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성공적인 기업결합으로 항공업계가 대규모 재편에 돌입할 전망이다. 메가캐리어(초대형 항공사)의 탄생은 물론 저비용항공사(LCC)의 도약부터 인수·합병 가능성까지 점쳐지고 있다. 고객들은 조만간 처음 보는 항공사의 비행기를 타고 하늘길에 오를지 모른다.
‘메가캐리어’ 등장… 항공업계 변화 신호탄
2024년 12월 아시아나항공은 대한항공의 품에 안겼다. 4년 간의 기업결합 여정이 마침표를 찍은 것이다. 대한항공은 아시아나항공의 제3자 배정 유상증자 중 계약금과 중도금 명목으로 지급했던 7000억 원을 제외한 잔금 8000억 원을 납입하고 아시아나항공 최대주주에 올랐다. 이어 아시아나항공 신주 1억3157만8947주를 취득해 지분율 63.9%를 확보해 지배구조 정상에 자리하게 됐다.
조원태 대한항공 회장은 기업결합이 마무리되고 맞는 첫 신년사에서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이 ‘한 가족’임을 강조하며 통합의 방향성을 확고히 했다. 이어 아시아나항공 직원들에게 보낸 메시지에서 조 회장은 “우리의 통합은 한 회사가 다른 회사를 흡수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과정”이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조 회장은 아시아나항공을 2년여간 별도의 법인으로 운영하다가 내년 말께 완전한 통합 절차를 밟을 계획이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기업결합으로 양사 각축 체제로 구축됐던 대형항공사(FSC) 체제는 유일체제로 전환하게 됐고 세계 9위에 달하는 메가캐리어로 발돋움하게 됐다.
여러 사고로 항공업계 분위기가 뒤숭숭하지만 항공업계가 코로나19 이전 수준으로 여객 수를 회복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향후 탄생할 메가캐리어의 역할은 더욱 중요해질 전망이다.
통합 LCC 업계 판 뒤집는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기업결합으로 LCC들의 경쟁구도도 크게 달라질 전망이다. 특히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양사의 자회사인 진에어·에어부산·에어서울도 합쳐져 이른바 ‘통합 LCC’의 등장이 유력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통합 LCC의 출범은 이미 첫 삽을 떴다. 4년여 전 양사의 합병 소식이 전해졌을 무렵부터 심심치 않게 들려오던 통합 LCC의 등장 소식은 현재 대한항공 출신의 임원이 통합 LCC 3사의 각 사 대표로 배치되면서 출범의 신호탄을 알렸다.
통합 LCC가 탄생하게 되면 현재 LCC 1위인 제주항공의 여객 수를 뛰어넘는 것은 물론 연간 매출 3조 원 규모의 새로운 강자가 등장하게 된다. 특히 LCC 여객 수가 2년 연속으로 FSC를 추월하는 등 빠르게 여객 수를 회복하고 있는 만큼 통합 LCC의 등장은 파급력이 더 클 수밖에 없다.
하지만 변수도 있다. 통합 LCC 3사 중 에어부산의 경우 부산시의 통합 반대 목소리가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에어부산의 2대 주주인 부산시와 부산 시민단체 등은 통합 LCC의 등장이 지역 경제와 일자리에 피해를 줄 것이라면서 반발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이는 통합 LCC 3사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큰 진에어를 중심으로 에어부산고 거점 공항인 부산을 등지고 인천으로 이전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또 김해공항 거점 항공사 역할을 하고 있는 에어부산이 새로 생길 가덕도 신공항에서 거점 항공사의 역학을 할 지 여부가 통합으로 인해 불투명해질 수 있다.
항공업 본격 진출 대명소노… 티웨이·에어프레미아 합쳐지나
통합 LCC의 등장으로 LCC 업계가 크게 뒤바뀔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대명소노그룹의 항공업 진출도 변화의 핵심으로 꼽히고 있다.
현재 티웨이항공 최대 주주는 예림당으로 1.72%의 지분과 계열사 티웨이홀딩스가 보유한 지분(28.02%) 및 우호 지분 등을 포함한 약 30%의 티웨이항공 지분을 소유하고 있다.
2대 주주는 대명소노그룹으로 소노인터내셔널(16.77%)과 계열사 대명시즌(10.00%)을 합쳐 지분 26.77%를 확보하고 있다. 티웨이항공 2대 주주로 있던 사모펀드 운용사의 지분을 대명소노그룹이 사들인 결과다.

지분 인수에 그치지 않고 대명소노는 경영권 인수에 대한 강한 의지를 내비쳤다. 1월22일 대명소노는 지주사 소노인터내셔널이 티웨이항공을 상대로 경영개선을 요구하고 주주명부 열람등사 청구 및 주주제안을 전달하는 등 경영 참여를 본격화한다고 밝힌 바 있다. 1월20일엔 티웨이항공과 정홍근 티웨이항공 대표이사에게 경영진 전면 교체·티웨이항공 안정적 운영을 위한 유상증자 요구 등의 내용을 담은 경영개선요구서를 보내기도 했다.
