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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권에서는 신라 혜초보다 무려 2백 년이나 앞서 인도를 방문한 백제의 학승 겸익을 다루기도 했습니다. 혜초는 ‘왕오천축국전(往五天竺國傳)’이 돈황 문서에서 발견되어 유명하지만 겸익은 누구인지 모르는 사람이 많을 겁니다.
혜초는 귀국하지 않고 당나라에 머물렀지만 겸익은 인도에 갔다가 백제로 돌아와 불교 발전에 크게 공헌했습니다. 겸익과 같이 개척 정신을 가진 인물을 역사 속에서 발굴해 널리 알리는 것이 필자의 의무라고 생각합니다.
제7권 신라의 흥기
7권에서 눈길을 끄는 인물은 단연코 신라 진흥왕입니다. 후진국이었던 신라가 백제와 고구려를 능가하리라고 누군들 예측했겠습니까. 이를 가능케 한 진흥왕은 문무왕과 함께 신라 최고의 인물이라 할 만합니다.
필자는 그가 어떻게 신라의 영토를 넓히고 국력을 신장시켰는지를 구체적으로 살펴보았습니다. 국제 정세를 파악하는 안목과 갈림길에서 망설이지 않는 결단력이 그를 위대한 국왕으로 만든 것입니다.
진흥왕을 치켜세우면서 상대적으로 폄하된 인물이 백제의 성왕입니다. 그는 나라의 부흥을 이끈 인물이지만 진흥왕의 계책에 속아 한수 유역의 땅을 빼앗기고 죽임을 당했습니다. 필자는 성왕이 진흥왕 못지않게 뛰어나지만 불운한 인물이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그가 이룬 업적을 보여 주려 애썼습니다.
바보 온달과 평강 공주는 너무도 유명한 이야기라서 오히려 신경이 쓰였습니다. 훗날 명장으로 성장하는 온달이 길거리를 배회하는 타고난 바보였다고 할 수는 없었기에 그의 부모에 관한 얘기를 허구로 만들어 지금까지 내려오는 설을 받쳐 주었습니다.
미실에 관한 이야기는 전적으로 김대문이 쓴 ‘화랑세기(花郞世紀)’에 의존했습니다. 이 책의 필사본이 발견된 후 학계에서는 진위를 놓고 치열한 논쟁을 벌였습니다. 필자는 ‘화랑세기’가 파격적인 내용을 담고 있어서 진짜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 책에 등장하는 미실의 행적은 조선 시대라면 감히 상상할 수조차 없는 일입니다. 위작으로 보는 쪽에서는 이 책이 20세기에 박창화에 의해 창작되었다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아무리 천재라 해도 유교적 가치관이 지배하는 시대에 미실과 같은 존재를 상상하는 일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최근에는 이 책을 진짜라 믿고 신라사 연구의 자료로 쓰는 사람이 늘고 있다 합니다.
미실은 신라사의 색다른 면모·신라 왕실의 감춰진 이면을 드러내는 독특한 인물입니다. 그녀의 이야기를 독자에게 들려줌으로써 삼국 시대만의 다른 면모를 보여 주고자 했습니다.
제8권 살수대첩
8권에서는 모든 사건을 다양한 시각으로 바라봤습니다. 당시의 상황을 중국의 수서(隋書)·자치통감 등에 의존해서 파악해야 하는 처지에서는 역사의 진실을 알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사료의 한계에서 오는 좁은 시야를 넓히기 위해 갑절로 노력했습니다.
우선 ‘삼국사기’ 등에 실린 수 문제가 보낸 장문의 국서는 과감히 축소했습니다. 사료에 기록된 것은 사관의 관점이 반영되기 때문에 공정하다고 할 수만은 없습니다. 일례로 ‘수서’ 등에 적힌 기록만으로는 598년에 벌어진 일들을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어찌하여 정병 113만 대군 중에서 가리고 가려 뽑은 수나라 30만 별동군은 고구려와 제대로 싸워 보지도 못하고 참패했을까. 무슨 일이 있었기에 ‘수서’ 등에서 전쟁의 결과를 모호하게 서술했을까. 수 문제는 왜 다시 고구려를 공격할 생각을 하지 못했을까. 의문이 꼬리를 물고 이어집니다.
