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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에서 ‘다이소’를 모르는 사람은 드물다. 자취를 시작하는 대학생, 살림을 꾸리는 주부, 가성비를 중시하는 MZ세대, 중년의 직장인까지 다이소는 생활 소비의 기본 인프라가 됐다.
균일가 매장이라는 단순한 업태를 넘어, ‘구경하러 가는 가게’라는 새로운 소비 습관을 만들었고, 온라인에서는 다이소 추천템 콘텐츠가 수백만 조회수를 올리며 하나의 팬덤을 형성했다.
그 중심에 창업주 박정부 아성다이소 회장이 있다. 그는 ‘말뿐인 고객중심’이 아니라 “가격을 먼저 정하고 그 가격을 지키기 위해 모든 공정을 재설계한다”는 철학으로 1,000원의 경제를 산업으로 바꿨다.
전쟁과 빈곤, “가족보다 먼저 죽지 않겠다”는 다짐
45세의 퇴사, 실패가 만든 질문 “새로 시작할 수 있을까”
박 회장의 유년기는 한국 현대사의 비극과 겹친다. 1944년생인 그는 전쟁을 겪으며 가족의 생계 기반이 무너지는 경험을 했다.박 회장은 6·25 전쟁기 부친을 잃은 뒤 어머니의 삯바느질로 형제가 버티는 시절을 보냈고, 끼니조차 불규칙한 환경에서 성장했다. 훗날 그가 ‘천 원의 가치’를 집요하게 붙드는 배경에는 이 시기의 결핍 경험이 자리한다는 해석이 따라붙는다. 박 회장은 “절대로 가족보다 먼저 죽지 않겠다”는 각오를 다졌다고 회고한 것으로 전해진다. 생존과 책임, 그리고 성실함을 ‘기본값’으로 박아넣은 출발선이었다.
박 회장은 한양대 산업공학과를 졸업한 뒤 구로공단의 전구 회사에서 16년간 근무하며 현장 관리자까지 올랐다. 그러나 1980년대 후반 노사 갈등의 격랑 속에서 돌연 회사를 떠나야 했다. 당시 나이 45세. 조직에서 밀려난 중년의 퇴사는 단순한 경력 단절이 아니라 삶의 구조 자체가 흔들리는 사건이다. 그는 그 시기를 “가장 견디기 힘든 건 모멸감”이었다고 표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그는 멈추지 않았다. ‘안정’이 사라진 순간, 오히려 ‘사업’이라는 해답을 붙잡았다.
일본 100엔숍에서 배운 것: ‘품질’과 ‘거래의 냉혹함’
IMF와 ‘가성비의 시대’…1997년 천호동 13평에서 시작
퇴사 이후 박 회장은 일본 시장을 돌며 한국 생활용품을 수출하는 무역을 시작했고, 그 과정에서 일본 균일가 업계와 연결됐다. 여기서 그가 마주한 것은 ‘좋으면 팔린다’가 아니라 ‘좋아도 요구는 끝이 없다’는 거래의 냉혹함이었다. 일본 측의 독점 요구, 거래 제한, 납품 조건 압박 같은 사례들이 박 회장 서사에서 반복된다. 그는 이를 견디며 역설적으로 ‘균일가 산업의 룰’을 체득했다.
즉, ‘싸게’는 감각이 아니라 시스템이며, 그 시스템은 공급망·원가·납기·검수·클레임 대응까지 전부 포함한다는 사실이다. 다이소의 경영 철학이 ‘가격 집착’으로 보이는 이유는, 사실 그 가격을 가능하게 하는 전 과정에 대한 집착이기 때문이다.
리스크 분산을 위해 국내로 눈을 돌린 박 회장은 1992년 아성산업을 세우고, 1997년 5월 서울 강동구 천호동에 13평 규모의 균일가 매장을 열었다. 초창기 간판은 ‘아스코이븐프라자’. 문을 연 지 얼마 지나지 않아 IMF 외환위기가 터졌고, 이 위기는 역설적으로 균일가 모델의 ‘사회적 수요’를 폭발시켰다.
불황이 깊어질수록 사람들은 비싼 브랜드보다 “필요한 것을 싸게” 찾기 시작했고, 매장은 빠르게 늘었다. 2001년 100호점 돌파는 상징적 장면이다. 당시 일본 측이 지분을 투자하며 브랜드명을 ‘다이소’로 바꾸는 계기가 됐다고 알려졌는데, 이 선택은 성장의 가속 페달이 되는 동시에 ‘일본 기업 논란’이라는 그림자를 남겼다.
‘가격을 먼저 정한다’…원가혁신의 핵심은 ‘역산’과 ‘대량’
1,200억 물류센터 투자…박정부가 말한 ‘가재의 탈피’
다이소의 운영 논리는 유통의 일반 공식(원가+마진=판매가)을 뒤집는다. 박 회장이 강조한 방식은 “판매가를 먼저 정하고, 그 가격에 맞춰 생산과 유통을 역산하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동원되는 도구는 크게 세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대량 발주다. 남들이 1만 개 주문할 때 100만 개, 300만 개를 주문하면 원재료 단가·라인 가동률·불량률 관리까지 구조가 달라진다. ‘유리 공장을 설득해 용광로를 24시간 돌리면 청소·재가동 비용이 줄어 단가가 내려간다’는 일화가 대표적이다.
둘째, 본질 집중이다. 손잡이를 빼고, 포장을 줄이고, 기능을 단순화한다. 소비자가 체감하는 효용을 남기고, 원가를 만드는 요소는 과감히 덜어낸다. 이는 ‘값싸게 만들기’가 아니라 ‘필요한 가치만 남기기’에 가깝다.
