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중구 청계천3·4가 일대에는 수 십여 개의 공구상점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이른바 을지로 공구거리다. 이곳은 작은 기계 부품부터 자재, 반제품, 장비 및 소모품 등의 매장이 한 곳에 모여 있다. 한 때는 ‘돈 있으면 탱크도 만들 수 있는 곳’이라는 우스갯소리까지 나올 정도로 유명한 곳이었다. 1953년 한국전쟁 직후 처음 생겨난 이후 오늘날까지 60년이 넘는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관할 지자체인 중구청은 이곳 일대를 ‘공구 특화거리’로 지정하고 해설사와 함께 거리의 정취를 감상하는 ‘을지유람’ 코스를 개방하는 등 관광 상품으로 발돋움 시키려는 노력을 기울이기도 했다. 그런데 최근 오랜 역사를 지닌 이곳 공구거리가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 서울시가 도심상권활성화를 위해 재정비 사업을 추진하고 있어서다. 하루아침에 터전을 잃게 될 상인들은 서울시의 결정에 반대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특히 이주 대책이 제대로 마련되지 않은 점을 지적하며 ‘제2의 용산참사’ 가능성까지 언급하며 결연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스카이데일리는 일대 지역 재개발 문제를 둘러싼 청계천 공구거리 상인들과 서울시의 갈등 상황을 현장진단했다. ![]() |

세운재정비촉진지구에 포함된 청계천 산업용재 시장에 뒤숭숭한 분위기가 연일 이어지고 있다. 일대 지역 재개발 추진으로 생활 터전을 잃게 된 상인들이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상인들은 제대로 된 이주대책도 마련되지 않았다며 ‘제2용산참사’ 가능성까지 언급하고 있다.
심지어 일부 상인들은 이번 사업 진행은 지난 2003년 이명박 전 서울시장 시절의 청계천 복원 사업에 비해 한참 미치지 못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당시 서울시는 청계천 복원 사업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일대 상인들을 송파구 가든파이프로 이전시켜주는 조치를 단행했다.
맨주먹 하나로 가족들 먹여 살리게 해준 삶의 터전 한 순간에 잃게 된 청계천 상인들
청계천 산업용재 시장은 청계2·4가 사이에 자리하고 있다. 이곳에 위치한 산업용재 관련 점포는 약 530여 곳에 달한다. 산업용재는 컴프레서를 비롯한 산업용 기계 및 공구, 건자재 등을 의미한다. 한국전쟁 직후 생겨난 이곳은 60년이 넘는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지난 2003년 청계천 복원 공사로 일부 상인들이 이주하면서 과거에 비해 규모가 줄긴했지만 여전히 공구산업의 태동지로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청계천 산업용재 시장은 앞으로 영영 모습을 잃게 될 위기에 처했다. 재개발 추진 때문이다. 지난 2006년 서울시는 일대 지역을 세운재정비촉진지구로 설정했고, 2009년에는 구체적인 촉진 계획을 세웠다. 도심상권 활성화를 위해 오는 2023년까지 서울시 종로구 종로3가동 175-4번지 일대 낙후된 지역에 기반시설을 확충한다는 내용이 계획의 골자다.
재개발 추진으로 철거 위기에 놓인 점포수는 약 300여 곳이다. 세운재정비촉진지구 3구역·5구역 내 위치한 점포들이다. 해당 부지에는 26층 규모의 주상복합 아파트가 지어질 예정이다. 한순간에 생활 터전을 잃게 될 상인들은 재개발 추진에 크게 반발하고 있다.
특히 제대로 된 이주대책 조차 마련되지 않은 상태에서 사업을 강행하는 점을 문제 삼으며 집단행동에 나선 상태다. 상인들은 각 매장을 덮는 천막에 ‘대체부지 없이는 죽었으면 죽었지 한 발자국도 움직일 수 없다’, ‘서울시는 책임져라! 우리 삶의 터전을’ 등의 문구를 내걸고 이주대책 없는 재개발에 반대하고 있다. 대부분의 상인들은 ‘재개발반대’가 써진 빨간 조끼를 입고 영업 중이다.
10년 넘게 산업용재시장에서 장사를 한 박문수(53·남·가명) 씨는 현재 심정을 묻자 “막막하다”는 말부터 꺼냈다. 그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한 자리에서 20~30년 씩 장사를 하며 생업을 이어왔다”며 “여기가 공구산업의 발상지라고 할 수 있을 정도인데 시공사가 9월까지 영업장을 비워달라고 일방적으로 통보해왔다”고 토로했다.
이어 “시장이 문을 닫으면 단순히 상인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직원들도 한 번에 실업자 신세로 전락해 버린다”며 “나라에서는 일자리를 늘린다고 하고 있는데 도리어 서울시는 시민들의 일자리를 뺐고 있다”고 지적했다.
박 씨는 “대부분의 상인들은 세입자인데 우리를 대상으로 설명회 같은 것은 하지도 않았고 건물주와 시공사끼리만 소통하고 결론지어 버렸다”며 “시공사가 건물주에게 중도금 70%를 지급하고 6월 말까지 세입자를 다 내보내면 잔금 30%를 주겠다고 하자 건물주들이 명도소송을 단행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30년 넘게 장사를 해 온 허부연(64·남) 씨도 “기존 상인들이 이주를 해야 하는 재개발이라면 몇 년 전부터 미리 통지해야 하는데 그런 안내가 전혀 없었다”며 “건물주하고만 모든 절차를 진행하고 세입자 중 공청회를 참석시킨 사람들은 아무도 없다”고 토로했다.