단재 신채호가 ‘조선상고사(朝鮮上古史)’에서 언급했듯이 598년 고수 전쟁은 수군이 대패했습니다. 고구려 측의 기록이 남아 있지 않기 때문에 단정 지어 말할 수는 없지만 역사 소설로서 당시 있었음직한 일을 유추해 보았습니다.
고구려 장군 강이식을 고수 전쟁의 영웅으로 설정함으로써 현실감을 부여했습니다. 강이식에 관해서는 진주 강씨 족보를 참조했습니다. 신채호가 쓴 ‘해상잡록(海上雜錄)’에서도 그의 이름을 찾을 수 있습니다.
이 책에서는 특히 영양왕의 뛰어난 능력을 부각시켰습니다. 을지문덕과 같은 인재를 발탁하고 유효적절하게 활용한 것이나 제2차 고수 전쟁에 대비해서 말갈족·거란족·돌궐 등 주변 부족을 고구려 편으로 끌어들인 것은 그가 누구보다 탁월한 영도자임을 보여 줍니다.
또한 시베리아 하바롭스크에서 고구려 유물이 출토되는 것을 참고해 북빙해(北氷海)라는 가상의 지명을 동원했습니다. 이곳은 지금의 캄차카반도와 오호츠크해를 상정한 것입니다.
을지문덕이 흑수부와 속말부 등을 아우르는 장면은 필자의 상상력으로 꾸며 낸 것입니다. 고구려와 말갈족의 관계를 생각하면 충분히 가능한 설정입니다.
제9권 연개소문
9권은 필자의 주관적인 역사관이 개입될 여지가 많았습니다. 그래서 더욱더 한쪽에 치우치지 않으려고 애썼습니다. 되도록 있는 사실을 그대로 썼고, 사료에 적힌 내용도 몇 번이고 다시 생각해 봤습니다.
예를 들어 선덕여왕의 나이, 평소 김춘추를 어찌 생각했는지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후에야 그녀가 조카 춘추를 꾸짖는 장면을 그려낼 수 있었습니다.
연개소문에 관해서는 워낙 논란의 여지가 많습니다. 민간에서 구전되는 설화의 내용도 다양하고, 인물평도 가지각색입니다. 구국의 영웅이라 높이 평가하는 이도 있고, 희대의 역적이라 평가를 절하하는 이도 있습니다. 필자는 김용만의 ‘새로 쓰는 연개소문 전(傳)’에 기초하여 그의 면모를 구현했습니다. 그의 활약상과 함께 성장 배경을 보여 줌으로써 인간적인 모습까지 형상화했습니다.
이 책에 서술된 고구려와 당나라, 두 문명의 충돌 원인과 고당 전쟁의 전개 과정 그리고 주필산 전투·안시성 전투 등에 관한 구체적인 묘사는 수없이 거듭된 논란에 종지부를 찍었습니다.
예를 들자면 ‘당서(唐書)’에서 안시성 전투를 부각한 것은 주필산 전투에서 고구려군에 당한 참패를 호도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런 식으로 고당 전쟁의 발발부터 당 태종의 죽음에 이르는 과정을 역사적 사실에 따라 합리적으로 풀어 나갔습니다.
다만 등주 상륙 작전은 관련 사료나 연구서가 전혀 없었기에 중국의 여러 지역에서 전해 오는 연개소문의 서토 정벌에 관한 전설을 참고했습니다. 설인귀와 연개소문이 등장하는 경극이 중국 전역에 퍼지면서 후대에 만들어졌다는 설도 있지만 그 나름의 역사적 의의가 있기에 참조하여 등주 공략 장면을 임의로 구성했습니다.
제10권 압록강은 흐른다
마지막 권에서는 백제와 고구려가 멸망하는 과정을 그렸습니다. 필자는 이 부분을 쓰면서 가슴이 너무 아팠습니다. 특히 김춘추가 외세를 끌어들여 동족(同族)의 나라를 멸한 것에 분노를 느꼈습니다. 하지만 글을 쓰면서 되도록 그의 입장이 되어 보려고 했습니다.
