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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가격이 부담돼 약속이 없으면 김밥이나 라면으로 끼니를 때운다.”
고물가에 직장인도 괴롭다. 서울 시내에서 만 원으론 점심을 때우기 어려울 지경이다. 싼 가격에 가볍게 먹던 칼국수와 비빔밥 가격조차 만 원 안팎으로 가격이 치솟았다. 그래서 점심(lunch)과 물가 상승(inflation)을 더해서 런치플레이션이란 말이 유행이다.
직장인 이모씨는 10일 “음식점 가격이 폭등해서 김밥집에 가는데 거기도 가격이 만만치 않다”고 하소연했다. 김밥에 라면을 시키면 만 원에 육박하기 때문이다. 좋은 직장을 구하지 못한 청년층은 처지가 딱하다. 부모에게 용돈을 받거나 아르바이트를 하는 처지에 만 원대 점심을 먹는 게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런치플레이션이 심각해지면서 구내식당은 인기다. 저렴한 가격에 점심을 먹을 수 있는 구내식당 선호 현상이 눈에 띈다. “평소 안 가던 구내식당을 요즘 즐겨 찾는다”는 직장인과 “식사비를 아끼려고 남의 회사 구내식당에 간다”는 직장인도 늘었다.
그러나 구내식당 인기는 파리를 날리는 식당에 눈엣가시다. 부천시는 내년부터 외부인의 구내식당 이용을 금지할 계획이다. 부천시청 구내식당은 민원인에게 인기였다. 저렴한 가격에 시민의 발길이 몰리자 시청 주변 식당이 민원을 제기했다. 결국 부천시는 시민에게 구내식당을 이용하지 말라고 설득해야 할 처지에 놓였다.
김밥 가격이 부담되는 직장인 사이에선 편의점 도시락이 호황이다. 그러나 여성 직장인 김모씨는 “편의점 도시락도 6900원이라서 음료수와 함께 먹으려면 7000원으론 부족하다”고 말했다. 이런 까닭에 집에서 도시락을 싸는 여성 직장인도 늘었다. 런치플레이션은 직장인으로 하여금 점심 먹기를 주저하게 만들고 있다.
편의점·대형마트 간편식 호황
기자가 8일 역삼역 인근 편의점에서 만난 서울 영등포에서 거주하고 있는 직장인 김아영(35)씨는 일주일에 2~3일은 편의점에서 점심을 해결하고 있었다. 김 씨는 “최근 들어 물가가 많이 올랐다는 게 체감이 된다”면서 “작년도엔 점심도 식당에서 해결하고 저녁엔 친구들과 약속도 잡았는데, 올해는 친구 만나는 횟수도 줄이고 식당보다 편의점을 자주 이용한다”고 말했다.
점심뿐만 아니라 장바구니 물가 부담도 가중되고 있다. 양천구청에서 거주하고 있는 직장인 박은주(33)씨는 식자재마트에서 장을 보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박 씨는 토마토 3개(6000원)를 집어 들면서 “장을 볼 때마다 물가가 많이 올랐다는 걸 체감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신한은행이 펴낸 ‘2024 보통사람 금융생활 보고서’에 따르면 경제활동자 10명 중 4명은 올해 소비가 전년 대비 늘어났다고 응답했다. 특히 월 소비액 중 식비가 차지하는 비중이 23%로 전년보다 6%p 상승한 것으로 조사됐다. 상당수 경제활동자들이 전체 소비의 약 4분의 1을 식비로 쓰고 있다. 물가 상승으로 직장인들의 점심값 지출이 늘어난 상황을 의미하는 런치플레이션이 심화된 것이다.
실제 통계청에 따르면 10월 소비자물가지수는 114.69(2020=100)로 작년 동월 대비 1.3% 상승했다. 외식물가 상승률은 2.9%로 전달(2.6%)보다 상승 폭이 확대됐다. 외식물가 상승률이 소비자물가 상승률을 웃도는 현상은 2021년 6월부터 3년5개월째 계속되고 있다.
