 성혜랑이 쓴 책 ‘등나무집’(지식나라, 2000)을 다시 들여다봤다. 성혜랑? 그녀는 김정일의 전처 성혜림의 언니다. 흥미롭게도 그 책에 1920년대 대단했던 잡지 ‘개벽’의 여기자로 유명했던 어머니 김원주(1907년생)의 외투 이야기가 등장한다.

당대의 신여성 김원주는 막상 겨울철에 외투 한 벌 없이 살아야 했단다. 그런 탓에 책 중간에 나오는 “이달 잡지가 나오거든 우리는 돈 안 받아도 좋으니 김원주 씨의 외투를 사 줍시다”란 동료들의 제안이 눈길을 끈다. 당시 잡지사 기자들의 월급은 20원 내외였다. 반면 동아·조선일보 등 일간지 기자의 월급은 30원 내외, 총독부 기관지 매일신보는 월급 50원 정도였다.

한 달 하숙비와 쌀 한 가마가 12원씩 하던 시절이다. 그럼 외투 한 벌은 얼마였지? 짜잔, 그걸 확인했던 게 얼마 전이다. 지난해 신간 중 최고인 미술사학자 최지혜의 ‘경성백화점 상품 박물지’(혜화1117, 2023)를 운 좋게 만났다. 책을 보며 황홀했다. 거의 100년 전 미츠코시·조지아 등 백화점을 통해서 당대의 생활사와 풍속사를 재현해 낸 빼어난 솜씨 때문이다.

놀랍게도 책 중간에 1920~30년대 중반 백화점의 외투와 양복·와이셔츠 등 신사용품의 값이 쫙 뜬다. 대박이다. 1935년을 기준으로 고급 신사복은 한 벌에 70원, 외투는 80원이라고 되어 있다. 그렇다면 시중의 보통 중저가 외투는 40원 내외가 안 될까? 당시 평균 월급쟁이라면 한두 달치 봉급으로 어렵지 않게 외투 구입이 가능했다는 얘기가 된다.

즉 일제하 서울의 외투 값이 지금보다는 엄청 비쌌다. 그러나 100년 전 제정러시아 시절에 비해 절반 내지 반의 반 수준으로 뚝 떨어졌다. 어쨌거나 세상은 좋아지고 있다는 증거다. 신여성 김원주 이후 다시 100년 세월이 흘러 지금 우린 또 다른 풍요의 계절을 살고 있다. 아시는가? 지금까지의 외투 얘기는 경제사의 진실과도 일치한다. 윌리엄 번스타인의 훌륭한 저술 ‘부의 탄생’에 따르면 인류의 삶은 1820년대 이전과 이후로 쫙 갈린다.

1820년대 이전엔 경제성장이란 개념 자체가 없었다. 그때를 기점으로 비로소 인류는 지속적이고 강력한 경제성장을 경험해 지금에 이르렀다. 평균수명·삶의 질·주거 환경과 의식주까지 죄다 좋아졌다. 각종 지표로 확인되는 진실이다. 그건 한마디로 근대화의 물결 덕이며, 그중 대한민국의 성공은 인류사의 전설로 통한다.

그럼에도 과거에 사람 살기가 더 좋았다고 말하는 얼간이가 종종 있다. 우리가 잃어버린 과거에는 삶이 더 단순했고 심지어 영적이었다는 식의 푸념도 한다. 완전 뻥이다. 장담컨대 우리 선조 대부분은 고골리의 ‘외투’에 등장하는 주인공보다 더 열악한 삶을 살았다. 그런데 아시는가? 잃어버린 멋진 과거라는 가짜 신화를 멋지게 포장하는 선수들이 따로 있다.

좌익과 거기에 동조하는 멍청이들이 그들이다. 원시공산사회까진 아니더라도 잃어버린 낙원을 저들은 그리워한다. 그래서 환경주의자들과 합세해 ‘오래된 미래’ 타령을 반복한다. 택도 없다. 근대 이전 인류의 삶은 비참했다. 반면 앞으로 수백 년 올더스 헉슬리의 소설 제목처럼 ‘멋진 신세계’가 우리 앞에 무궁무진 펼쳐질 것이다. 그 얘길 다음에 마저 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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