셋째, 비용 구조의 절제다. 대규모 광고나 과잉 패키징 대신 매장 트래픽과 입소문을 동력으로 삼는다. 다이소가 “구경하는 재미”를 제공하는 것도 결국 마케팅 비용을 트래픽으로 전환하는 방식이다. 팬덤은 공짜가 아니다. ‘지루하지 않은 매장’이라는 체험 설계가 비용을 대체한다.
균일가 모델은 매장이 늘수록 물류가 병목이 된다. 상품 종류가 폭발적으로 늘고, 점포 공급이 지연되면 매출이 아니라 신뢰가 무너진다. 박 회장의 승부사 기질은 2012년 용인 남사 물류센터 건립 당시 극명하게 드러났다. 당시 연 매출과 맞먹는 1,200억 원의 투자를 놓고 내부 반대가 극심했으나, 그는 저서 등을 통해‘껍질을 벗지 못한 가재는 결국 죽는다’는 논리로 물류 혁신의 당위성을 역설한 바 있다.
큰 투자는 단기 손익을 악화시키지만, 공급망을 ‘규모의 경제’에 맞춰 재정렬함으로써 오히려 장기 가격 경쟁력을 강화한다. 물류 투자를 비용 항목이 아닌 가격 경쟁력의 핵심 인프라로 인식하고, 공급망 효율화가 장기적인 단가 안정으로 연결되도록 설계됐다.
‘트래픽’이 만든 해자…대형 유통사가 따라오기 어려운 이유
다이소의 진입장벽은 ‘균일가’ 자체가 아니라 운영 역량의 결합에서 나온다. 올해 기준 매장에는 약 3만2,000종의 상품이 깔리고, 매달 600종 안팎의 신상품이 시험 판매와 검증을 거쳐 빠르게 교체된다고 알려져 있다. 방문자는 하루 100만 명 수준으로 추산된다. 매장 방문객 규모는 신제품 반응을 확인하는 지표로 활용되며, 판매 추정치와 발주 물량을 결정하는 근거 데이터로 연결된다.
점포 방문 수요가 높을수록 재고 소진 속도가 빨라지고, 이는 생산·구매 협상에서 규모의 이점을 확보하는 구조로 이어진다. 이러한 운영 사이클이 경쟁사 대비 안정적인 원가 체계를 형성한다. 겉보기엔 롯데·신세계 같은 대기업 표면적으로는 모방이 가능해 보이지만, 낮은 이익률을 전제로 품질 관리·재고 운용·물류 효율을 동시에 유지하려면 장기간 축적된 운영 역량이 필요하다.
해당 요소가 결합되지 않으면 수익성이 쉽게 악화된다.가격 수준에 비해 체감 품질이 일정하게 유지되지 않으면, 재구매율과 회전율이 동시에 하락해 운영 구조 전체가 약화될 수 있다.그래서 다이소는 저가보다 품질 관리에 더 민감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최근 실적도 이 구조를 반영한다. 지난해 아성다이소 매출은 약 3조9,000억 원, 영업이익은 3,000억 원대까지 확대된 것으로 집계됐다. ‘가장 비싼 제품도 5,000원’이라는 이미지가 남아 있지만, 실제로는 500~5,000원 다단계 가격대를 운영하며 상품 카테고리를 확장하고 있다. 다시 말해 다이소는 1,000원을 ‘상징’으로 유지하면서도, 수익과 확장을 위한 실질적 포트폴리오를 구축해 왔다.
2023년 지분 정리, ‘국적 논란’의 종지부… 다음 과제는 온라인
“원자와 같은 성실함”이 만든 한국 유통의 새로운 기준
다이소를 둘러싼 국적 논란은 이름과 지분이 함께 만들었다. 박 회장은 독도 후원 등으로 ‘한국 기업’ 정체성을 강조해 왔지만, 근본 처방은 지분 구조의 정리였다. 2023년 12월 일본 측 보유 지분(34.21%)을 약 5,000억 원에 전량 매입하며 100% 독립 체제를 완성했다는 보도가 있었다. 상징적으로는 “다이소는 일본 회사”라는 질문에 가장 단호한 답을 제공한 장면이다.
이제 남은 숙제는 온라인 전환이다. 오프라인의 강점인 ‘충동구매·구경 소비’를 온라인에서도 재현하려면 배송비·포장비·반품 비용을 통제해야 한다. ‘싸고 편한’ 두 조건을 동시에 만족시키는 순간, 균일가 모델은 또 한 번 확장된다. 다이소가 구상하는 통합 ‘다이소몰’과 초대형 복합 매장 구상은, 가격을 지키기 위한 다음 단계의 실험에 가깝다.
박정부의 경영은 ‘천 원’으로 요약되지만, 실상은 ‘천 원을 가능하게 하는 시스템’에 대한 집착이다. 전쟁과 빈곤, 중년의 퇴사, 일본 거래의 모멸과 압박, IMF가 만든 기회의 창, 그리고 물류라는 가장 현실적인 투자까지. 그의 궤적은 “혁신은 무모함처럼 보이는 시도에서 시작된다”는 교훈을 남긴다.
빠른 성공이 유혹하는 시대일수록, 다이소의 성과는 역설적으로 느리다. 매일의 단가를 10원씩 깎고, 불필요한 기능을 하나씩 덜어내고, 공급망을 한 단계씩 정교화하는 ‘작은 성실함’이 누적된 결과다. 다이소가 한국 유통업계에 남긴 족적은 단순한 저가 경쟁이 아니다. ‘가격을 사회적 약속으로 만들고,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 산업을 재설계한’ 사례로서, 1,000원의 경영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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