대명소노는 티웨이항공뿐 아니라 미주 노선에 강점이 있는 에어프레미아의 경영권 확보에도 열을 올리고 있다. 항공업 진출을 통해 본업인 리조트 숙박업과 시너지 효과를 기대하는 것으로 보인다.
대명소노는 작년 10월 에어프레미아의 2대 주주인 JC파트너스가 보유한 제이씨에비에이션제1호 유한회사의 지분 50%를 인수했다. 나머지 지분 50%도 올해 6월 이후 매수할 수 있는 콜옵션을 보유했다. 하반기에 2대 주주로 올라선 다음 티웨이항공과 마찬가지로 경영권 확보에 나설 것으로 예측되고 있는 상황이다.
대명소노가 티웨이항공·에어프레미아를 모두 인수하고 양사의 합병을 추진한다면 LCC 판은 다시 한 번 크게 뒤바뀌게 된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기업결합 과정에서 유럽 노선을 이관받은 티웨이항공이 현재에도 여객 수를 기준으로 LCC 2위 자리까지 도약한 가운데 미주 등 노선에 강점이 있는 에어프레미아까지 합세해 장거리 노선도 소화할 수 있게 되기 때문에 국내·동남아·유럽·미주 노선을 도맡는 항공사도 충분히 출범할 수 있는 상황인 것이다.
통합 LCC에 대명소노 합세… 분주해진 LCC 업계
다른 LCC들도 변화의 고삐를 당기고 있다. 우선 이스타항공은 LCC 업계의 변화에 대비하기 위해 수익성 극대화에 나선다는 방침이다.
코로나19로 기업회생절차를 거쳐 사모펀드인 VIG파트너스의 품에 안긴 이스타항공은 빠르게 기단을 늘리며 정상화에 속도를 내고 있다. 이 과정에서 늘어난 투자 비용을 빠르게 복구하고 화물 등 사업을 확장하면서도 항공기를 추가로 도입해 증편 계획까지 갖고 있다.
또 이스타항공도 재편 흐름에 올라탈 가능성도 있다. 최대 주주인 VIG파트너스가 투자금 회수에 나설 경우 기업결합(M&A) 매물로 등장하게 되기 때문이다.
이 경우 이스타항공 인수 유력 후보로 제주항공이 언급되고 있는 상황이다. 제주항공은 통합 LCC의 등장과 티웨이+에어프레미아의 등장 가능성 등 변곡점에서 살아남고 LCC 1위의 위상을 유지하기 위해 외연 확장이 필요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제주항공은 2019년 이스타항공 인수를 추진했다가 포기한 전력도 있다.
이 밖에 코로나19로 경영난에 빠졌던 플라이강원도 위닉스의 품에 안기며 파라타항공으로 사명을 바꾸고 재비상을 추진하고 있다. 청주국제공항을 거점으로 두고 있는 에어로케이도 작년 4월 3년간의 청주공항 거점 유지 의무가 끝나 인천국제공항으로 진출해 일본 등 노선으로 하늘길 확대에 나서고 있다.
LCC, 성장 속 풀어야 할 난제 ‘안전’
메가캐리어의 등장과 이로 인한 LCC들의 재편 구도 및 성장세도 주목할 대목이지만 안전 문제에 따른 고객 신뢰 회복은 과제로 남아있다. 최근 발생한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와 에어부산 화재 등으로 밑바닥으로 떨어진 고객 신뢰는 좀처럼 회복될 조짐이 보이지 않고 있다.

작년 말 발생한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와 1월 에어부산 항공기 화재 등으로 온라인 커뮤니티에선 “LCC 다신 안 탄다” 등의 반응이 나오고 있다. 높은 항공기 가동률과 적은 정비 인원이 문제가 된 것이 아니냐는 반응도 잇따르고 있다.
이런 안전 문제가 재편 구조 속에서 불확실성으로 자리 잡을 가능성도 있다. 제주항공의 이스타항공 인수 역시 여객기 참사로 동력을 상실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고 대한항공 역시 에어부산 화재를 수습하기 위해 임원을 부산으로 급파하는 이례적인 일도 벌어졌다.
대형 사고뿐 아니라 작년 발생한 티웨이항공의 잦은 지연과 회항 사태에 이어 올해도 이스타항공의 기체 이상으로 인한 ‘램프 리턴’(탑승구로 되돌아가는 것) 사건 등 크고 작은 사고들이 발생했다.
항공업계는 트럼프 2기 미국 행정부 출범 및 탄핵 정국 등의 여파로 환율이 크게 올랐고 국제유가도 치솟아 비용 부담이 커진 상황이다. 이런 가운데 잇단 헝공 사고로 불안이 확산돼 항공 수요마저 줄어들게 되면 수익성에 적잖은 타격이 예상된다.
한편 정부는 잇단 항공 사고에 대책 마련에 본격적으로 착수했다. 국토교통부는 민관 합동 점검단을 통해 LCC를 비롯한 11개 국적 항공사와 전국 공항의 안전 체계와 시설 등을 살피고 점검 결과를 바탕으로 4월까지 ‘항공 안전 혁신 대책’을 마련할 방침이다.
후원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