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희문의 영화세상] 노벨문학상으로 포장된 문화 권력의 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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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희문 필진페이지 + 입력 2024-10-17 06:31:20

일본 영화감독 오즈 야스지로의 무성영화 중 ‘태어나기는 했지만’(1932)이란 작품이 있다. 제목에서 느낄 수 있듯 축복과 고단한 현실이 교차하고 기쁨과 애잔함이 엇갈린다. 아직 소년기에도 이르지 못할 정도로 어린 형제가 경험하는 쓴맛·단맛이 가득한 성장기 영화인 이 작품에서 주인공들은 왜 늘 가난한지, 아버지는 직장에서 높은 사람을 찾아다니지만 왜 번번이 승진하지 못하고 노심초사하는지 알 수 없다. 유머로 포장된 역설이 소소하게 펼쳐지고 그야말로 ‘웃픈’ 현실이 이어진다.

올해의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한국의 한강 작가가 선정됐다. 노벨상은 연륜과 권위 면에서 여러 상 중에서 으뜸으로 꼽힌다.

우리나라에서는 김대중 전 대통령이 평화상을 수상했을 뿐 그 이후로는 수상자를 내지 못했다. 문학 부문에서 누구누구가 수상 후보로 올랐다는 소문은 오랫동안 나왔지만 실제로 그런지는 누구도 확인하지 못했고 구체적인 근거가 있는 것인지도 알 수 없었다. 후보로 거론되는 본인의 자가 발전인지, 주변 패거리들의 바람잡기인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문학상 후보에 올랐다는 소문이 오랫동안 흘러 다녔다.

노벨 문학상 수상자로 한국인 작가 한강이 선정되었다는 발표를 접하고는 두 가지 충격을 받았다. 첫째는 한국 작가가 문학상을 받았다는 사실에 대한 놀라움과 반가움이었고, 둘째는 대한민국에 공고한 문화 권력이 새로 구축되겠구나 하는 두려움이었다. 이 역시 ‘웃픈’ 현실이라고 할 수 있겠다.

한국문학이 세계문학의 주류로 올라섰다는 상징으로 이보다 확실한 것이 또 있을까. 한국 작가가 수상자로 선정되었다는 소식을 일간신문들은 1면에 톱기사로 실었고 서점가에서는 ‘채식주의자’ ‘소년이 온다’ ‘작별하지 않는다’ 같은 그의 작품들이 수십만 부가 팔려나가면서 태풍급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덩달아 종이를 만드는 제지공장까지 호황이다. 이전에도 노벨문학상이 발표되면 해당 작가의 책은 베스트셀러가 되곤 했다. 올해는 번역된 책이 아니라 우리 글로 노벨 문학상 작품을 읽게 되었으니 그것 또한 처음 마주하는 일이라 놀라울 뿐이다. 이를 계기로 한국 문학에 대한 세계적인 관심이 높아질 것이고 새롭게 주목받는 작가들이 이어질 가능성도 높다.

하지만 놀라움의 뒤쪽에서는 기울어진 문화 지형에서 광주 5·18이나 제주 4.3 사건이 그의 작품을 통해 일방적으로 인식되거나 간헐적으로 튀어나올 직접 소감을 통해 객관적인 역사가 왜곡될 것을 우려한다. 작가의 감수성이나 주관적인 느낌을 이야기한다고 해도 좌파에서는 막강한 지원으로 여길 것이다.

제주 4.3사건이나 광주 5·18사건처럼 객관적인 사실에서는 경과와 성격이 정리되었는데도 그것을 인정하지 않은 채 이념적·정치적 논쟁으로 몰아가고 있는 현대사의 크고 작은 사건들은 앞으로도 실제와 상관없이 논란의 대상으로 떠오를 수 있다.

한국현대사를 소재로 다룬 영화들이라면 대부분 일방적인 편향성을 드러내고 있다. 12.12사태를 다룬 ‘서울의 봄’은 특정 인물을 연상하게 하는 캐릭터가 등장하지만 권력욕에 사로잡힌 채 불법적인 방법으로 권력을 찬탈하고 상대역의 가상인물은 군의 본분을 지키며 대한민국을 수호하려는 캐릭터로 등장한다. 영화를 본 관객들은 사건의 진행과 타당한 평가 대신 선과 악의 세력이 대립한 끝에 악의 세력이 국가권력을 차지한 것으로 받아들이기 십상이다. 아무리 ‘천만’ 동원 영화라 해도 사실을 조작하고 역사를 왜곡할 수는 없다.

문학적 가치라는 것은 무게를 달아 측정할 수도, 길이를 재서 순위를 정하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노벨상이 모든 평가의 기준이 된다고는 할 수 없다. 영화계에서도 한때 칸이나 베니스 등 국제영화제에서 수상하면 절대적으로 뛰어난 가치를 지닌 작품이라고 인식되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교류가 다양해지고 여러 영화제에서 수상하는 사례가 늘어나면서 특정한 영화제일수록 관객과의 보편적인 공감을 공유하는 것이 아니라 주최 측의 평가나 심사위원들의 성향에 따른 주관적 평가가 더 크게 작용한다는 사실이 부각되고 있다. 지금은 어느 영화제에서 수상했다고 하면 우선 그 영화는 재미가 없다는 표시로 인식되고 있으며 수상이 흥행에 도움을 주었다는 증거도 없다. ‘기생충’이 칸영화제 대상을 받은 후 1000만 관객을 동원한 사례는 이례적인 경우로 꼽힌다.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이 놀랍기는 하지만 한국인이 수상했다는 사실만으로 무조건 열광할 수 없는 것은 대한민국 현대사를 명쾌한 흑백논리로 양단할 수 없는데도 작가의 인식이 어느 한 쪽으로 치우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노벨문학상의 권위가 편향성을 정당화하는 갑옷이 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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