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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제약·바이오 산업이 중대한 갈림길에 섰다. 정부는 “제네릭 의존도를 낮추고 혁신 신약 중심으로 산업 구조를 전환해야 한다”는 명분을 내세웠지만 업계는 “기존 수익 기반이 무너지면 연구개발 인력 감소로 이어진다”고 정면 반박했다.
지난 22일 제약·바이오 관련 5개 주요 단체로 구성된 ‘제약바이오산업 발전을 위한 약가제도 개편 비상대책위원회(비대위)’는 긴급 기자회견을 열었다.
비대위는 “정부의 약가제도 개편안에 대해 강한 유감을 표하며 전면 재검토를 요구한다”고 촉구했다.
앞서 이형훈 보건복지부 제2차관은 언론 기고문을 통해 “약가제도 개선이 제약·바이오 산업의 혁신 동력을 되살리고 패러다임 전환의 계기가 될 것”이라며 정책 추진 의지를 밝혔다.
정부의 혁신 전략과 업계의 생존 논리가 충돌하는 지점을 짚어봤다.
정부는 현행 제네릭 약가 구조가 산업의 체질 개선을 가로막고 있다고 본다. 국내 제네릭 약가 수준이 OECD 평균 대비 2배 이상 높은 수준이어서 기업들이 이에 안주하고 있다는 인식이다.
이에 따라 정부는 제네릭 약가 산정 기준을 낮추고 절감된 재정을 신약 가치 보상과 약가 유연계약제 등에 재투입하겠다는 구상을 내놓았다. 매출 대비 R&D 비중이 8% 수준에 머무는 구조를 바꾸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업계는 약가 인하가 혁신으로 이어진다는 전제 자체가 현실을 외면했다고 반박한다. 제네릭은 국내 제약사 다수의 연구개발과 설비투자를 뒷받침하는 핵심 재원이다. 이 수익원이 급격히 줄어들 경우 연구개발 축소와 파이프라인 중단이 불가피하다는 게 업계 입장이다.
윤웅섭 제약바이오협회 이사장은 “설비투자 재원이 막힌다면 제약산업의 지속 가능성에 문제가 생길 것”이라며 “약가제도 개편으로 일부 업체만 생존한다면 산업이 무너지게 되고, 제약사가 모든 의약품을 생산할 수 없기 때문에 공급난 우려가 발생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비대위는 제네릭 산정 기준이 40%로 낮아질 경우 산업 전체에서 연간 최대 3조6000억 원의 손실이 발생할 수 있다고 추산했다. 이는 단순한 매출 감소가 아니라 연구개발과 고용을 동시에 위축시키는 구조적 충격이라는 설명이다.
정부는 약가 인하로 인한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해 필수의약품과 퇴장방지의약품에 대한 약가 우대와 원가 보전 장치를 강화하겠다는 방침이다. 공급 불안이 우려되는 품목에는 별도의 안전망을 마련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업계는 개별 품목 중심의 보완책으로는 한계가 뚜렷하다고 본다. 약가 인하가 반복될수록 채산성이 낮은 의약품부터 시장에서 사라지고 결국 공급 불안이 구조화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특히 국내 원료의약품 자급률이 30%대에 머무는 상황에서 약가 압박은 해외 저가 원료 의존도를 더욱 높일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글로벌 공급망 위기 시 의약품 수급 자체가 흔들릴 수 있다는 것이다.
비대위는 “고용 위축은 양질의 일자리 감소로 이어진다. 제약산업 정규직 비중은 94.7%로 전 산업 평균 61.8%를 크게 상회한다”며 “지방 생산시설 653개와 연구시설 200여 개가 전국 17개 시·도에 분포돼 있어 연관 산업 위축으로 지역경제에 타격을 줄 수 있다”고 강조했다.
약가가 최대 25% 인하되면 연간 약 3조6000억 원의 매출 감소가 발생한다. 이를 고용유발계수에 적용하면 약 1만4800명의 실직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고 있다.
결국 쟁점의 핵심은 속도와 방식이다. 업계는 혁신의 필요성 자체를 부정하지 않는다. 다만 충분한 영향 분석과 단계적 조정, 공식적인 민·관 협의 구조 없이 추진되는 급격한 약가 개편은 산업 기반을 훼손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비대위는 정부에 개편안 시행 유예와 함께 약가정책 전반에 대한 종합 평가를 요구했다. 과거 여러 차례 약가 인하가 있었지만 제도의 효과와 산업 영향에 대한 체계적 분석은 부족했다는 주장이다. 산업계 의견이 반영될 수 있는 공식 협의 구조 마련도 요청했다.
노연홍 제약바이오협회장은 “정부가 종합적인 평가를 거쳐 개편안을 마련해달라는 의미”라며 “합리적인 의견이 도출된다면 산업계도 동조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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