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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나 연재소설 ‘최초의 당신’ [99] 배우자가 바람피우지 않을 확률
허술한 외도, 너무 쉬운 비밀번호
김규나 필진페이지 + 입력 2024-05-29 06:30:10
 
 
동우가 사라진 집에서 하운은 온종일 비행기 사고 소식이 보도되는 뉴스를 찾아 텔레비전 화면을 쳐다봤다. 승객과 승무원 대부분이 사망한 대형 사고였다. 현장은 참혹하고 유족들은 통곡했다.
 
죽지. 차라리 죽지. 그러면 너를 위해 울어주었을 텐데.”
 
하운은 텔레비전 앞에 앉아 중얼거렸다.
 
동우의 서재에서 하운은 서성거렸다. 조심스럽게, 책장을 살피고 서랍들을 열어 보았다. 천박한 짓이라고 스스로 마땅치 않아 하면서도 멈출 수 없었다. 동우의 컴퓨터를 켜고 즐겨찾기와 방문 기록을 열어 보았다. 인터넷 시작페이지로 설정된 포털사이트에 로그인하기 위해 동우의 아이디를 입력하고 이것저것 비밀번호를 넣어 보기도 했다. 하운은 자신이 찾는 것이 외도의 증거인지, 불륜이 아니라는 확신인지 알 수 없었다.
 
새로울 것도 없는 외도, 기자든 사업가든 정치인이든 예술가든 평범하기 그지없는 이웃집의 남편들까지, 아니 아내를 포함한 많은 부부까지 불륜이나 외도 혹은 바람이란 단어와 무관하게 사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외도라는 의식조차 없이 자신의 결핍을 충족시키고자 솔직한 욕망을 드러내는 것이 왜 나쁘냐고 주장한다면 과연 매도할 수 있는 것인지도 하운은 자신할 수 없었다.
 
그러나 남편이 바람을 피운다면, 피해자 역할만은 절대 하지 않겠다고 하운은 장담했었다. 그 꼴을 어떻게 보고 사느냐고 호언했다. 시시비비를 가리고 책임을 묻고 반성을 요구하리라. 정신 못 차리면 이혼을 불사하리라. 그것이 생에 대한 의무이자 권리라고 믿었다.
 
사랑하는 미숙 씨, 생일 축하해요. 당신은 삶이 내게 준 가장 소중한 선물이에요. 지금껏 내 삶을 이토록 감사하게 여겨 본 적이 없습니다. 절대 누구와도 나누고 싶지 않은 당신. 고맙습니다, 내 곁에 있어 줘서. 사랑합니다, 당신만을. 미안합니다, 당신과 매일 함께 있어 주지 못해서. 한 번도 신에게 무릎 꿇은 적 없지만 오늘은 당신을 위해 기도합니다. 우리가 영원히 함께할 수 있기를. 내겐 오직 당신뿐입니다. 그대의 동우. p.s. 이번 러시아 여행은 오직 당신만을 위한 선물입니다.’
 
남자의 외도는 허술하고, 남편의 비밀번호는 너무 쉬웠다. 하운은 동우의 배신이 자신을 아프게 할 거라고 생각한 적 없었다. 어쩌면 동우가 자신을 배신할 거라는 가능성에 대해 추측하지 못했다는 것이 더 정확했다. 동우만은 절대 다른 여자에게 눈 돌리지 않을 거라고 자만했었다. 어리석게도.
 
하운을 상처 내는 건 동우의 외도 그 자체가 아니었다. 그에게 여자가 있다는 걸 확인한 순간부터 걷잡을 수 없이 초라해지고 움츠러들고 하찮아지는 그녀 자신이었다. 남편이 사고 비행기에 타지 않았다는 걸 알았으면서도 외도나 바람이라는 단어를, 여자의 존재를 결코 입 밖에 내놓지 못하도록 만드는 두려움이었다. 별일 아니라고, 오해한 거라고 동우가 뻔한 거짓말을 해 주길 간절히 바라고 있는 그녀 자신의 비겁함이었다.
 
회사에서도 도무지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작가의 원고를 읽다가 교정해야 할 것들을 놓치고 편집 디자인에서 꼭 챙겨야 할 것들을 잊었다.
 
[글 김규나 일러스트 임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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