허 씨는 “서울시에서는 허가만 내줘 놓고서는 시공사와 알아서 협의를 하라고 하고 있다”며 “큰 보상을 요구하는 것도 아니고 계속 생계를 이어갈 수 있는 곳을 마련해달라는 것 뿐 인데 아무런 대책도 마련해주지 않고 무작정 나가라고 하면 어디서 뭘 하고 먹고 살란 소린지 모르겠다”고 성토했다.
지난 2일 청계천상권수호 비상대책위원회는 서울시청 앞에서 ‘청계천 개발 이주대책 촉구 긴급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날 비대위는 “국가에서 공공개발이라는 이름하에 민영 시행사를 앞세워 보상금을 쥐꼬리만큼 주고 우리들을 내쫓으려고 하고 있다”며 “이 곳이 삶의 터전이고 고향처럼 알고 삶을 영위하던 세입자들에 대한 대책을 마련해 달라”고 호소했다.
비대위는 △8개 세운재정비촉진지구 중 1개 구역을 산업용재 타운으로 만들어 분양해줄 것 △첫 번째 안이 불가능 하면 대체부지에 세운재정비촉진지구에서 영업하던 상공인들이 입주할 수 있는 대체 영업장을 만들어 분양해줄 것 등을 요청했다.
유락희 청계천상권수호 비대위원장은 “공공사업이면 이름에 걸맞게 해야 하는데 민간 시행사를 앞세워 제대로 된 보상은 커녕 대책조차 마련해주지 않고 있다”며 “역사와 전통이 있는 상권이고 상인들 간에 서로 유기적인 관계를 형성돼 있어 각자 이주는 현실적으로 어렵기 때문에 함께 이주할 수 있는 대책이 마련되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상인들의 요구는 입주금을 내고 들어갈 테니 다 함께 이주할 수 있는 공간만 내달라는 것뿐이다”며 “재정비 부지 중 일부 지역에 유통단지를 건설해 상인들을 입주시켜주는 방법이 가장 효과적일 듯 싶다”고 강조했다. 이어 “이주 대책이 마련되지 않으면 지금의 자리에서 한 발자국도 움직일 수 없다”고 덧붙였다.
“이명박 시장 때가 좋았는데…일단 부수고 보자식 재개발에 분통”

일부 상인들 사이에게서는 지난 2003년 이명박 당시 서울시장이 주도했던 청계천 복원 사업을 답습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을 내놨다. 최소한 대체부지라도 마련해주고 사업을 진행했다며 현재 서울시가 추진하는 재개발은 당시에 비해 한참 미치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청계천 산업용재시장에서 10년 넘게 장사를 해 온 오경섭(49·남) 씨는 “단순히 시장이 보기 싫고 낙후돼있어 싹 무너트리고 주상복합건물을 짓겠다는 것으로 보인다”며 “산업용재 시장이 산업·물류·유통이 한 공간에 공존하는 것인데 이를 더 발전시켜서 명소가 되게끔 육성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차라리 2003년 청계천 복원 사업 때는 대체부지를 마련해주는 흉내라도 냈다”며 “물론 입주비가 비싸서 못 들어가거나 입주 후에 사업이 어려워 진 상인들이 일부 있긴 했지만 기존 상인들을 위해 최소한의 성의를 보였다는 점은 현재 서울시의 태도와는 크게 다른 것 같다”고 강조했다.
지난 2003년 이명박 당시 서울시장이 추진한 청계천 복원공사 당시 청계천 주변 일부 상인들은 송파구에 위치한 가든파이브로 터전을 옮겼다. 가든파이브는 청계천 상인들을 위한 이주단지로 조성된 쇼핑몰로 지난 2008년 완공됐다. 이후 지난 2010년 공식 개장했다.
이현철 서울시 도시재생본부 역사도심재생과 다시세운관리팀 주무관은 “서울시에서 직접 진행하는 사업은 없고 중구청에서 전부 인·허가 사업을 하고 있다”며 “중구청에서 전부 관련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도시및주거환경정비조례에 따르면 분쟁조정을 위해 공무원 및 전문가로 구성된 사전협의처를 운영 하게 돼 있다”며 “협의처를 구성하고 철저하게 운영해 해결방안을 마련하라고 중구청에 공고를 낸 상태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가장 중요한 문제가 대체부지 마련 문제인데 올 초에 서울시 도시과에서 검토를 하다가 대체부지 마련을 하지 못해 중단했다”며 “현재는 중구청에서 해당 부지에 건물을 세운 이후 공구 백화점 형태로 상점을 만들어 기존 세입자들을 입주시킬 계획으로 계속 협의를 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이 주무관은 “서울시는 중구청에게 대체 영업장 확보 및 우선 임차권을 제공하는 방안으로 대책을 마련하라고 이야기를 하고 있는 입장이다”며 “세입자들과 지난달 말에 한 차례 협의를 했고 조만간 추가적으로 협의를 진행 할 계획이다”고 덧붙였다.
[김민아 기자 / 행동이 빠른 신문 ⓒ스카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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