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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해 대기업 및 금융업계는 ‘능력중심’, ‘노(No)스펙’을 외치며 채용 형태를 바꾸려는 움직임이 나타났다. 일부 기업에서는 자기소개서 점수 입력란을 통해 평가에 반영하거나 일부 부문채용에서만 TOEIC 점수 기준을 제시했다. 그러나 기존 스펙을 대체할 만한 뚜렷한 채용 기준이 제시되지 않자 취업준비생들 간의 경쟁만 더 심화됐다는 의견이 나온다. 사진은 국내 한 취업박람회 모습. ⓒ스카이데일리
▲ ⓒ스카이데일리
[특별취재팀=최성규·김인희·이경엽·황새봄 기자]지난 3월 정부와 민간기업들이 취업준비생들의 불필요한 스펙 경쟁을 막기 위해 능력중심 채용을 하겠다고 선언했다. 지난해에는 10대 대기업 등 재계를 시작으로 금융업계까지 ‘노(No)스펙’, ‘스펙초월’을 외쳤다.
기업들의 이런 움직임에 스펙의 기초로 불리는 과도한 토익 열풍을 누그러뜨릴지 주목됐다. 하지만 정부가 공무원 영어시험을 토익으로 대체하고 기업들이 미온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어 토익 열풍이 식지 않을 것이라는 예상이 나온다.
갈 길 잃은 채용기준 “토익 이 정도는 넘어야”…취업준비생 경쟁만 부채질
최근 주요 기업들의 채용 공고를 조사한 결과, 평가에 토익 성적을 반영하는 스펙위주 채용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다수의 채용정보사이트에 따르면 12일 기준, BC카드·빙그레, 에어서울·동아쏘시오그룹·보령제약·이랜드그룹 등이 ‘토익 성적 제출’을 자격요건으로 내걸었다. 또 국민연금공단·한독·한섬·대구도시철도공사 등은 어학자격으로 토익 700점~860점 기준을 제시했다.
LG상사의 경우 2016년 5월 채용정보 기준, 어학점수는 TOEIC 800점 이상(또는 TOEIC Speaking Level 6 이상, OPIc IM2 이상도 인정)의 조건이 제시됐다.
지난 3월 진행된 현대차 개발·플랜트·전략지원 부문 채용정보에 따르면 “영어 성적 보유하신 계신 분 토익, 토익 스피킹, 텝스, 텝스 스피킹 중 1개 이상”으로 명시돼 있다.
일부 기업들이 채용과정에서 어학성적·자격증·해외연수 경험을 적어내는 칸을 없애기도 했다. 인사팀 등 기업 관계자들에 따르면 최근 채용기준에서 일부 채용부문만 토익 점수를 반영하거나 자격요건에서 없앴다. 일부 기업은 자기소개서 내 토익 점수 입력은 허용했다.
LG전자 관계자는 “R&D부문은 반영되지 않고 영업과 재무부문에서 TOEIC 점수를 보고 있다”며 “토익을 기준으로 삼는 이유가 따로 있기 보다는, 무엇이든 기준을 정해놓고 채용이 진행된다”고 답했다.
LG실트론의 경우 토익 점수 가이드라인으로 ‘600점’을 제시했다. 인사팀 관계자는 “공통적으로 영어실력의 기본 수준은 넘어야 된다는 기준을 제시했을 뿐 근무와 큰 연관을 지은 것은 아니다”며 “다만 해외전담 부문의 경우 영어실력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삼성전자의 경우 토익 스피킹 또는 OPIC 점수를 필요로 하는 직군만 의무적으로 제출하게 돼 있다. 삼성전자 홍보팀 관계자는 “다른 직군의 경우 영어성적을 제출하지 않아도 무방하다”며 “평가 기준을 구체적으로 언급할 수는 없다”고 전했다.
GS SHOP 인사팀 관계자는 “신입공채 기준 영어능력 우수자 우대는 있다”며 “토익 기준은 없지만 입력란이 있어 점수를 기재할 경우 토익점수가 반영되고는 있다”고 설명했다.
