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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나 연재소설 ‘최초의 당신’ [71] 시도하지 않으면 얻을 수 없다
사랑과 약속의 강 사이에서
김규나 필진페이지 + 입력 2024-04-15 06:30:10
 
 
최주결은 고개를 저으며 입술을 꾹 다물었다. 그의 턱이 단단해 보이는 건 감정을 발설하지 않으려 평생 어금니를 깨물고 살았기 때문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그의 얼굴은 수치스러운 듯 벌겋게 달아올랐다. 몇 차례 마른기침을 했다. 나는 주방으로 가서 그가 내게 해 주었던 것처럼, 그러나 서둘러 물을 끓이고 차를 우렸다. 정하운과 최주결은 말없이 기다렸다.
 
갑순에게 자네와 같은 증상이 온 게 그즈음이었어. 악마의 발톱이 처참하게 그녀를 할퀴었지. 모두가 내 탓이었네. 나는 좀 더 일찍 그녀를 선택해야 했어. 단호하게 내 운명과 사랑을 결정하지 못한 걸 후회했지. 나는 무릎 꿇고 아내에게 약속했네. 그녀의 병을 낫게 해 줘야 한다고. 그 뒤에 헤어지겠다고 말이야.”
 
차를 한 모금 마신 최주결의 목소리는 가늘게 떨렸다.
 
난 연구에 매진했네. 전국의 도서관을 다 뒤져서 눈에 관한 자료들을 찾아냈지. 외국에 있는 지인들에게 연락해서 치료 방법들을 요청했어. 진료실에 있는 기기들은 모두 그때 사용했던 것들이라네. 내가 그렇게 미쳐 있는 동안 세간의 눈을 피해 갑순이 이곳에서 지냈어. 일주일에 한 번 먹을 것·입을 것을 챙겨 서울과 이곳을 오가며 그녀를 보살핀 건 아내였네.”
 
정하운도 처음 듣는 이야기였는지 그 순간 벌어진 입을 한동안 다물지 못했다. 자신을 버리고 연인과 살림을 차리려고 남편이 마련한 집. 아내의 마음이 어땠을지 나 또한 상상되지 않았다.
 
갑순에 대한 사랑도, 아내의 고통도 나를 채찍질했네. 석 달 만에 치료제를 만들었지. 내가 심장전문의였기 때문에 가능했을 거야. 가시는 결과이고 원인은 따로 있다고 생각했으니까. 그러나 결과는 불완전한 것이었네. 치료제 투약 후 12시간 정도만 회복 상태가 유지될 거라 예상했지. 그다음은 아마도 이완되었던 심장의 기능이 급격히 악화되고 죽음에 이르게 될 것 같았어. 임상실험을 할 수 없으니 어떤 결론도 확신할 수는 없었네.”
최주결은 결심하던 순간이 생각났는지 소파에서 결연히 일어섰다.
 
조금만 더 시간이 있다면 확실한 치료법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았네. 하지만 갑순의 증상은 하루하루 나빠졌어. 그 속도라면 얼마 견디지 못하고 죽음에 이를 게 뻔했지. 그래도 나는 연구 결과를 갑순에게 말해 주었네. 그녀는 하루만이라도 완전한 모습으로 내 곁에 있게 해 달라고 애원했어. 나는 갈등했네. 그녀의 목숨을 걸고 해야 하는 것이었으니까. 그러나 시도하지 않으면 얻을 게 없었지. 그녀가 원하는 대로 해 주기로 결심했네. 그녀가 죽는다면 함께 죽겠다고, 만약 완치된다면 그건 운명이라고. 나는 그녀와 남은 생을 함께하겠다고 다짐했네. 진심이었어. 아이들과 아내에게 미안했지만 더 이상 의무와 거짓으로는 살 수 없었네.”
 
그분은 어떻게 됐습니까?”
 
내가 성급하게 물었다.
 
다음 날 아침, 그녀는 거짓말처럼 회복되었지. 일시적이라고 추측하면서도 그녀와 난 기뻤네. 다른 이유로 아내도 기뻐했지.”
 
최주결은 우리에 갇힌 짐승처럼 불안하게 창가를 서성였다.
 
그러나 사라져 버렸어. 갑순이 그날 오후 떠나 버린 거야. 온다간다 말 한마디, 메모 한 장 남기지 않고.”
 
[글 김규나 일러스트 임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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