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1990년대 최고 인기를 구가했던 성우 최덕희(사진) 씨는 이름보다 목소리로 유명한 인물이다. 2000년대 초 건강악화로 약 10년여간 성우계를 떠났던 그는 2015년 다시 마이크 앞에 섰다. 최근 그녀는 전성기 때보다 더욱 활발히 활동하며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사진=박미나 기자] ⓒ스카이데일리
“처음 복귀한 후 가장 어려웠던 것은 10년 동안 급격히 발전된 녹음 방식이었어요. 함께 녹음하는 친구들 대다수가 모르는 후배들과 제작진들이었죠. 특히 그들이 제게 보내는 궁금증과 기대감은 절 굉장히 두렵게 만들었어요. 하지만 다시 제 목소리를 낼 수 있어 행복해요. 마치 딱 맞는 옷을 입은 느낌이에요”
성우 최덕희 씨는 세일러문의 세라, 웨딩피치의 피치, 텔레토비의 나나, 아기공룡둘리의 도우너, 검정고무신의 이기영, 명탐정코난의 코난 등 과거 1990년대 어린이들의 동심을 흔들었던 수많은 인기 애니메이션 캐릭터 목소리의 주인공이다. 지난 몇 년간 공백기를 가졌던 그는 얼마 전 현업에 복귀해 전성기 시절 못지않은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전속부터 프리까지 성우로 종횡무진…건강 악화로 힘든 시기 보내
서울예대 연극과 출신 최 씨의 원래 꿈은 연극배우였다. 성우라는 직업은 아예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하루는 연극 공연에 열중하던 최 씨를 본 지도 교수가 성우를 해 보는 것이 어떻겠냐는 지원을 했고, 그 일을 계기로 성우라는 직접에 흥미를 갖게 됐다.
“연극 공연 마지막 리허설 때, 맨 뒤에서 지켜보던 교수님이 저를 따로 부르시더니 ‘성우를 해 보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제안했어요. 이유를 묻자 교수님께서는 멀리서도 유독 제 대사가 귀에 꽂힐 만큼 힘 있고 아름다웠다고 말씀해주셨어요. 문득 존경하는 교수님의 안목을 믿어보자는 생각이 들었고, 성우의 꿈을 키우게 됐어요”
최 씨는 1987년 3월, 우연히 CBS 라디오에서 공채 성우를 뽑는다는 이야기를 전해 듣고 시험을 치렀다. 첫 성우 시험을 한 번에 통과한 그는 그곳에서 사회생활에 첫 발을 내딛었다. 그러던 중 같은 해 11월 KBS에서 성우를 뽑는다는 소식을 들었고, 또 다시 도전장을 던졌다. 당시 여자 성우 10명 뽑는 공채에 2000여명 가량이 지원해 경쟁률은 200:1까지 치솟았다. 하지만 최 씨는 바늘구멍 같은 확률을 뚫고 당당히 합격의 기쁨을 맛봤다.
최 씨는 1988년부터 4년 동안 KBS 전속 성우로 활동하다가 1993년 1월 사직서를 내고 프리랜서로 전향했다. 이후 1997년 그녀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놓은 작품을 만나게 된다. 바로 인기 애니메이션인 ‘세일러문’이다. 최 씨는 작품의 주인공인 ‘세라’의 목소리를 연기해 호평을 얻었다. 최 씨는 그 시기가 ‘인생에서 가장 빛나는 시간이었다’고 회상했다.

