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규나 연재소설 ‘최초의 당신’ [170] 이혼할 때 버려야 할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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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속 행복은 어디로 갔을까

김규나 필진페이지 + 입력 2024-09-09 06:30:10

멘델스존의 ‘한여름 밤의 꿈’이 연주되었다. 신랑 신부가 행진했다. 신부의 죽음을 예견하는 ‘혼례의 합창’에 맞춰 신랑에게 다가갔던 신부는 묘약이 효력을 다하면 환상이 깨지리라는 위험을 전혀 모르는 채 해피엔딩을 꿈꾸는 음악에 맞춰 걸어 나오고 있었다. 폭죽과 박수가 뒤섞였다. 밝은 조명과 신랑 신부를 향해 터지는 카메라의 플래시가 번쩍였다.

그 끝에 내가 서 있었다. 나는 하운이 꽂아 주고 간 흰 수선화를 어색하게 손에 들고 있었다. 하운의 말과 행동이 나를 몹시 초조하게 했다. 달려가 붙잡고 싶은 걸 겨우 참았다. 유리를 꼭 봐야 해서라기보다,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모니터 화면으로 볼 때는 몰랐지만 가까이 다가오는 유리의 실제 모습은 거식증에 걸린 모델처럼 앙상했다. 그래도 사람들 속에서 열심히 웃었다. 신랑은 일일이 눈웃음으로 화답했다. 하객들에게 손까지 흔들어 보이며 행복을 과시했다. 그런 신랑의 걸음걸이는 어딘가 불안정해 보였다. 유리는 한 번도 말한 적 없었다. 그녀의 영웅 씨가 한쪽 다리를 절고 있었다.

버진로드 끝까지 온 유리의 시선이 불안하게 흔들렸다. 누군가를 찾는 듯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유리의 눈이 내가 손에 들고 있던 흰색 수선화를 발견했다. 그다음 내 눈과 마주쳤다. 많은 사람들 속에서 유리가 나를 알아보았다. 그 눈은 분명 기다림이었고 반가움이었으며 안도감이었다.

유리는 희미하게 미소 지으며 눈인사를 건넸다. 그러나 조금 전까지와는 다르게 슬픔이 그렁그렁한 눈빛이어서 나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그때 웨딩 도우미들이 사진을 찍어야 한다며 곧 신랑과 신부를 돌려세웠다. 잘못 본 것이겠지, 생각하며 나는 등을 돌렸다.

이혼 후 아내가 자신의 짐과 아이들의 장난감 하나까지 싹싹 챙겨간 뒤에도 결혼이 남긴 잔해를 치우는 데는 많은 노력과 시간이 소모되었다. 특히 사진이 문제였다.

“아이들 사진은 보내. 나머진 버리고.”

백일과 돌 때 찍은 아이들의 필름 사진을 챙겨간 아내가 전화로 말했다. 컴퓨터에 저장되었던 스냅 사진들을 전송한 뒤 나는 그녀와 함께 찍은 사진들을 모두 삭제했다. 미련이 없어서가 아니라 화가 났기 때문이었다. 아내와 함께한 시간이 몽땅 지워졌다. 결혼식 동영상도 삭제했다.

그 속엔 치매 전 아버지의 모습도 담겨 있었다. 고려장하듯 아버지를 내다 버리는 것 같아 망설였지만 결혼식 사진을 보관하고 싶진 않았다. 한참을 버리고 지우다 보니 따분해졌다. 폴더마다 열고 확인한 뒤 삭제하려니 싫증이 났다. 휴지통 비우기까지 말끔히 끝마쳤는데도 남아 있는 건 작은 앨범들과 침실과 거실에 걸어 두었던 액자였다.

만약 또 결혼을 한다면 절대 웨딩촬영 같은 건 하지 않으리라, 일일이 떼어 커다란 결혼사진을 빼고 액자를 버리며 이를 갈듯 몇 번이나 다짐했다. 오래전 사람들은 사진을 찍으면 영혼을 뺏긴다며 카메라 앞에 서는 것을 두려워했다. 그 말은 사실일지 몰랐다. 영혼이 담겼을 사진을 버리고 찢은 그날부터 나는 꼬박 사흘, 지독히도 몸살을 앓았다.

[글 김규나 일러스트 임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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