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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
8·15광복 이후 정부 수립, 6·25전쟁과 빛나는 산업화 시기를 거쳐 대한민국은 오늘에 이르렀다. 격동의 한반도, 美CIA 요원으로 그 한복판에서 활약한 마이클 이 박사의 숨 막히는 체험…. 북한 정권의 실체와 광주5·18 등 좌경 친북세력이 주도한 사건들에 관한 증언과 분석, 급변하는 국제정세의 소용돌이 속 한반도의 미래에 관한 그의 이야기들이 값지다. 이에 美연방정부 공무원으로 살아온 40년 세월을 담은 그의 저서 ‘CIA와 대한민국’을 지면에 연재한다.
국방부 장관의 당부
내가 급히 귀대하려고 할 때 정내혁 국방부 장관이 도착했다. 내가 생존자와 대화를 나눈 유일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그에게 보고를 하게 되었다. 정 국방장관은 수행원들에게 아무도 접근시키지 말라고 지시하고는 나를 빈방으로 데리고 가서 문을 잠그고 브리핑을 들었다.
“소속이 어디시오?”
정 장관이 물어서 나는 미 502군사정보단 소속이라고 신분을 밝혔다. 그러자 그는 얼굴이 흙빛이 되어 신신당부하기를 한국 정부가 정식으로 발표할 때까지 내가 오늘 알아낸 내용을 누구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했다.
그날 저녁 정내혁 국방장관은 뉴스를 통해 그날 서울에 진입한 특공대는 북에서 내려온 공비가 아니고 국군 내의 특수범죄자들로서 반란을 일으킨 것이라고 발표했다. 그리고 그는 그날 오후 7시에 국방장관직을 사임했다. 공군 참모총장 김두만 대장도 사퇴했다. 또한 사건에 대한 진상조사가 끝난 다음 공군 책임자 몇 사람이 처벌을 받았다고 한다.
영화 ‘실미도’
실미도 사건은 민감한 국가기밀의 하나로 역사 속에 묻혀 있었는데 2003년 12월에 개봉된 영화 ‘실미도’를 통해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이 영화는 사상 최초로 1000만 명 이상의 관객을 동원했다. 그런데 영화가 아무리 창작의 자유가 보장되는 것이라 하지만 그 내용이 사실과 다른 점이 많아 국민에게 잘못된 인식을 안겼다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그 당시 좌익 세력이 주축이 된 정권의 통치하에서 여러 조직과 시민단체들이 지난 정부의 어두운 면을 파헤쳐 흠집을 내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었는데 이 영화도 반란군들을 사실과 다르게 미화했다고 하는 비판도 있다. 세상에 알려진 잘못된 이야기와 공개된 자료들을 비교하면서 실미도 사건의 진실을 재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968년 1월21일, 북한 124군부대의 31인조 특공대, 즉 김신조 특공대가 청와대 기습 작전에 실패한 후 김형욱 중앙정보부장이 육·해·공군 참모총장과 해병대 사령관을 긴급 소집했다. 그러고는 우리도 북한의 124군부대와 유사한 특수부대의 창설이 필요하다고 주장하자 모두가 그에 동의했고 1968년 4월4일 실미도 부대가 창설되었다.
실미도는 인천광역시 중구 무의동에 속한 무인도이다. 이 부대는 서울 오류동 공군 2325부대의 209파견대 교육대라는 공식 단대호를 갖고 있었으며 자체 내에서는 창설일자를 따서 684부대라고도 불렀다.
그러나 이 부대의 운영 등은 전적으로 중앙정보부 관할이었다. 31명의 대원은 전국 교도소에서 복역 중인 신체 강인한 사형수와 무기수들 중에서 선발했고, 특수 임무를 성공시키면 과거의 범죄 기록을 말소하고 고향에 돌아가 평생 편히 살 수 있게 정부가 보장한다는 약속을 하고 충성 맹세를 하게 했다.
어느 단체에서는 그 31명이 모두 사형수·무기수가 아니라 깡패·소매치기·서커스 단원 출신이라고 했다. 그 단체에서는 영화 ‘실미도’가 저들을 사형수·무기수로 표현한 것은 명예훼손이라며 유가족을 설득해서 법원에 고소해 사건이 대법원까지 올라갔다. 그러나 대법원에선 영화제작사 승소로 판결하며 사건을 종결지었다. 저들이 사형수·무기수였다는 사실은 앞에서 언급한 생존자의 진술과 나중에 발표한 김형욱 전 중앙정보부장·김종필 당시 국무총리의 증언이 일치한다.
이들은 3년 4개월 동안 혹독한 훈련을 받으면서 31명 중 7명이 사망하는데 1명은 훈련 중 익사, 2명은 탈영으로 즉결처분, 1명은 하극상으로 처형, 그리고 3명은 무의도 강간 사건으로 처형된 것으로 되어 있다. 이 부대의 경우 훈련 중은 전시 상황으로 취급해 교육대장에게 부대원들에 대한 생사여탈권을 주었다고 한다.