▲ 성우 최덕희 씨는 1990년대 방영됐던 수많은 인기 애니메이션 캐릭터 주인공의 목소리를 연기했다. 사진은 최덕희 씨가 목소리를 연기한 애니메이션 캐릭터들.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세일러문 ‘세라’, 명탐정 코난의 ‘코난’, 웨딩피치의 ‘피치’(사진 중앙), 아기공룡 둘리의 ‘도우너’(사진 중앙) [사진=각 애니메이션 캡처화면]
“당시만 해도 작품 속 주인공을 하려면 최소 10년 이상의 경력이 필요했어요. 저는 막 10년차에 접어들던 시기에 파격적으로 세일러문의 주인공 ‘세라’ 역할을 맡게 된 것이죠. 만화 속에선 주인공이었지만, 실제로는 잔심부름을 도맡아 하던 막내였죠”
물론 그녀에게도 시련은 있었다. 최 씨는 가장 힘들었던 때가 오히려 한창 프리랜서로 왕성하게 일하던 시절이었다고 회상했다. 세일러문 주인공의 목소리를 연기하던 1990년대 후반에는 한동안 아침 7시부터 밤 10시까지 녹음실을 전전할 만큼 힘든 스케줄을 소화했다.
“일주일에 고정 프로만 평균 7~9개를 소화했어요. 애니메이션만 해도 세일러문, 마법소녀 리나, 웨딩피치 등에 출연하는 역할을 계속 돌아가면서 연기해야 했죠. 제가 맡았던 역할들은 보통 지구를 구하는 등 역동적인 장면이 많아 목을 많이 써야 했어요. MBC ‘낚시왕 강바다’라는 애니메이션의 마지막 회 녹음을 마치던 날 너무 힘들어 혼자 차에서 펑펑 울기도 했죠. 목은 너무 아프고 시리즈 내내 느꼈던 긴장감과 압박감이 확 풀러버렸던 것 같아요”
결국 몸이 먼저 반응했다. 병원 진달 결과, 최 씨는 ‘성대 결절’ 직전 단계인 ‘폴립’ 진단을 받았다. 병원 측에서는 수술을 권했다. 하지만 수술을 하면 목소리가 변할 수 있다는 위험 요소가 있어 결국 수술을 포기했다. 성우로서의 결단이었다. 최 씨는 시리즈 중간에 주인공 목소리가 바뀔 순 없다는 생각에 아픈 사실을 숨긴 채 활동을 강행했다.
“다른 사람들 몰래 병원치료를 받으면서 일을 강행했어요. 주변에 아프다고 내색도 못 하고 혼자 굉장히 우울해했죠. 일은 여전히 바쁘고 목 상태는 나아지질 않고, 몸은 계속 망가져만 갔죠. 더 이상 녹음이 즐겁지 않고 고통스럽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저를 돌아보니 5톤 트럭을 등에 짊어지고 계속 달리고 것과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 최덕희(사진) 씨가 성우생활을 접고 캐나다 행 비행기에 오른 것은 무리한 스케줄로 인한 건강악화와 아들에 대한 사랑 때문이었다. 무려 16년 간 한결같은 목소리를 내 오던 그녀는 2002년 배우 케이트 윈슬렛이 열연한 영화 ‘타이타닉’ 여주인공의 한국어 더빙을 끝으로 활동 중단을 선언했다. 활동 중단 후에는 아들의 캐나다 유학길에 동참했다. ⓒ스카이데일리
최 씨는 지난 2002년 영화 ‘타이타닉’의 여자 주인공 목소리를 더빙한 후 ‘이제 정말 하고 싶은 것은 다 해봤다’라는 생각을 가지게 됐다. 성우 생활을 한지 16년만의 일이었다. 결국 그녀는 은퇴를 결심하고 화려했던 성우 시절을 마감했다.
“이젠 쉬어도 되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만일 떠나지 않으면 계속된 일의 압박 속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죠. 특히 아들에게 너무 미안했어요. 낳기만 했지 아이 손잡고 학교 한 번 데려간 적이 없더라고요. 늘 이른 아침에 집을 늦게 들어가다 보니 아들의 자는 모습만 보기 일쑤였죠. ‘아이에게 엄마로서 무엇을 했나’라는 고민을 가지게 됐어요”
전성기 시절 아들의 캐나다 유학길 동행 결단…“과감한 결정이 큰 경험 선사”
성우 최덕희 씨는 결국 아들이 원했던 캐나다 유학길에 함께 떠나기로 결심했다. 엄마로서 아이에게 제대로 된 역할을 하고 싶은 마음과 일에 지쳐 벗어나고 싶은 마음이 공존했기에 가능한 선택이었다. 아들의 구체적인 유학 계획이 확정된 후 2~3년 후 한국에 돌아올 마음으로 캐나다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하지만 그녀는 한국을 떠난 지 10년이 지난 뒤에서야 고향으로 돌아왔다.