품목별로 보면 10월 39개 품목 중 33개의 물가상승률이 평균을 웃돌았다. 특히 △떡볶이(6.2%) △칼국수(5.6%) △햄버거(5.5%) △치킨(5.2%) △김밥(5.0%) △김치찌개 백반·설렁탕(4.3%) △해장국(4.1%), 생선회·구내식당식사(4.0%) 등의 순으로 상승률이 높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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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크게 보기=이미지 클릭 / [그래픽=윤수진 기자] ⓒ스카이데일리 |
한국소비자원 가격정보종합포털 ‘참가격’을 봐도 외식 물가상승률을 체감할 수 있다. 참가격에 따르면 지난달 외식비 가격 동향(서울 기준)을 보면 서울시민들이 많이 찾는 8개 주요 외식 메뉴 중 1만 원 지폐 한장으로 먹을 수 있는 메뉴는 김밥(3462원)·자장면(7308원)·칼국수(9308원)·김치찌개 백반(8192원) 등 4개에 불과했다.
냉면(1만1923원)이나 삼겹살(200ｇ·2만83원)·삼계탕(1만7269원)·비빔밥(1만1038원) 등은 호주머니가 얇아진 직장인들에겐 이제 ‘넘사벽’ 수준의 메뉴가 됐다.
직장인들이 외식물가 상승으로 인해 점심값 지출에 부담을 느끼자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에 점심을 해결할 수 있는 간편식 매출이 크게 늘었다. 대한상공회의소가 시장조사업체 마켓링크의 자료를 분석한 결과 올해 상반기 편의점의 대용식 매출은 2022년 상반기 대비 17.6% 성장해 편의점 전체 매출 증가율(3.6%)을 웃돌았다.
편의점의 경우 이마트24의 1~10월 간편식 매출은 같은 기간 △도시락 25% △김밥 21 △삼각김밥 17% 늘었다. 세븐일레븐도 △도시락 20% △김밥 20% △삼각김밥 25% 증가했다. 이마트24 관계자는 “올해 1월부터 9월까지 4000원대 도시락의 매출비중은 71%를 차지할 정도로 인기가 많다”고 설명했다.
대형마트의 경우 이마트의 1~10월 간편식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김밥 106.5% △샌드위치 49.8% △간편 요리(유산슬·유부초밥 등) 15% 증가했다.
편의점 도시락의 70%는 4000원 대에서 5000원 안팎으로 저렴하다. 이마트24는 4000원 대 도시락이, 세븐일레븐은 이장우 배우와 협업한 ‘맛장우 시리즈’ 도시락(4700원)이 주를 이루고 있다. GS25는 혜자로운 도시락(5200~5800원)이, CU는 한팔도한끼 시리즈 도시락(5900원)이 주를 이룬다.
회사에서 ‘간편식 퀵커머스로’ 점심을 해결하는 직장인들도 늘고 있다. 퀵커머스는 주문 1시간 내외로 배송해주는 물류 서비스다. 원래 생필품을 중심으로 활용되던 배달 서비스였는데 최근엔 그 영역이 간편식으로 확장되면서 직장인들 사이에 ‘최애 서비스’로 부상했다.
GS리테일에 따르면 올해 1∼10월 기준 편의점 GS25의 퀵커머스 매출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76.1% 늘었다. 도시락을 비롯한 간편식 매출이 90.6% 급증하면서 전체 매출 성장을 견인했다.
대형마트나 기업형 슈퍼마켓(SSM)의 간편식 퀵커머스도 호조세다. 홈플러스에 따르면 올해 들어 10월 23일까지 주문 1시간 이내 ‘즉시 배송’을 통한 냉동 간편식 매출은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34% 증가했다. 간편하게 조리해 먹을 수 있는 밀키트(17%)와 일반 냉장 간편식(10%) 수요도 늘었다.
