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승룡의 와인이야기] 바롤로를 만드는 이태리 최고 포도품종 네비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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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승룡 필진페이지 + 입력 2024-10-05 15:30:45

왕의 와인으로 널리 알려진 ‘바롤로(Barolo)’를 만드는 이탈리아 포도 품종이 네비올로(Nebbiolo), 또는 ‘스판나(Spanna)’라고도 부른다.

이탈리아 북부 피에몬테 지역에서 재배되는 이태리 최고의 적포도 품종이다. 네비올로는 아주 늦게 익는 품종으로 수확할 때인 10월 정도가 되면 피에몬테의 구릉 지대를 뒤덮는 가을 안개가 발생하는데 네비올로의 이름은 여기에서 유래된 것으로 전해진다.

네비올로는 이태리어로 ‘안개’ ‘몽롱한 상태’ ‘(마음의) 우울함’을 의미하는 네비아(Nebbia)가 어원이다. 그래서 그런지 몰라도 네비올로의 느낌은 깊은 안개처럼 자욱하고 비밀스러우면서도 은은하고 또 강렬한 매력을 지니고 있다.

네비올로는 이탈리아 피아몬테 지방 특히 바롤로·바르바레스코(Barbaresco) 랑게(Langhe)에서 주로 재배되는 적포도 품종으로 피에몬테 북쪽의 게메(Ghemme)와 가티나라 D.O.C.G와 남쪽의 로에로(Roero)·알바(Alba) 근처의 네비올로 달바(Nebbiolo d'Alba) D.O.C가 유명하다. 그 외에도 롬바르디아(Lombardy) 지방의 발텔리나(Valtellina)에서 재배된다.

▲ 네비올로가 생산되는 이탈리아 북부 피에몬테 지역. (출처 와인폴리) 필자제공

네비올로는 피에몬테 전체 포도 재배지의 6%에서만 재배되고 있다. 네비올로 와인은 피에몬테 전체 와인 생산량의 3% 정도를 차지하고 있다.

네비올로의 포도알은 중간 크기에 껍질은 어두운 보랏빛을 내며 두껍다. 수확이 늦은 만생종으로 10월 말에 수확한다. 질병에 쉽게 걸리고 수확량도 적은 편이라 와인 제조업체들에 환영받는 품종은 아니지만 와인의 맛은 매우 뛰어나다.

두꺼운 껍질로 인해 탄닌이 풍부하고 산도가 높아 몇십 년간 숙성 잠재력이 있다. 묵직한 구조 감을 갖고 있어 미디엄 풀바디나 풀바디 와인을 만들 수 있다. 맛을 보면 높은 산도와 알코올, 깊은맛의 와인으로 긴 잔향을 느낄 수 있다.

숙성이 잘된 네비올로는 벽돌색을 띠며 장미·블랙체리·서양자두·아니스(지중해 지방 미나리과 약용·향료 식물) 다크 초콜렛·가죽 감초의 향 등 복합적인 아로마를 발산한다. 입에서는 숙성에 따라 부드러워진 산미와 타닌을 느낄 수 있어 잊기 어려운 여운을 선사한다.

이 때문에 네비올로로 만드는 바롤로는 세계 최고의 레드와인 중 하나로 여겨진다. 네비올로 100%로 만들며 법적으로 출시되기 전 반드시 최소 3년을 숙성해야 한다. 이 중 18개월 동안 오크 숙성을 해야 한다. 리제르바 등급은 최소 5년을 숙성해야 하며 오크 숙성의 최소 규정은 동일하다.

바르바레스코는 바롤로보다 의무 숙성 기간이 짧다. 역시 네비올로 100%로 만들며 오크 숙성을 최소 9개월 이상 포함해 최소 26개월 이상 숙성해야 한다. 리제르바는 오크 숙성 9개월을 포함 50개월 숙성해서 출시해야 한다.

랑게 네비올로(Langhe Nebbiolo)는 네비올로를 85% 이상 사용해야 한다. 숙성 기간의 제한은 없어 생산자에 따라 품질의 차이가 크다. 하지만 잘 찾으면 매우 저렴한 가격에 환상적인 품질의 와인을 만날 수 있다.

네비올로 달바(Nebbiolo d'Alba)는 보통 네비올로 100%로 만들며 미디엄에서 미디엄 풀 바디의 레드와인을 만든다. 전통 방식 혹은 샤르마(charmat) 방식으로 양질의 스파클링 와인을 만들기도 한다.

보통 네비올로로 만든 와인은 품종의 특이성으로 인해 대형 오크통에서 10년 정도 숙성한 뒤 마셨다. 긴 숙성을 통해 타닌은 부드러워지고 복합적인 부케와 깊은 맛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숙성 기간은 짧아지고 작은 오크통인 바리끄(Barrique 225L)에서 숙성해 빠른 소비가 가능해졌고 마시기도 편해지는 경향이 있다.

네비올로로 만든 와인은 긴 디켄팅 시간이 필요하다. 보통 1시간에서 2시간 정도 충분히 디켄팅을 한 후에 마셔야 제맛을 느낄 수 있다.

네비올로 와인은 산도와 탄닌이 강해 음식과 페어링이 쉽지 않다. 피에몬테 지역의 음식에는 토마토소스를 거의 사용하지 않는데 프로슈토나 트러플 버섯을 토핑한 풍기피자(funghi pizza) 알리오 에 올리오(Ajo e olio) 파스타와 잘 어울린다. 소고기 스테이크·로스트 치킨·삼겹살 구이·소시지·파르미지아노 레지아노 치즈 등과 잘 어울린다.

질 좋은 바롤로(Barolo)나 바르바레스코(Barbaresco)는 20년 이상의 숙성 잠재력이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남미나 캘리포니아에서도 재배되지만 이탈리아 북부에서 생산되는 네비올로가 가장 좋은 품질의 와인을 만들고 있다.

네비올로는 이탈리아 외에 미국·호주·아르헨티나·심지어 멕시코에서도 재배되는 품종이다. 다양한 지역에서 만들어지는 와인이지만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와인 애호가라면 네비올로라는 소리만 들어도 “지금 와인을 마시고 있지만 네비올로를 마시고 싶다“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고 한다. 그 정도로 네비올로는 잊을 수 없는 맛과 추억을 느끼게 해주는 포도 품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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