▲ 채용정보사이트들에 따르면 BC카드·빙그레, 에어서울·동아쏘시오그룹·보령제약·이랜드그룹 등이 ‘TOEIC 성적 제출’을 자격요건으로 내걸었다. 또 국민연금공단·한독·한섬·대구도시철도공사 등은 어학자격으로 토익 700점~860점 기준을 제시했다. 또 토익 고득점이 중요시하다는 은행업계에서는 지원자 점수 현황 분석 결과, 국민은행 최하 725점·최대 975점, 우리은행 최하 700점·최대975점, 하나은행 최하730점·최대 980점 등이었다. ⓒ스카이데일리
토익열풍 가세 정부, 내년 7급 영어 TOEIC 대체…사법·행정고시 등 이미 활용 중
토익은 기업 취업준비생 뿐 아니라 국가고시 및 공무원 시험 준비생도 보게 됐다. 정부가 영어시험을 토익 등 영어능력검정시험으로 대체했기 때문이다.
사법·입법·5급 공채 등 공무원시험에서 토익 점수를 활용중이다. 사법시험, 입법고시, 5급 공채(행정, 기술), 군무원 5급 등은 기준점수 700점 이상이다.
정부는 지난해 4월 2017년 7급 공채시험부터 영어과목을 영어능력검정시험으로 대체한다고 발표했다. 정부는 공무원 영어의 대안으로 토익·토플·텝스·지텔프·플렉스 등 검정시험점수제출로 대체한다고 공시했다. 토익 점수는 외무영사직외 7급 공채의 경우 700점 이상, 7급공채 외무영사직의 경우 790점 이상이다.
인사혁신처 인재정책과 강준이 사무관은 “현행에서 이뤄진 문법·독해 위주 평가 시험은 실제 영어 활용능력을 평가하는데 한계가 있다는 지적에 따라 변경된 것이다”며 “검정시험점수 제출로 대체된 데에는 성적을 보기보다 Pass/Fail 개념으로 기준점수를 제시한 것이다”고 설명했다. 이어 “9급 공채 부분은 아직 검토중으로 정해진 사안은 없다”고 전했다.
7급 공무원 응시생 김미나씨(가명·26)는 “공무원 영어 과목이 시험 과목으로서 효율성이 없다보니 그나마 토익 등 검정시험으로 대체하는 게 나을 수 있다”며 “그러나 이것도 영어활용능력 평가 취지에 적합한지는 의문이다”고 전했다.
수험생들 사이에서는 공무원 영어시험을 영어검정평가로 대체하면 아무래도 토익을 준비하지 않겠느냐는 의견이 다수 나오는 상황이다. 토익에 목맬 필요가 없다고 하지만 결국 토익을 봐야한다는 비판이다.
노스펙 외쳤지만, 불안만 증폭…입시생·직장인도 토익 응시
취준생들은 기업의 노스펙 움직임에 여전히 불안감을 드러냈다. 알게 모르게 채용에 토익이 반영되는 것 아니냐는 의견도 나왔다.
강남역 카페에서 공부하던 취업준비생 고혜나씨(25)는 “하고 싶은 일이 영어와 관련이 없음에도 토익에 발목 잡힐까 준비중이다”며 “‘남들 토익할 때 뭐했냐’ 식으로 학벌 따지듯 성실성을 평가하는 분위기라고 들었다. 남들 다하니까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다”고 전했다.
Y학원에서 만난 취업준비생 김현승씨(가명·24)는 “영어실력이 필요한 기업은 유용하다고 보지만 사무직 같은 경우는 토익을 보는 게 시간 낭비라고 생각한다”며 “실질적 능력과는 관련이 없는데도 다른 기업이 기준을 정하니까 상대적으로 기업 위상 등 때문에 너도나도 기준을 내세우는 분위기다”고 전했다.
금융분야는 토익 고득점을 요구하는 분야로 유명하다. J취업정보사이트에 따르면 은행별 지원자 점수 현황은 ▲국민은행 최하 725점·최대 975점 ▲우리은행 최하 700점·최대 975점 ▲하나은행 최하 730점·최대 980점 ▲농협 최하 605점·최대 985점이다.
▲ 강남역 일대 토익학원가에는 방학시즌이 아닌데도 토익시험 열기가 뜨거웠다. 취업준비생 외 대학진학을 목표로 한 수험생, 진급을 위해 준비하는 직장인 등 다양했다. ⓒ스카이데일리
은행 취업을 준비했던 직장인 김예린씨(25·여)는 “원서 쓸 때는 토익점수 기재하는 부분이 큰 비중을 차지 않는 형식으로 돼 있으나 막상 결과를 보면 중요하게 작용한다”며 “금융에서는 은행마다 중요하게 보는 곳이 있고, 잘 보지 않는 곳이 있는데 은행 업무를 평가하는 데 있어 토익을 기준으로 하는 것은 사실상 중요하지 않다고 본다”고 전했다.