지갑이 얇아진 직장인들이 구내식당을 자주 애용했다. 식신에 따르면 올해 3분기 구내식당 이용자 비중은 30%로 전년 동기(22%)보다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 종로구에서 직장은 다니는 이모(30)씨는 “회사 구내식당은 가격이 5000원으로 저렴해서 밖에서 먹는 것보다 비용 부담이 적다”면서 “올해는 구내식당을 자주 이용한다”고 말했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명예교수는 “고물가에 불경기가 이어지자 소비자들이 합리적인 선택을 하는 것”이라며 “일상적으로 지출하는 식비는 작은 인상에도 부담을 크게 느낀다”라고 설명했다.
업계 관계자는 “최근 고물가·런치플레이션이 지속되며 가성비 높은 간편식을 찾는 고객이 증가하고 있다”고 말했다.
식품기업도 가격 인상 릴레이
밥상 물가 인상에 이어 식품 가격까지 인상되면서 소비자들의 장바구니 물가 부담은 가중되고 있다. 문제는 식품기업의 제품 인상률이 소비자물가 인상률을 웃돌고 있어 소비자들의 눈총을 받고 있다.
오뚜기는 대형마트에서 판매하는 카레·케첩·소스 등 5개 품목 24종의 가격을 7~15% 인상했다. 3분카레3분짜장·스파게티 소스·후추 등 4개 품목 10종의 가격 편의점 가격도 올렸다. 앞서 오뚜기는 2023년 12월부터 가격을 올릴 예정이었으나 물가 안정에 동참해 달라는 정부 압박에 못 이겨 계획을 철회한 바 있다.
CJ제일제당과 광천김·대천김·성경식품 등의 김 전문업체는 김 가격을 10% 넘게 올렸다. 롯데웰푸드는 초콜릿 원료인 코코아 가격 상승에 따라 빼빼로 등 17종 제품 가격을 평균 12% 올렸다.
농심은 스낵류 19개 브랜드의 출고가격을 평균 6.7% 인상했다. 출고가격 기준 새우깡(90g)은 6.3%, 양파링(84g)·꿀꽈배기(90g)·자갈치(90g)·조청유과(96g) 등은 6.1%, 프레첼(80g)은 7.4% 인상됐다. 농심의 스낵 가격 인상은 2016년 7월 이후 2년4개월만이다. 당시 농심은 새우깡을 비롯한 스낵류 15개 브랜드의 가격을 평균 7.9% 인상했다.
롯데칠성음료는 칠성사이다와 펩시콜라 등 6개 음료 품목 출고가를 평균 6.9% 올렸다. 동원은 김 가격을 평균 15% 올렸고 샘표도 양조간장(12%)과 진간장(6%) 가격을 높였다. 청정원도 ‘청정원 햇살담은 국간장’ 가격을 5.4% 인상했다.
이 같은 가격 인상은 국제 또는 국내의 원재료 가격 인상이라는 요인이 원인이라고 식품기업들이 설명하지만, 이들 기업 실적이 대부분 꾸준히 우상향하고 있어 소비자들의 비판을 받고 있다.
외식물가도 잇따라 올랐다. 롯데네슬레는 7월부터 네스카페 수프리모 아메리카노·수프리모 병(100g) 등 인스턴트 커피와 핫초코 오리지널 원컵 등 분말음료 제품 출고가를 7% 올렸다. 국내 카페시장 점유율 1위인 스타벅스도 일부 제품의 가격을 조정했다. 그란데 사이즈와 벤티 사이즈 음료 가격을 각각 300원과 600원씩, 트렌타 사이즈는 400원 인상했다.
이은희 인하대학교 소비자학과 교수는 “현재 정부에서 전체 소비자물가지수를 3%대로 관리하고 있는데, 업체의 인상 비율이 과다하지 않나 싶은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업계 관계자는 “식품업체들이 가격 인상을 발표할 때 ‘원재료 인상’을 언급하는데, 원재료는 인건비·물류비 등 제반 비용이 포함된다. 수출 비용 증가 여파도 무관하지 않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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