“생각보다 캐나다에서의 생활이 당초 계획보다 길어졌어요. 그러던 중 지난 2014년 한국에서 키우다가 함께 데려간 강아지가 세상을 떠나는 일이 생겼죠. 문득 한국에 있는 사랑하는 사람들이 너무나 보고 싶었어요. 더 늦어지기 전에 하루 빨리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는 한국으로 돌아가야겠다는 마음을 먹었고, 2014년 말 한국행 비행기를 탔죠”
한국에 돌아온 최 씨는 가장 먼저 자신을 20년 넘게 지지해 준 팬클럽 ‘덕희다솜’ 회원들을 만났다. 팬들을 초청해 토크 콘서트를 개최했고, 그 자리에서 성우로 복귀할 의사를 내비쳤다. 그 일을 계기로 KBS라디오에서 그녀에게 섭외 요청이 들어왔고, 결국 2015년 1월 1일부터 라디오드라마 ‘오즈의 의류수거함’의 주연인 도로시 목소리 연기를 맡으며 현역에 복귀했다. 그 후 12년의 공백을 메우기 위해 더욱 많은 시간을 연습에 할애했다.

▲ 최덕희(사진) 씨는 복귀 후 더 깊은 목소리를 내기 위해 전성기 때보다 더욱 많은 노력을 해야 했다고 고백했다. 한 때는 회의감을 느꼈던 성우일이었지만 지금은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어 하루하루가 행복하다고 한다. ⓒ스카이데일리
“이렇게 열심히 해도 되나 싶을 정도로 열심히 연습하고 있어요. 특히 과거와 바뀐 연기 트렌드에 적응하려고 애쓰고 있죠. 예전에는 성우들이 독특한 어조를 내는 것이 중요했는데 요즘은 자연스러운 연기가 대세에요. 트렌드에 맞추면서 저만이 낼 수 있는 깊은 연기, 깊은 발성, 깊은 소리를 내기 위해 노력하고 있죠. 대본과 화면을 미리 받으면 마음이 놓일 때까지 100번도 넘게 연습해요”
최 씨가 캐나다로 떠났을 때 주변에서 가장 많이 들었던 질문은 ‘어떻게 가장 왕성히 활동할 수 있는 시기에 모든 일을 내려놓고 갈 수 있나’였다. 질문을 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그녀의 ‘큰 용기’에 부러운 감정을 드러냈다. 하지만 정작 최 씨는 자신의 변화에 대해 생각보다 큰 용기는 필요하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변화하기 위해선 앞으로 더욱 열심히 뛰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변화는 딱 ‘한 발짝’에서부터 시작하죠. 수입이 줄어들까봐, 현재 가진 것을 잃을까봐 전전긍긍 하다보면 결국 새로운 것을 볼 수 없게 돼요. 제가 만약 당장 잃을 것만 생각했다면, 캐나다에서 10년을 생활하며 새롭게 얻은 것들은 여전히 갖지 못했을 것 같아요”
최 씨는 변화를 두려워하면 안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한 발짝만 더 움직인다면 생각지 못한 다른 많은 것을 경험하고 얻을 수 있다는 신념도 품고 있다. 그 동안 볼 수 없었던 세상도 변화하면 볼 수 있다는 것이다.
“100세 시대라고 하잖아요. 100세 중 1년만 나를 위해 한 발자국 움직인다 치면 100분의 1정도 밖에 되지 않죠. 한 발자국 앞이 절벽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오히려 틀에 박힌 우물 속에서 나와 더 큰 세상을 볼 기회가 될 거에요. 그 한 발짝이 인생에 새로운 패러다임을 선물해줄 거에요”
후원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