그가 당나라에 원병을 청할 수밖에 없었던 상황을 고려하고, 되도록 편견 없이 그의 행적을 따라갔습니다. 김춘추의 실책은 다행히 그의 아들인 문무왕의 치적으로 상쇄할 수 있었습니다. 만약 문무왕이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다면 우리나라의 역사는 비참하게 흘러갔을 겁니다.
‘삼국사기’에 기록된 백제의 멸망 과정에서 신라 태자 법민이 의자왕을 치졸하게 욕보이는 장면이 나옵니다. 필자는 이 책에서 문무왕을 성군(聖君)으로 그리고 싶었기에 그 역할을 김춘추로 돌렸습니다. 소설적 허구라 여기시고 필자의 의도를 이해해 주기 바랍니다.
내부에 배반자가 있으면 아무리 철옹성 같은 나라도 무너지는 법입니다. 필자는 고구려와 백제의 멸망 원인을 그들 안에서 찾았습니다. 그에 비해 신라는 관창과 원술 그리고 구진천 같은 훌륭한 애국자가 있었기에 전쟁에서 이기고 나라를 굳건히 지킬 수 있었습니다. 필자는 독자가 이 점을 느낄 수 있기를 바라며 글을 썼습니다.
고구려의 뒤를 이어 대조영의 발해가 등장하는 것으로 800년의 대하 역사소설은 결말을 맺습니다. 총 345회에 이르는 대단원의 막을 내리면서 새삼 18세기 영국의 저명한 역사가인 에드워드 기번의 ‘로마 제국 흥망사’라는 책이 떠올랐습니다. 기번은 로마 제국의 멸망 과정을 통해 역사의 가르침을 독자에게 전했습니다. 우리도 백제와 고구려의 멸망을 통해 배워야 합니다.
20세기 후반 한국 독서 시장을 강타한 폴 케네디의 ‘강대국의 흥망’이라는 책을 보면 아무리 강성한 나라도 결국 멸망하게 됩니다. 고구려와 백제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비록 안타까운 일이지만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현재의 우리가 할 일은 그 과정을 똑바로 들여다보고 그 속에서 경험과 교훈을 얻는 겁니다. 성공보다는 실패로부터 배울 점이 더 많으니까요. 그래서 건국사만큼이나 멸망사가 중요한 겁니다.
‘우리나라 삼국지’를 읽고 조완규 전 서울대 총장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는 이 책에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 역사는 흘러간 사건이 아니라 오늘날에도 반복되는 일이라는 사실을 가르쳐 준다. 우리를 둘러싼 오늘날의 국제 정세도 이 책에 서술된 당시의 상황과 별반 다를 바 없다. 우리가 유념할 것은 나라의 흥망은 집권층과 백성들의 구국 의지가 한 몸이 되어 헌신할 수 있느냐에 달렸다는 점이다.”
역사란 끊임없이 흐르는 압록강처럼 긴 강입니다. 고구려와 백제의 문화와 기상은 발해와 대신라로 이어져 민족의 번영을 이루었습니다. 우리의 이야기는 앞으로도 끊이지 않고 이어질 겁니다.
과거 십여 년의 피 말리던 고초 끝에 20년 전인 2005년 우리나라 삼국지를 출시했지만 미흡한 점이 많아 수정에 수정을 거듭해 재출간을 앞두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조정진 스카이데일리 대표의 요청으로 출간 전 먼저 신문에 선보이게 되었습니다.
우리나라 삼국지를 쓰기 시작한 30대의 팔팔한 청년에서 이제는 70살이 넘어 어느덧 눈가에 잔주름이 무성한 백발노인으로 남모르게 늙었습니다. 회고해 보면 근 35년을 이 책에 매달렸습니다. 아직 황량일취몽의 좁쌀이 익기도 전입니다. 아무쪼록 독자 여러분의 꾸준한 관심과 성원을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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