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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조8000억 원 규모의 한국형 차기 구축함(KDDX) 사업자 선정 방식이 ‘지명 경쟁입찰’로 정리됐다. 숫자만 놓고 보면 단일 무기체계로는 보기 드문 대형 사업이고, 이해관계는 한화오션과 HD현대중공업이라는 두 조선·방산 대기업을 정면에서 맞붙게 만든 구조였다.
2년 넘게 이어진 공방이 경쟁입찰이라는 형태로 귀결됐다는 점에서 일단락으로 볼 수도 있지만, 이번 결정이 남긴 질문은 훨씬 근본적이다. 그것은 “누가 수주하느냐”보다, 우리의 방위산업 의사결정 체계가 실제로 ‘시스템’으로 작동하고 있었는가라는 문제다.
함정 획득 사업은 본질적으로 설계 연속성과 책임 일관성을 중시하는 영역이다. 개념설계–기본설계–상세설계·선도함 건조–후속함 건조로 이어지는 단계적 구조는 효율성 제고를 위한 단순한 절차가 아니라, 설계 변경 리스크와 전력화 지연 가능성을 낮추기 위한 안전장치로 축적돼 온 운영 원칙이다. 방사청 출범 이후 추진된 다수의 함정 사업에서 기본설계 수행사가 후속 단계까지 이어간 것도 같은 이유다. 설계 요소·스텔스 형상·전투체계 통합 로직이 맞물리는 고난도 영역에서, 이 연속성은 관행이라기보다 사고 가능성을 낮추는 제도적 장치에 가까웠다.
그러나 이번 KDDX에서는 그 원칙이 유지되지 않았다. 쟁점의 핵심은 보안 위반 사건 이후 감점 적용 문제였다. 이미 사법 절차와 제재가 한 차례 마무리된 사안이었음에도, 감점의 범위·시점·가중치를 어떻게 설정하느냐가 정책 논의의 중심으로 이동하면서, 판단의 기준선 역시 기술 연속성에서 규범적 책임과 제재의 원칙으로 옮겨갔다. 여기서 논점은 단순히 점수 산정의 문제가 아니다. 기술·연속성·전력화 안정성과 보안·책임·규범적 정의라는 두 가치 축 가운데 어느 쪽을 우선순위에 둘 것인지에 대한 정책적 선택이었다.
문제성 장면은 그 선택 과정에서 정책 신호가 행정 검토보다 앞서 작동한 듯한 인상이 노출된 대목이다. 최고 통치권자의 공개 발언 이후 논의의 흐름이 급격히 빨라졌고, 결과적으로 경쟁입찰이 확정됐다. 군사기밀 유출에 엄정하게 대응해야 한다는 원칙 자체는 타당하다. 다만 방위사업은 기술 축적·예산 효율성·전력 공백 관리가 동시에 맞물리는 체계적 영역이다. 정무적 판단이 행정적·기술적 검토 위에 반복적으로 개입하는 구조가 고착된다면, 그 파장은 정부가 아니라 군(軍) 조직과 산업 생태계, 그리고 궁극적으로 국민 안전으로 이전될 수밖에 없다.
경쟁입찰 전환 이후 한화오션이 상대적으로 유리해졌다는 평가가 나오는 것도 사실이다. 그럼에도 이는 곧바로 결과를 의미하지 않는다. 여전히 변수는 다층적이다. 보안 감점의 실제 적용 방식, 기술·가격·국산화율 가중치 구성, 선도함 이후 후속함 물량 배분 구조가 모두 최종 판정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무엇보다 평가 기준이 불명확하거나 해석의 여지를 남긴다면, 이번 사업은 즉시 또 다른 소송전·행정 갈등·일정 지연으로 전환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경쟁을 선택한 이후에는, 그 경쟁이 정확하고 예측 가능한 규칙 위에서 진행되도록 관리할 책임이 오히려 더 커진다.
지연의 비용은 이미 진행형이다. KDDX는 새로운 전력을 단순히 추가하는 사업이 아니라, 퇴역 일정과 연동된 전력 공백 보완 사업이라는 성격을 동시에 갖는다. 일정이 더 늦춰질수록 피해 범위는 특정 기업의 손익을 넘어, 해군 작전 가용성·전력 준비태세·국민 안전 체계 전반으로 확산될 가능성이 높다. 동시에 방산 생태계가 의존하는 신뢰의 축, 즉 “규칙이 예측 가능하게 작동한다”는 기대가 흔들리면 산업 참여자들의 투자·기술 축적·장기 전략 수립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이번 사례가 던지는 질문은 결국 하나다. 정치적 정당성·절차적 형평성·기술적 연속성 가운데 무엇이 최우선 가치인가, 그리고 그 우선순위는 사건마다 달라지는 ‘임시 해석’인지, 아니면 일관된 규범으로 축적되고 있는가.
방위산업은 어느 하나의 가치만으로 작동하지 않는다. 세 축이 균형을 이루지 못하면, 시스템은 특정 순간에 정치적 판단의 무게로 기울게 된다. 경쟁입찰은 하나의 방식일 뿐, 해답 그 자체는 아니다. 이제 필요한 것은 “공정해 보였다”는 형식적 정합성보다, “전력화와 산업 신뢰에 실질적 성과를 남겼는가”라는 결과 검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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