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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가 책을 차례로 출간하자 많은 독자가 다양한 질문을 해 왔습니다. 그 과정에서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필자가 어떤 생각으로 책을 썼는지 밝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독자들은 우선 ‘우리나라 삼국지’는 역사책이 아니라 소설이라는 점을 인지하고 있어야 합니다. 그렇기에 역사를 철저한 고증을 거쳐 바로 기술하고자 했지만 순수한 역사 기록과는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역사 소설가는 사료의 행간을 메워 시대 전체를 복원해 내는 일을 합니다. 그러다 보니 허구의 사건이나 인물이 등장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역사 왜곡 논란이 종종 일어납니다. 이에 논란이 되는 부분을 권별 또는 장별로 짚어 보고 설명하겠습니다.
제1권 삼국의 태동
삼국시대 초기의 역사 기록엔 신화와 전설이 혼재돼 있습니다.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를 어떻게 소설로 형상화할지를 쓰는 내내 고민했습니다. 그 결과, 틀은 기록의 원형을 유지하되 내용은 사실적으로 각색했습니다.
그중에서도 자명고(自鳴鼓)는 필자가 가장 신경 쓴 부분입니다. 정교한 기계 장치나 마법의 힘으로 움직인다는 건 너무 판타지스럽기에 사람이 북을 두드렸다는 식으로 사실감 있게 풀어냈습니다.
고구려 시조 주몽이 등장하는 건국 신화는 대체로 원형을 유지했습니다. 이규보는 ‘동명왕편(東明王篇)’에서 “처음에는 이를 귀신과 환상을 다루는 세속적인 민담으로 여겼는데, 거듭 들여다보니 성스러운 신화이기에 기록한다”고 했습니다. 합리적인 유학자가 신이(神異)한 이야기를 그대로 적었다는 것은 역사적으로 의미를 지닌다 할 수 있습니다.
제2권 삼국의 정립
2권에서는 신라의 시조 박혁거세가 등장합니다. ‘삼국사기’의 기록을 기준으로 하면 신라가 고구려보다 앞서 건국되었으니 박혁거세를 먼저 다루어야 하는 게 아니냐고 생각하는 분이 계실 겁니다. 저도 이 부분에 관해 고심했지만 작품의 극적인 효과를 위해서 고구려의 건국을 먼저 보여 주는 게 좋다고 판단했습니다. 필자는 특정한 국가를 편애하지 않으며 삼국을 공정히 다루었습니다.
박혁거세 이야기 가운데 마을의 가축들을 돌보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런 일화를 굳이 넣은 이유는 임금의 덕목 중 가장 중요한 것이 백성을 아끼고 돕고자 하는 마음이라 여겼기 때문입니다. 당시는 가축이 백성의 중요한 재산이었기에 이를 치료하는 재주와 정성을 쏟는 태도를 보임으로써 성군(聖君)이 될 인물임을 부각시켰습니다. 필자가 수의학을 전공했다는 점도 영향을 끼치지 않았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2권에서 그려진 색다른 인물이 있다면 태조왕의 모친인 수향을 들 수 있습니다. ‘삼국사기’에는 부여 태후로 기록돼 있습니다. 모본왕 시해의 배후로 추정되는데, 어떤 연구자는 그녀를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쿠데타 주역이라 표현하기도 했습니다. 필자는 그녀가 권력을 잡아 가는 과정을 역사적 상상력을 발휘하여 자연스럽게 풀어냈습니다.
모본왕의 죽음과 나이 어린 태조왕의 즉위 그리고 부여 태후의 수렴청정(垂簾聽政) 뒤로 수향과 모본왕의 악연, 재사와의 관계 그리고 쿠데타로 이어지는 일련의 사건이 펼쳐집니다.
또 태조왕 편에서 항상 논란이 되는 것은 태조왕에 이어 왕위에 오르는 수성 왕자 즉 차대왕과 신대왕·백고 왕자 등이 과연 삼국사기에 기술된 것처럼 태조왕의 동모제(同母弟), 즉 동복(同腹) 동생이 맞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하기에는 나이 차가 너무 큽니다. 후한서에는 수성왕자가 태조왕의 장자로 기록되어 있는데 이것이 맞는 것 같습니다. 신채호는 같은 의견에서 한 발 더 나아가 수성을 장서자(長庶子)로 보았기에 과감하게 이를 따랐습니다.
