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 대학 내 친(親)팔레스타인 시위 확산세가 심상치 않다.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와 이스라엘이 전쟁 중인 가운데 뉴욕 컬럼비아대에서 다시 불붙은 시위가 24일(현지시간) 8일째 진행 중이다. 동부를 넘어 중부·서부 대학으로 번지고 있으며 더욱 격렬해진 양상이다. 11월 대선에 초래할 영향도 주목된다.
미국의 친이스라엘 정서는 보편적이고 뿌리 깊다. 각계각층에 유대인 엘리트들이 대거 진출해 있다는 게 이유의 전부가 아니다. 미국은 2차 대전 당시 유대인들의 해방자라는 자부심, 그들이 당한 역사적 고난에 부채감·동조감을 공유한다. 특히 복음주의 기독교인들은 이스라엘에 유대인들이 나라를 건설하고 기독교인(Messianic Jews)으로 거듭날 때 예수재림 등 역사가 완성된다는 신앙적 관점을 가졌다.
이른바 이스라엘 로비는 초당적이며 아무도 거기서 자유롭지 않지만, 유대계 자금 지원을 가장 많이 받아 온 인물로 꼽히는 조 바이든 대통령 행보엔 한층 눈길이 쏠릴 전망이다. 이날 콜롬비아대 시위 현장을 방문한 공화당 소속 마이크 존슨 연방 하원의장도 화제였다. “캠퍼스에서 이런 종류의 증오와 반유대주의가 번성하는 것을 반드시 막아야 한다”며 “총장이 이 혼란을 즉시 수습하지 못한다면 사임할 것을 촉구하고자 이 자리에 섰다”고 하자 학생들로부터 야유가 쏟아졌다.
지난주 네마트 샤피크 컬럼비아대 총장이 철수 요청을 거부한 시위대를 해산해 달라고 경찰에 요구하면서 학생들은 더 반발했고 18일 100여 명이 연행된 이후 시위 텐트가 크게 늘었다. 학교 측 얘기와 달리 시위대 측은 이날 오후 언론 브리핑에서 시위 지속 의지를 분명히 했다. 또 “평화 시위에 대학이 법 집행 기관을 부르지 않겠다는 양보를 얻어냈다”며 학교 측과의 협상 시한이 48시간 연장됐다고 말했다.
AP통신·CNN방송 등에 따르면 동부 대학들 중심이던 시위가 최근 미 전역으로 번지고 있으며 시위 현장이 된 대학도 늘고 있다. 일부 지역에선 대학 측의 요구로 공권력 동원과 시위대 해산·체포가 강행됐다. 이에 나머지 학생과 시민들까지 반발해 시위 참가자들이 늘고 있다는 소식이다.
텍사스대 오스틴 캠퍼스의 경우 이날 기마대를 포함해 진압봉 등 장비를 갖춘 경찰이 진입했다. 시위대와 경찰 간 물리적인 충돌이 빚어졌으며 다수가 연행됐다고 전해졌다. 공화당 소속 그레그 애벗 주지사는 엑스(X)에 텍사스대 시위 진압 영상을 게시한 뒤 “체포가 진행 중이고 모두 해산할 때까지 계속될 것”이라며 “이 시위자들은 감옥에 간다. 텍사스의 모든 공립대학에서 증오로 가득 찬 반유대주의 시위 참여 학생들은 쫓겨나야 한다”고 입장을 밝혔다.
오하이오주립대 캠퍼스에서도 시위 도중 두 명이 체포됐다. 이 학교 대변인은 “어제 시위가 다른 학생들과 교수진·교직원을 방해했다”며 “여러 차례 경고를 보냈으나 방해 행위가 계속돼 두 명이 체포됐다”고 전했다. 학교 측은 학생 시위대가 있는 곳에 대학 경찰을 계속 배치할 방침이다.
뉴욕대에선 22일부터 학생들의 텐트가 늘어나고 수백 명이 시위에 참가했다. 당일 뉴욕경찰은 133명이 연행됐으며 무질서 행위 혐의로 법정출두 소환장을 받은 뒤 풀려났다고 발표했다. 또 브라운대에서 이날 오전 학생 90여 명이 텐트를 설치한 후 농성을 벌이기 시작하자 대학 측은 학교 정책 위반이라며 징계를 예고했다.
보스턴의 에머슨대에서도 80여 명이 전날 캠퍼스 안뜰을 점거한 뒤 시위를 벌이고 있다. 법 집행 조치 임박을 알리는 현지 경찰의 경고가 나온 상태다. 하버드대는 시위에 대비해 22일 대부분의 출입문을 닫아 걸고 학교 신분증 소지자만 출입할 수 있도록 했다.
미네소타대에선 전날 경찰이 도서관 앞 시위 텐트를 철거하는 과정에서 시위대 아홉 명이 연행됐다. 이후 이들의 석방을 요구하는 집회가 이어지기도 했다. 예일대에선 22일 시위대 48명이 텐트 시위 해산을 거부하다 경찰에 체포됐다.
서부의 캘리포니아대 버클리 캠퍼스에 전날까지 30개의 시위 텐트가 들어섰고 같은 날 서던캘리포니아대(USC)에선 텐트 농성 중인 학생들을 학교 안전요원들이 제지하자 저항하는 등 소란이 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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