금융권 지망자 박모씨는 “S은행과 H은행에 같이 본 지원자가 있는데 자격증과 경력이 많은 사람보다 자격증 및 경력이 없고 토익 점수가 높은 사람이 뽑힌 사례가 있어 의아해했다”고 전했다. 이어 “이런 사례가 있으니 더 고득점을 얻으려는 분위기만 과장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영어교육과 전공자인 김소연씨(26·여)는 “응시자가 많은데다 점수가 표기돼 결과로 나오니 기업이 객관적 지표로 활용하기에는 좋을 것이다”며 “그러나 회사마다 능력을 평가할만한 기준이 없다보니 인재는 곧 머리가 좋은 사람, 즉 토익점수가 높은 사람으로 정의되는 현상이 나타났다”며 아쉬움을 표했다.
이어 “영어를 잘하는 인재가 필요한 기업이라면 기업 자체에서 영어 실력을 평가하는 시험을 따로 만드는 것이 더 효율적일 것이다”고 전했다.
한 취준생은 “토익시험을 한 번이라도 응시한 경험이 있다면 토익점수가 결코 영어를 잘한다거나 머리가 좋다고 보장할 수 없다는 것을 느낄 것이다”며 “네이티브 스피커나 영어에 재능이 뛰어난 사람이 아닌 이상 토익시험은 지식보다는 ‘스킬’이다”고 말했다.
취준생·입시생·직징인, 애태우는 토익
기자가 직접 강남 토익학원 앞에서 만난 학생들은 취업준비생뿐만 아니라 직장인·입시생도 다수였다. 진급을 위한 직장인, 대학입시를 위한 수험생 등도 어쩔 수 없이 토익점수 기준에 애를 태우는 상황이다.
직장인 김승일씨(29)는 “진급을 목표로 토익을 수강하러 학원에 왔다”며 “지난 4개월간 토익 점수를 올리기 위해 벌써 40만원 이상을 썼다”며 “토익을 진짜 영어실력 평가 기준으로 삼는 것도 아닌데 신유형으로 바뀌는 것은 의미가 없고 더 복잡할까 우려된다”고 말했다.
▲ 자료:한국토익위원회 ⓒ스카이데일리
이어 “진급 기준에 토익 점수가 왜 반영되는지 모르겠고, 실질적 기준잣대가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지적했다.
저녁 7시가 다가오자 분주하게 뛰어가던 직장인 이진영씨(28)는 “현재 진급이 급한 것은 아니지만 회사에서 나중을 위해 토익 고득점을 따놓으면 좋다고 해서 준비하고 있다”며 “토익은 옛날부터 문제로 거론됐지만 토익 자체가 없어지기는 힘든 현실이 됐다”고 말했다.
약대 입시를 준비 중인 김지은씨(20)는 토익 시험 준비를 위해 H학원을 찾았다. 김 씨는 “토익 기준은 딱히 정해져있지 않지만 고득점이 필요하다는 말에 900점을 목표로 공부중이다”고 말했다. 이어 “토익이 전공과목과 일부 관련은 있다고 하지만 이렇게 시간을 소모할 만큼 크게 관련이 있다고 보진 않는다”고 덧붙였다.
재수생 권민경씨(20)는 학교 입시 전형을 위해 토익시험에 준비하고 있다. 권씨는 “학교 토익점수 기준이 높은 점수는 아니지만 지원자가 많기 때문에 고득점이 필요하다”며 “점수가 잘 나올때까지 응시할 계획이다”고 전했다.
한 토익 강사는 단순 제출 목적으로 토익을 공부하지 말기를 당부했다. 토익강사 K씨는 “학생들을 가르치다보면 단순히 점수 제출 목적으로 준비하는 경우를 많이 봤다”며 “‘토익점수가 있으면 도움이 되겠지’라는 생각을 하니 토익 응시의 의미가 없고 효율성이 떨어진다”고 전했다.
익명을 요구한 토익학원 관계자는 “국내에서 토익은 영어 실력을 확인하는 차원, 기업에서 채용하는 자격기준이 됐다”며 “기업 인사담당자들이 봤을 때 기업의 정책에 따른 것이고 자격기준으로 판단되기 때문에 채용기준으로 삼는 것이다”고 말했다.
이어 “개인적인 생각으로 토익이 아닌 다른 시험으로 대체된다 해도 비슷한 상황일 것이다”며 “굳이 영어를 사용하는 직무가 아닌 분야까지 잘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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