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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나 연재소설 ‘최초의 당신’ [72] 트러스트 미 재단의 방문
부서진 사랑, 영원한 이별
김규나 필진페이지 + 입력 2024-04-16 06:30:10
 
이쪽저쪽으로 오가며 서성이던 최주결이 걸음을 뚝 멈추었다. 배신감인지 슬픔인지 가늠할 수 없는 표정으로 가슴을 쥐어뜯을 것처럼 손을 얹고 얼굴을 찌푸렸다. 숨이 멎은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가 크게 숨을 들이쉬었다.
 
미칠 것 같았지. 거의 미쳐 있었어. 그런데 얼마 후였네. 누군가 날 찾아왔어트러스트 미’ 재단이라고 했네. 내가 외국 지인들에게 자료를 요청하는 과정에서 알게 되었다고 하더군. 그동안 갑순의 경과를 지켜보았고 자신들이 그녀를 데려갔다고 했네. 하지만 죽었다고 했어. 그녀의 유언대로 시신도 그들이 처리했다고.”
 
최주결은 말을 다 잇지 못한 채 무너지듯 안락의자에 몸을 파묻었다. 트러스트 미 재단이란 말에 나는 잠시 정하운을 쳐다보았지만 그녀는 모르는 체했다.
내가 그녀를 죽인 걸세.”
 
최주결은 순식간에 사랑에 빠진 청년에서 완전히 늙고 지친 노인으로 돌아와 있었다.
 
재단은 내 연구에 대해 알고 싶어 했어. 그녀와 같은 증상을 가진 환자들이 나타나고 있다고 했지. 완치를 위한 연구를 지원하겠다고 했네. 절망에 빠진 의사에겐 뿌리칠 수 없는 지적 유혹이었지.”
 
정하운은 최 박사를 냉정하게, 객관적인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이후의 상황은 알고 있다는 표정이었다.
 
그리고 5년 전, 이 아이가 날 찾아왔네. 자네 같은 몰골을 하고.”
 
최 박사가 정하운을 쳐다보며 말했다.
 
이 아인 부서지고 있었어.”
 
자기 이야기인데도 정하운은 섣불리 최 박사의 이야기에 끼어들려고 하지 않았다. 대신 턱을 괴고 눈을 감았다. 당시를 회상하는 것 같았다.
 
그때 내 연구는 고작 12시간을 더 연장했을 뿐이었네. 망설였지만 이 아이에게 약을 투여했지. 나는 또 한 명을 내 손으로 죽였다는 자책으로 괴로웠다네.”
 
최 박사는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그런데 한 달 뒤, 이 아이가 멀쩡해져서 찾아온 거야.”
 
그는 여전히 믿을 수 없다는 얼굴을 하고 정하운을 향해 고개를 가로저었다.
 
난 모르겠네. 무엇이 이 아일 살렸는지.”
 
나는 기대에 차서 정하운을 쳐다보았다. 그러나 아무 말도 하지 않겠다는 듯 그녀는 입을 꾹 다물었다.
 
이 아이 말대로라면 뜨거운 심장이라고 하더군.”
 
대신 최 박사가 말했다. 부검실에서 했던 그의 말을 나는 비로소 이해했다.
 
“3년 전 아내가 죽은 뒤 나는 연구 자료들을 끌고 이곳으로 왔네. 배우자에 대한 어떤 예의나 책임도 필요 없어졌으니까. 그동안 재단은 내가 연구했던 자료와 치료제를 가져갔지만 그들의 임상실험은 모두 실패했지. 재단은 그들이 얻은 시신 중 몇 구를 해부용으로 가져다주었네.”
 
그것이 내가 지하실에서 본 연구용 시신, 카데바였다.
 
[글 김규나 일러스트 임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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