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희문의 영화세상] 말로만 다하고 행동은 하지 않는 헛보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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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희문 필진페이지 + 입력 2024-10-24 06:31:20

영화를 처음 본 한 열혈지사가 영화 속 인물은 움직이는데 현실 속의 실제 인물은 말만하고 행동은 하지 않는다며 통탄하는 소감을 적은 평론 글을 소개한 적이 있다. 123년 전의 일이지만 마치 지금의 상황을 예측이라도 한 듯하다. 그때나 지금이나 달라진 것이 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영화 ‘머나먼 다리’의 배경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유럽. 처음엔 히틀러의 독일군이 유럽을 장악했지만 1944년 6월6일, 연합군이 프랑스 북쪽 노르망디 해안에 상륙한 것을 계기로 전황은 역전되고 베를린으로 진격하는 과정에서 암호명 ‘마켓 가든(Market Garden)’이란 작전을 펼친다.

‘마켓 가든’ 작전은 베를린과 연결되는 네덜란드의 교량을 확보하는 것으로, 연합군 보병·전차부대·공정대 등 대규모 부대가 투입되는 거대한 작전이다. 독일군 서부 전선을 공격 개시하지만 통신은 끊기고 진격은 늦어지면서 부대는 각기 고립된 채 희생만 늘어난다. 결국 작전은 실패로 끝난다. 크리스마스에는 장병 모두가 집에서 가족과 함께 지낼 수 있을 것이라던 호언장담은 전장에서 부상병들이 부르는 크리스마스 캐롤로 대체된다. 처참한 패전의 과정을 담은 영화다.

10.16 보궐선거가 끝났지만 서울시교육감 자리가 또다시 좌파에게로 넘어간 것은 땅을 칠 일이다. 결과가 나오자 원인을 찾느라 더 바쁘다. 지난번 교육감 선거에서는 보수 후보가 단일화를 하지 못하고 서로 경쟁하는 바람에 좌파 후보가 당선되었다. 보수 후보 2명이 얻은 표가 좌파 후보보다 더 많았지만 분산되는 바람에 결국 패배로 끝난 것이다. 패배랄 것도 없이 통합후보로 나선 상대 진영에 헌납했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당선된 좌파 후보 역시 교육감 인사권을 멋대로 사용한 것이 빌미가 되어 유죄를 확정받아 임기를 마치지 못하고 물러났다. 이번 보궐 선거는 그 잔여 임기를 채우기 위한 선거였다.

선거가 시작되기 전에는 분위기가 좋았다. 지난번 선거에서 끝까지 경합했던 후보는 불출마를 선언했고 후보 통합을 통해 단일 후보를 선출했다. 이번에는 뭔가 해 볼 만하다고 기대를 걸었다. 지난 10여 년간 좌파가 장악했던 교육행정이 바뀔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빗나간 이념교육도 바로 잡을 수 있을 기회가 왔다고 믿었다. 상대 진영 역시 통합후보를 내세웠다. 보수와 좌파를 대표하는 각각의 후보가 맞붙은 것이다.

예상은 근소한 차이로 이기거나 승부를 예측하기 어려운 박빙 공방전이 될 거라는 것이었다. 결과는 오차범위 밖 표 차의 패배였다. 지난번 선거에는 후보 간 경쟁으로 졌다는 이유라도 댔지만, 이번 보궐 선거 결과를 두고는 뭐라 할 말이 없다. 모든 조건을 갖추고서도 이기지 못했으니 무어라고 핑계를 댈 것인가. 아무리 핑계가 있다고 해도 그게 패배의 이유가 될 수 있는가. 더러는 대통령 때문에 졌다고도 하고 대통령 부인에 대한 못마땅함 때문에 여론이 좋지 않았고, 많은 사람이 투표장에 나가지 않았다는 이유를 댄다. 백번 양보해서 그런 부분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이번 선거 결과는 너무나 뼈아프다. 좋은 기회를 만났는데도 투표율이 낮아 지다니. 선거에 열심인 것은 후보뿐이었고 청소년 교육이 중요하다고 외치던 그 많은 우파는 어디에서 무얼 하고 있었는가. 말만 하고 행동하지 않는 태도를 여지없이 보여 준 것이라고 믿는다.

보수가 행동하지 않는다는 표시는 여러 곳에서 확인한 바 있다. 영화가 나와도 좌파는 표를 사는데, 우파는 별다른 관심을 두지 않는다. 좌파 진영에서 펀드 모집을 하면 순식간에 목표액을 채우거나 훨씬 뛰어넘는다. 우파는 목표액을 채우지 못하거나 겨우 달성하는 정도다. 그것도 좌파에 비해 훨씬 더딘 속도로. 무식한 좌파라고 비난하면서도 책도 사지 않는다. 주목할 만한 신간이 나와도 반짝하고는 그만이다. 베스트셀러 집계를 하면 최고를 차지하는 것은 좌파 정치인이나 작가가 쓴 잡문이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여러 가지 혐의와 재판에도 여전히 당을 이끌고 있다. 오히려 자신을 조사하거나 처벌하려는 판사·검사들을 겁박하고 각종 기관이나 기구들의 손발을 묶고 있다. 우파에서라면 자중지란이 일어나도 벌써 일어났을 테지만 좌파들은 비난이 쏟아져도 대오를 유지한다. 우파는 치열하지도 끈질기지도 못하다. 그저 한탄만 하고 그러면 안 된다고 훈계할 뿐이다. 부끄러움도 상식도 내던진 좌파들에게 우파는 생색만 내는 만만한 상대일 뿐이다.

서울시교육감 보궐선거의 결과는 말로만 떠들고 행동하지 않는 우파의 한계를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품위 있는 척하다가 좌파에게 정권을 빼앗기고 찬바람을 더 맞아야 정신을 차릴까. 그때도 틀렸다고, 안 된다고 하소연만 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