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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나 연재소설 ‘최초의 당신’ [115] 새로 시작하기 좋은 아침
키스는 입술로만 하는 게 아니에요
김규나 필진페이지 + 입력 2024-06-21 06:30:10
 
 
심장에 장치한 시한폭탄의 타이머가 잠시도 쉬지 않고 째깍거렸다. 무엇이라도 해야 한다며 서두르고 싶었다. 하지만 하운의 차를 타고 서울에 올라가기로 약속한 시각까지는 한 시간 정도 여유가 있었다.
 
나는 돌계단을 밟고 해안으로 내려갔다. 유난히 따뜻한 겨울이라는 기상청의 예보대로 밤마다 내린 눈은 자취 없이 사라지고 없었다. 태양은 수평선 위로 얼굴을 내미는 중이었다. 수평선도 물결도, 미세한 모래 한 알까지 어둠 속에서 깨어나고 있었다. 그 앞에 서자 흥분이 가라앉았다. 바다를 벗어나는 태양과 반대로 나는 허술한 장비를 메고 수심도 알 수 없는 잔혹한 바닷속으로 혼자 걸어 들어가는 기분이었다. 멀쩡해 보이지만 나의 심장이 버틸 수 있는 시간은 단 이틀, 그 안에 무사히 탐험을 마치고 안전하게 뭍으로 올라와야 하는 것이다.
 
새로 시작하기 좋은 아침이죠?”
 
하운의 목소리가 들렸다. 뒤를 돌아보았다. 멀리 소나무가 움켜쥐고 있는 높은 산마루를 배경으로 그녀가 모래를 밟으며 나를 향해 걸어왔다. 숄로 어깨를 감싼 그녀의 머릿결이 바람에 흩어져 나부꼈다. 빨간 립스틱을 지운 그녀의 얼굴은 창백해 보였다. 이마에 흘러내린 머리카락이라도 쓸어 올려주고 싶었다. 하운이 내 앞에 마주 섰다. 이제 막 떠오른 붉은 햇빛이 그녀의 뺨을 분홍색으로 물들였다.
 
아름다운 눈이네요.”
 
그녀가 멀쩡해진 내 눈을 깊이 들여다보며 말했다. 나의 망설임과 달리 그녀가 손을 들어 올려 내 머리카락을 쓸어 올렸다. 내가 그녀의 손목을 잡았다. 그녀가 멈칫 나를 쳐다보았다. 몇 번, 스스럼없는 하운의 몸짓이 나를 혼란스럽게 했다. 이성에 대한 유혹인지, 같은 증상을 먼저 경험한 선배가 갖는 연민인지 알 수 없었다. 동기가 무엇이든 하운의 도발은 나를 자극했다. 나는 그녀의 손을 꼭 쥐고 다른 손으로 그녀의 머리를 감싸 내 쪽으로 끌어당겼다. 그녀는 물러서지 않았다. 나는 그녀의 입술에 입을 맞추었다. 달콤하고 부드러운 입술이었다.
 
처음 보는 순간부터, 당신과 키스하고 싶었어요.”
 
나는 더 이상 진도를 나갈 줄 모르는 소년처럼 들떠서 속삭였다. 오랫동안 느낄 수 없던 뜨거움이었다. 이 여자를 안을 수 있다면, 무엇이든 할 수 있었다. 그녀가 눈을 감고 입술을 열었다.
 
혀 줘요.”
 
나에게 붙잡히지 않은 다른 손으로 내 목을 감고 하운이 속삭였다. 나는 감았던 눈을 동그랗게 뜨고 하운을 빤히 쳐다보았다.
 
키스는 입술로만 하는 게 아니에요. 당신, 키스할 줄 모르는군요.”
 
하운이 내 목을 더 바짝 당겨 안았다. 입술을 비집고 들어온 그녀의 혀가 내 혀를 감아 자신의 입 속으로 부드럽고 깊게 빨아들였다. 내가 그녀의 타액에 익숙해질 때까지 서두르지 않고 기다렸다가 다시 안으로 혀를 말아 들였다. 세상에 태어나 처음 하는 키스 같았다. 불에 덴 듯 혀의 돌기들이 낱낱이 곤두서며 팽창했다. 내 귀에서 윙하는 고압의 전류음이 증폭되었다. 하운은 단지 키스만으로도 나를 완전히 함락시켰다. 시간이 멈춘 것처럼 머릿속이 하얗게 바랬다.
 
[글 김규나 일러스트 임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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