중간에 사망한 7명을 제외한 나머지 24명은 기간요원 24명과 함께 지옥 생활을 계속하는데 날이 갈수록 훈련은 고되어지고 급식의 질은 떨어져 갔다. 게다가 임무 수행을 위한 공작 명령이 언제 떨어질지 소식이 감감한 가운데 부대를 용도폐기 한다는 말이 돌자 부대원들은 극도로 초조하고 불안해졌다.
그 당시 이후락 중앙정보부장이 평양을 드나드는 등 남북 화해 무드가 조성되고 있었으며 1972년 7월4일에 7.4 남북공동성명이 발표되었다. 그래서 정부에서도 실미도 부대를 계속 유지할 건지, 폐쇄할 경우 대원들을 어떤 식으로 해산시킬 건지 고민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영화 ‘실미도’에서는 정부가 그 부대를 폐쇄하고 대원들을 극비리에 처결할 계획이었다고 암시했는데 그것은 근거 없는 추측에 불과하다. 그러나 우리 정부의 실책도 부인할 수 없다. 아무리 남북 화해 무드 조성을 위해 그랬다 하더라도 더러운 과거를 씻고 새로운 인생을 찾기 위해 목숨 걸고 지옥 훈련을 감수한 이들에게 너무 무책임했다.
실미도 부대는 용도 변경이나 목적 변경으로 계속 유지시킬 수도 있었다. 정말 더 이상 필요가 없었던 거라면 그것은 정부의 실책이지 부대원들의 잘못이 아니었다. 그런 비참한 사건이 발생하기 전에 이들에게 믿을 수 있는 희망적인 대안을 제시하고 국가를 위해 계속 충성할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민족 분단이 낳은 또 하나의 비극
그때의 극한 상황을 이제 와서 쉽게 판단하거나 평가하긴 어렵다. 그러나 더 이상 참을 수 없게 된 24명의 훈련대원들이 반란을 일으킬 결심을 하고 1971년 8월23일 새벽 6시에 기간요원 12명을 사살한 후 실미도를 이탈한 것은 어김없는 사실이다.
교전 중에 기간요원 6명은 도피하다가 바다에서 익사했고 나머지 6명은 죽음을 면했다. 그때 사망한 기간요원들은 전사자로 취급하여 국립묘지에 안장되고 유족들에게는 적정한 보상금이 지급되었다.
부대원들도 실미도 내에서 교전 중에 2명이 사살되었다. 살아남은 22명은 그날 12시20분경 송도 해안 독배부리에 상륙해 33사단 102연대 6중대 관할 지역을 통과한 후 시내버스 한 대를 탈취해 이동하다가 버스 뒷바퀴에 펑크가 나자 오후 1시경 태화운수 소속 시외버스 5-1681호를 탈취해 갈아타고는 서울을 향해 돌진했다.
어떤 기록에는 그들이 상륙 직후 출동한 육군 병력과 교전하여 대원 4명이 또 사살되었다고 하는데 다른 기록에는 그런 사실이 전혀 언급돼 있지 않다. 반란군의 버스가 이동하는 과정에서 저항이 있었고 그 과정에서 민간인 13명·경찰 2명·군인 2명의 부상자와, 민간인 6명과 경찰관 1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이들이 대방동 유한양행 건물 앞에 도착한 시간은 오후 2시15분경이었다. 내가 유한양행 건물 앞에서 그들이 자폭한 현장을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는데 그때 생존자는 단 한 사람도 없었다. 그러나 내가 영등포 적십자병원에 가서 만났던 그 생존자 외에도 3∼4명의 생존자가 더 있었는데 군사재판을 거쳐 1972년 3월10일에 처형되었다고 하는 기록도 보았다. 공군 측의 생존한 기간요원 6명은 전역할 때 철저한 보안교육을 받고 향후 30년간 실미도 사건에 대해 함구할 것을 지시받았다고 한다.
영화 ‘실미도’에서는 대원들이 버스 안에서 ‘붉은 깃발’이란 노래를 부르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것은 전혀 근거가 없는 이야기다. 영화에서는 이들이 출동한 군경과 대치하여 총격전을 벌인 것으로 되어 있는데 이것도 전혀 사실과 다르다. 이들이 버스 안에서 자폭했을 때 주변에는 교통정리를 하며 주민과 행인들의 접근을 단속하는 경찰관 몇 명과 우연히 그곳에 나타난 소속이 분명치 않은 육군 소령 한 사람이 있었을 뿐이다. 경찰이나 군인들이 출동하여 저들을 저지한 사실이 없다는 것이다. 군인들이 출동한 것은 이들이 자폭하고 난 한참 후였다.
이 사건 역시 우리의 민족 분단이 낳은 또 하나의 비극이었다.
프로필
△ 美 연방정부 40년 근속
(DIA(Defense Intelligence Agency·국방정보국) 16년·CIA(중앙정보국) 24년)
△ 1976년 미국 외무고시 합격
△ 미국 조지워싱턴대학 정치학 박사
△ 美 국무성 동아시아 문제 수석연구원
△ 美 국무성 외교연수원 교수
△ 주한 미국대사관 정무관
△ CIA 한·미 안보협력 조정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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