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암과 각종 질병을 유발하는 역사 내 석면과 라돈·미세먼지가 900여 명 기관사들의 건강을 위태롭게 하고 있다는 것인데요, 부족한 휴식 시간과 1인 근무제에 따른 우울증과 공황장애가 기관사는 물론 시민의 안전을 직접적으로 위협할 수 있다는 주장입니다.”
리포터에 이어 ‘2인 승무제를 실시하라’는 현수막과 함께 붉은 띠를 머리에 두른 조합원들이 구호를 외치는 장면이 계속됐다.
“열악한 근무 환경의 희생자, 강무훤을 방면하라.”
북소리가 둥둥 울렸다. 리포터는 보도의 형평성을 위해 같은 시간 분량만큼, ‘강무훤은 살인자’라는 피켓을 들고 있는 남자의 모습도 함께 보여 주었다.
“그녀가 얼마나 용서를 구했는지 모릅니다. 이제 겨우 마음의 안정을 찾고 저와 행복한 미래를 꿈꾸고 있었습니다. 신혼여행을 떠나는 길이었다고요. 용서한다고 말 한 마디 안 해준 사람이 우리 결혼식엔 왜 왔겠습니까?”
유리의 영웅 씨가 계속 말했다.
“하객이 많아서 시도할 수 없게 되자 우리의 일정을 알고 나타난 겁니다. 사전에 철저히 준비해 저지른 끔찍한 살인입니다.”
분개하며 목소리를 높이던 영웅 씨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다. 직장 동료들의 주장은 설득력이 있었지만 내게 감동을 주지는 않았다. 나의 무죄를 주장할 생각이 없었지만 영웅 씨의 주장에도 동의할 수는 없었다. 나에 대해 말하고 있었으나 나와 무관하게 그들은 그들의 이야기를 하고 있을 뿐이었다.
“시민의 발, 지하철 운행에 관련된 사건에 많은 이목이 집중되고 있는 가운데 지하철 노조와는 달리 강무훤 씨에 대해 선처를 조용히 호소하는 기관사가 있어 시민들의 마음에 잔잔한 감동을 주고 있습니다.”
앵커가 뉴스를 이어갔다. 카메라는 다시 여의나루역에 서 있는 리포터에게 옮겨졌다.
“기관사 박용범 씨가 승객들의 서명을 당부하고 있는 이곳은 여의나루역 승강장입니다. 박용범 씨는 매일 일과를 마치면 이곳에 와서 말없이 피켓을 들고 서 있습니다. 사건 당일 자신이 운전하고 있던 열차에 뛰어들 뻔했던 안모 씨를 승강장에서 살해한 용의자 강무훤 씨의 구명을 위해서입니다.”
화면에 인터뷰하는 용범 선배의 모습이 보였다. 안쓰럽게 나를 바라보던 선한 눈매 그대로, 법이 허락하는 한 나에 대해 선처를 호소하는 그의 목소리는 이내 촉촉하게 젖었다.
“우리 강무훤 기관사, 절대 나쁜 사람 아닙니다. 정말 열심히 일하는 후배였습니다. 사건 이후 휴직하고 힘들어할 때 바쁘다는 핑계로 선배인 제가 더 자주 찾아가서 이야기를 들어 주지 못한 것이 이렇게 후회될 수가 없습니다. 돌아가신 분과 유가족님들께 제가 대신 이렇게 머리 숙여 진심으로 사죄드립니다. 우리 강무훤 후배, 용서해 주십시오. 부디 선처해 주십시오.”
용범 선배가 꾸벅, 허리를 반 접어 깊이 머리를 숙였다. 리포터가 정리 멘트를 하고 화면이 끝날 때까지도 그는 고개를 들지 않았다. 자신을 위해서는 무엇 하나 주장하지 않던 사람이었다. 누구에게도 머리 숙이지 않던 사람이었다.
[글 김규나 일러스트 임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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