제3권 해상왕국 백제
3권에서는 근초고왕과 근구수왕이 이룩한 찬란한 백제 문명의 기틀을 닦은 고이왕의 치적을 널리 알리려 애썼습니다. “백제는 고이왕이 전부다”고 하는 연구자가 있을 정도로 그 시대, 그리고 그 시대에 일어난 변혁은 눈부십니다.
이 책에서 다룬 관나부인 이야기도 논란의 여지가 있습니다. ‘삼국사기’에는 “왕이 관나 부인을 가죽 부대에 넣어 서해에 빠뜨렸다(王以 貫那夫人 直革囊 投之西海)”고 서술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낙랑군과 서안평이 평안도와 압록강 하구에 있었다는 일부 학설 탓에 관나 부인을 강물에 던진 것으로 잘못 기술한 책이 많이 있습니다. 만약 한(漢)나라가 지배했던 낙랑군과 서안평이 평안도에 걸쳐 있었다면 부인을 바다에 던질 생각은 못 했을 겁니다.
그런 까닭에 낙랑군과 서안평이 평안도에 있었다는 설은 큰 모순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지역의 비정(比定) 문제는 앞으로도 논의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백제 출신의 진정을 왜의 신공왕후 남편으로 설정한 부분도 ‘일본서기(日本書紀)’와 달라 논란의 여지가 있습니다. 최근 연구에 따르면 근초고왕 시대부터 백제 세력이 일본을 통치했을 개연성이 커지고 있습니다. 백제의 일본 경영을 구현하는 상징적인 존재로 진정을 등장시켰을 뿐입니다. 그의 일화를 통해 그 당시 백제와 왜국의 관계를 보여 주고자 했습니다.
제4권 광개토태왕
4권에서는 백제와 고구려의 운명이 어떻게 교차했는지 형상화하는 데 주력했습니다. 사료만으로는 당시의 상황을 입체적으로 표현하기 어렵기에 가상의 인물을 등장시켰습니다. 특히 기록이 부족한 백제는 해씨 형제를 등장시켜 당시 양국의 치열한 전쟁에 시달리던 백성들의 삶을 현실감 있게 표현하고자 노력했습니다.
혈구도 해전과 관미성 전투를 다룬 부분에서는 관미성의 위치 문제가 대두됩니다. 강화도에 있었다는 설과 관미성이 통일 전망대가 있는 파주 오두산성이라는 설이 있는데, 둘 다 일리가 있습니다. 그럼에도 필자가 강화도를 관미성으로 비정한 이유는 당시 백제의 무적함대와 맞서 싸운 고구려 수군의 해상 전투를 좀 더 사실적으로 묘사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거란 정벌 과정은 광개토태왕릉 비문을 바탕으로 재구성했습니다. ‘삼국사기’에는 392년으로 연대가 기록되어 있지만 당대 고구려인이 남긴 비문이 더 신빙성이 있기에 395년으로 설정했습니다. 백제와의 전투를 끝낸 고구려군이 곧이어 거란을 공격한 것으로 서술했습니다.
제5권 대륙의 패자
5권의 주인공은 단연 고구려의 광개토태왕입니다. 태왕을 어떻게 묘사할 것인가는 많은 역사 소설가의 고민거리입니다. 그가 우리 역사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워낙 크기에 다른 인물을 다룰 때보다 신경을 많이 썼습니다.
필자는 광개토태왕의 거란 정벌을 매우 중요한 사건으로 봅니다. 그래서 거란족과 고구려의 전투를 보다 사실에 가깝게 묘사하려 애썼습니다. 고구려가 거란을 지배하게 된 건 백제·후연·왜 등을 굴복시킨 일 이상으로 커다란 의미가 있습니다. 그들을 통제함으로써 고구려는 대륙의 정세를 좌우하는 위치에 서게 됩니다.
광개토태왕이 백제군을 물리칠 때의 전술 역시 당시의 상황을 고려해 구체적으로 묘사했습니다. 더불어 위기에 빠진 신라를 구한 태왕이 중원에 삼한(三韓)을 통치하는 기관인 한예관부를 만드는 것으로 그렸습니다. 이로써 고구려가 신라를 직접 지배하지 않으면서도 상당한 구속력을 발휘했다는 점을 드러냈습니다.
한예(韓穢)라 함은 고구려인이 한강 이남의 삼한 사람을 통칭하는 말입니다. 광개토태왕이 한예관부를 설치함으로써 우리나라는 서기 400년경에 실질적인 삼국 통일을 이루게 되었습니다. 이때부터 우리나라는 한민족으로서의 동질성(同質性)을 갖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북한 학계에서도 이때 고구려가 삼국을 통일했다고 주장합니다.
