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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 속 일본어는 지난 수십년간의 꾸준한 ‘순화’ 노력에도 여전히 살아 있다. 지식인 집단인 언론계마저 완전히 정리를 못 했다. 대안이 없다면 정식 외래어로 수용할 수밖에 없다. 문제는 안 써도 좋을, 어원을 알면 쓰고 싶지 않아질 것들이다. 그 예로 ‘땡깡’ ‘무대뽀’ ‘도꼬다이’ 등을 먼저 꼽고 싶다.
땡깡은 고전중국어 전간(癲癎)의 일본 발음인 ‘텐칸’이다. 요즘엔 정식 의학용어 뇌전증(腦電症)을 더 많이 쓰는 일명 간질을 일컫는 말이다. 이따금 1~3분간 의식을 잃고 전신 경련을 일으키며 입에 거품을 무는 증상인데 오래전 특효약이 개발돼 있다. 몇 년 복용하면 일상 및 사회생활에 문제 없을 만큼 완치된다.
뇌전증 발작 정도에는 개인차가 있으나 난데없이 목격하게 된 사람에겐 쇼킹 그 자체일 수 있다. 오죽하면 ‘지랄병’으로 불렸을까. 일본에서 텐칸은 병명으로밖에 안 썼으며 그나마 사어가 된 지 오래다. ‘땡깡’이란 발음으로 우리말 속에 끼어들었을 때 처음엔 두 나라 말을 뒤섞은 우스개였을지 모른다. 발음상 느낌이 생생한데다 동사 ‘부리다’까지 더해져 우리 토착어로 착각되기에 이르렀다.
뇌전증은 2000년 전 ‘히포크라테스 전집’에 언급되었을 정도로 오래된 질환이다. 영어로 에필럽시(epilepsy), 다른 인도유럽어들 역시 철자·발음이 비슷비슷하다. 이 말은 초월적인 것에 사로잡힌 특이 현상을 뜻하는 그리스어에서 온 것이다. ‘신의 형벌’ ‘악령의 저주’로 오해받기도 했으나 니체·쇼팽·샤갈·고흐 등 천재적 사상가·예술가도 이 병을 앓았다니 지능과는 무관하다.
무대뽀란 무텟포(無鐵砲) 즉 전쟁터에 총(철포) 없이 나가는 것, 앞뒤 생각 없이 행동하는 것을 말한다. 특공대(特攻隊) ‘독코오타이’는 한반도에서 ‘도꼬다이’가 됐다. 태평양전쟁 시절 자살을 미화한 일본군 ‘가미카제 특공대’에서 유래한 것이다.
전 세계 고전어(고대 그리스어·라틴어·페르시아어·아랍어) 등을 되살리며 근대적 콘텐츠를 만들어 낸 서구 주요 언어들의 성과를 우리는 일본어를 통해 집중 흡수했다. 그 결과 언어적 근대화도 기적처럼 빠르게 이뤘다. 한문으로 번역돼 들어온 산스크리트 개념이 불교용어에 한정된 반면 일제(日製) 한자어는 서구문명 전반을 번역해 낸 것들이다.
19세기 후반 이래 일본에서 한자로 옮겨진 신조어(번역어)들로 우리는 근대 문물 학습 과정에서 엄청난 수고를 덜었다. 똘똘한 이웃과 한자문화권에 속해 있으면서 어순까지 같아서 누린 혜택이 크다. 그럴수록 땡깡·무대뽀·도꼬다이·가오·나와바리 등이 잔존해 있는 것은 기이해 보인다. 우리나라 고급 어휘와 개그풍 비어 모두 ‘메이드 인 재팬’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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