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호르무즈 파병 요구로 정부의 고심이 깊다. 그동안 군수지원함·해상초계기 파견설이 나돌았지만, 9월18일 이재명 대통령은 “관여·개입·지원하지 않겠다”고 밝혔고, 미 언론은 ‘한국의 파병 거부’로 보도했다.
그것으로 끝이 아니다. 대통령도 ‘원유 수송로와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최소한의 활동’은 필요하다고 했다. 강대국과 약소국의 동맹에는 ‘연루(entrapment)와 방기(abandonment)의 딜레마’가 있다. ‘연루’란 약소국이 강대국의 요구를 수용하다 엉뚱한 분쟁에 말려든다는 의미이고, ‘방기’란 연루를 회피하다 위험에 처할 때 강대국이 외면할 수 있다는 뜻이다. 지금 한국은 ‘방기를 초래하지 않을 만큼의 연루’를 찾아야 하는 딜레마에 처해 있다.
동맹국들에 더 많은 안보비용 분담을 압박하는 미국의 ‘거래적 동맹정책’은 진공에서 나온 것이 아니다. 미국은 패권국이자 자유민주주의의 수호자로서 많은 국제분쟁에 개입해 왔다. 동맹국들이 ‘연루’를 수용해 미국이 주도하는 다국적군으로 전쟁을 치렀지만, 매번 동맹국들의 기여는 미미했다. 1991년 제1차 걸프전에서 미국은 54만 병력을 포함해 다국적군 전력의 75%를 감당했고, 1999년 나토군의 코소보 공습 작전에서 580대의 항공기를 파견해 출격의 82%를 감당했다. 2001년 아프간 전쟁(약 72%)과 2003년 제2차 걸프전(약 86%)도 마찬가지였다. 이것이 미국의 피로감을 축적해 왔다.
한국도 국제정치의 메커니즘을 알기에 제1차 걸프전에 재정 지원과 의료진을 제공했고, 아프간 전쟁에 동의부대(의무)와 다산부대(공병)를 보냈다. 동티모르에는 상록수 부대(유엔평화유지군)를, 제2차 걸프전 직후에는 자이툰 부대를 파병했으며, 아덴만 해적에 대처하는 청해부대도 주둔시키고 있다.
특히, 오늘날 미국은 연루를 회피하는 동맹국엔 ‘방기 경고장’을 보낸다. 최근 대이란 작전에 나선 미 전투기들에 기지·영공 사용을 거부한 영국·스페인에 대해 포클랜드 영유권 지지 재검토와 무역 단절을 위협했다. 국력에 걸맞은 안보비용을 거부하는 독일에 ‘주독미군의 폴란드 재배치’로 경고하고 있다.
이에 한국은 두 가지를 중시해야 한다. 첫째, 연루로 인한 손실과 방기로 인한 손실은 차원이 다르다. 연루는 경제적·외교적 손실과 불편함을 초래하지만, 방기는 국가의 존망을 위협할 수 있다. 제2의 6·25 발발 시 미국이 방관한다고 가정하면 금방 알 수 있다. 둘째, 호르무즈 사태는 ‘강 건너 불’이 아니다. 수입 석유의 80%가 호르무즈·바벨만데브 해협을 통과하는 현실을 보면 금방 이해할 수 있다.
해외 분쟁 개입에는 본격적 참전, 비전투 군사지원, 인도적 지원, 방관 등 네 단계가 있는데, 한국은 이 중에서 ‘적절한 수준의 연루’를 찾아야 한다. 본격적 참전과 방관은 고려 대상이 아니겠지만, 결코 쉬운 결정은 아니다. 군사자산 파견이나 청해부대의 작전 구역 확대는 국회 동의가 필요하고, 해군 전력 공백과 이란의 경제·외교·군사 보복도 우려된다. 한국은 인도적 지원과 비전투 지원에 초점을 맞추고 불가피한 방어적 전투도 대비하는 수준이어야 한다. 정부의 현명함과 고도의 정치력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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