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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통산업발전법의 실효성 논란이 다시 불붙고 있다. 유통산업발전법은 대형 유통업체의 무분별한 확장을 제한하고 전통시장과 골목상권을 보호하기 위해 도입된 제도로, 대형마트와 기업형 슈퍼마켓(SSM)에 대해 의무휴업과 영업시간 제한을 핵심 규제로 삼고 있다. 그러나 온라인 유통이 주류가 된 지금, 법의 적용 대상과 시장 현실 사이의 괴리는 점점 더 커지고 있다.
특히 온라인 플랫폼의 ‘새벽 배송’을 둘러싼 규제 공백은 오프라인 유통의 붕괴를 사실상 방관하는 수준이라는 비판을 받는다. 대형마트는 의무휴업과 영업시간 제한을 적용받는 반면, 온라인 플랫폼은 시간과 공간의 제약 없이 시장을 잠식하고 있다. 같은 생필품을 팔면서도 규제의 잣대는 전혀 다르다. 공정 경쟁이 아니라 기울어진 운동장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오프라인 유통의 현실은 이미 한계에 다다랐다. 대형마트 2위 사업자였던 홈플러스는 기업회생절차를 신청하며 존폐의 기로에 섰다. 의무휴업, 출점 제한, 심야 영업 금지 등 유통산업발전법의 직접적인 규제를 받아온 결과다. 반면 온라인 플랫폼은 새벽 배송과 초단기 배송을 앞세워 소비자의 일상을 장악하며 외형을 키워왔다. 법은 오프라인만 묶고, 시장은 온라인만 풀어준 구조다.
문제는 이러한 규제가 애초 명분으로 내세웠던 ‘전통시장 보호’ 효과조차 입증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통계청과 중소벤처기업부 자료에 따르면 유통산업발전법 시행 이후에도 전통시장 매출과 방문객 수는 장기적인 감소 흐름을 벗어나지 못했다. 최근 10여 년간 전통시장 수와 소매시장 내 점유율 모두 하락세를 이어갔다. 대형마트 문을 닫는 날이 늘어났지만, 소비자는 전통시장이 아니라 온라인으로 이동했다는 의미다. 규제는 있었지만 보호 효과는 없었다.
그럼에도 규제는 여전히 오프라인에만 머물러 있다. 새벽 배송 금지 논의가 반복적으로 제기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는 배송 편의의 문제가 아니라 경쟁 조건의 형평성 문제다. 대형마트는 영업시간이 제한돼 있고, 의무휴업일에는 배송조차 할 수 없다. 반면 온라인 플랫폼은 365일, 하루 24시간 사실상 무제한 영업을 이어간다. 같은 소비자를 두고 한쪽만 족쇄를 찬 구조에서 누가 살아남을 수 있겠는가.
쿠팡 사태는 이 불균형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최근 쿠팡에서 3370만 명에 달하는 대규모 개인정보 유출 사실이 드러났지만, 김범석 대표는 국정감사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국내 소비자를 기반으로 성장한 기업의 최고경영자가 책임을 묻는 공식 자리를 외면한 것이다. 반면 쿠팡은 미국 사회를 향한 기부와 후원에는 적극적이다. 한국에서 장사를 하며 벌어들인 수익은 해외로 향하고, 국내에서는 책임을 회피하는 듯한 태도라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유통산업발전법은 이제 전면적인 재검토가 필요하다. 특정 업태만 규제하는 낡은 틀로는 시장을 살릴 수도, 보호할 수도 없다. 새벽 배송 금지는 편의를 억누르자는 주장이 아니라 공정한 경쟁의 출발선을 바로잡자는 문제 제기다. 오프라인만 규제하고 온라인만 자유로운 구조가 계속된다면, 법은 산업을 조정하는 장치가 아니라 왜곡하는 장치로 남게 될 것이다. 공정 없는 편의는 오래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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