광개토태왕의 통일이 신라의 그것과는 다른 성격을 지녔기에 직접 비교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고구려 문화가 이때를 기점으로 백제·신라·가야에 널리 전파된 것만은 분명합니다. 그래서 필자는 이 부분을 강조했습니다.
영천신제는 전적으로 필자의 상상력에 의한 것입니다. 광개토태왕의 죽음은 정확히 기록된 바 없기에 다양한 설이 돌고 있습니다. 어떤 책에서는 전쟁터에서 화살을 맞고 붕어했다고 하고, 다른 책에는 궁궐에서 병사했다고 쓰여 있기도 합니다. 심지어는 복상사로 돌아갔다는 얘기까지 있습니다. 어떤 설도 명확하지 않으므로 선조의 기상을 기리는 게 낫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여러 책과 문헌을 참고해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가운데 용이 내려와 태왕을 모셔 가는 것으로 기술했습니다. 몇 달 동안 고민한 끝에 나온 영천신제 장면은 여러 학자가 찬사를 보낼 만큼 미려하다고 자부합니다.
제6권 백제의 중흥
6권에서 필자가 고민한 부분은 도미 부인이었습니다. 백제의 어두운 면을 지나치게 부각하는 듯해서 뺄까도 생각했지만 정사인 ‘삼국사기’에 실려 있고 사료에 워낙 여성 얘기가 없어서 수록했습니다. 백제의 밝은 면을 보여 주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해서 아쉬운 생각이 듭니다. 이는 승자인 신라의 기록이 많이 남을 수밖에 없는 역사의 한계 때문입니다.
대륙 백제는 ‘남제서(南齊書)’에 실려 있는 백제 관련 기록을 참조했습니다. ‘삼국사기’를 보면 “위나라가 우리를 침공하니 물리쳤다(魏遣兵來伐 爲我所敗)”는 기록이 있습니다. 위는 중국 한복판에 있는데, 어떻게 한반도 남부에 있는 나라를 칠 수 있었을까요? 배를 타고 와서 공격했다거나 위가 아닌 고구려가 공격했다거나 하는 주장도 있지만 설득력이 없습니다.
‘남제서’에는 목간나와 사법명 등 위와의 전투에서 활약한 백제 장군들의 활약상이 구체적으로 서술되어 있습니다. 필자는 이를 근거로 학계에서는 소수설로 대접받고 있는 백제의 대륙 정벌설을 과감히 도입했습니다.
우산국 정벌에 목각 사자를 이용했다는 설화를 살려 그려낸 신라 장군 이사부의 모습은 여러분에게 독도 영유권을 주장하는 일본에 대항할 역사적 근거를 제공합니다.
무령왕의 치적을 언급한 부분에서는 백제의 일본 경영을 구체적으로 묘사했습니다. 현재, 일본 와카야마현(和歌山縣) 하시모토시(橋本市) 스다하치만신사(隅田幡神社)에 보관된 인물화상경(人物畵象鏡)은 백제의 일본 지배를 증명하는 유물입니다. 이 거울은 백제 왕이 왜 왕에게 하사한 청동 제품으로 지름이 19.8cm이고, 둥근 형태로 바깥 둘레에 글자가 새겨져 있습니다. 뒷면에는 9명의 왕족이 양각돼 있습니다.
“서기 503년 8월10일 대왕(백제 무령왕) 시대, 남동생인 계체왕이 자사가궁에 있을 때 사마(무령왕 이름)께서 아우의 장수(長壽)를 염원하여 보내노라. 개중비직과 예인금주리, 두 사람을 파견하여 최고급 청동 200한으로 이 거울을 만들었도다.(癸未年八月十日 大王年 男弟王 在意紫沙加宮時 斯麻 念長壽 遺開中費直穢人今州利二人等 取白上銅二百旱 作此鏡)”
청동 거울의 명문은 백제 무령왕이 친동생인 계체왕의 장수를 기원하면서 만들었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필자는 이를 비롯한 여러 자료를 정리하여 무령왕의 동생인 사아(斯我)가 황음무도한 대화국의 무열왕(武烈王)을 몰아내고 계체왕이 되는 것으로 구성했습니다. 비록 논란이 되긴 하지만 백제에 외적이 쳐들어올 때마다 대규모 군대를 파견해 도왔던 것이나 훗날 일본 왕이 스스로 무령왕의 후손이라 밝힌 점을 보면 왜국이 백제의 분국(分國)이라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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