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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병헌의 스포츠 세상
‘골프 해방구’ PGA 투어 피닉스 오픈이 부러운 이유는
박병헌 필진페이지 + 입력 2022-02-17 10:23:35
 
▲ 박병헌 스포츠칼럼니스트
16번 홀에선 음주가무와 고성방가
7년 만의 홀 인원에 광란의 무대로
미국 최고 인기 슈퍼볼 일정에 맞서
거리두기와 마스크 착용 강제 안해
국내선 관중 입장 언제쯤 가능하나
 
골프 대회의 관람객을 갤러리(gallery)라고 한다. 원래 복도, 화랑, 극장의 발코니 등을 뜻하지만 골프 관람객들이 페어웨이 양편으로 늘어선 모습이 화랑을 연상시키고 화랑에서 미술작품을 관람하듯 조용히 눈으로만 플레이를 지켜본다고 하여 의미가 추가된 듯하다. 골프가 매너의 게임이 듯 관전하는 데도 지켜야 할 최소한의 매너가 있기 마련이다. 갤러리라는 말은 원래 폭이 좁고 길이가 긴 복도를 의미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길이가 긴 복도를 오가다 보면 사람들끼리 부딪혀 기분이 언짢아지기 때문에 벽에 인테리어 용도로 그림을 장식하기 시작한 것이 오늘날의 미술관이라는 의미로 변한 것이다.
 
기존의 골프 갤러리 문화 부정
 
그러나 미국프로골프(PGA)투어 웨이스트 매니지먼트(WM) 피닉스 오픈은 이러한 골프의 갤러리 문화를 부정한다. 피닉스 오픈은 시즌 첫 메이저 대회인 마스터스와는 반대 콘셉트다. 마스터스에서는 뛰어도 안 되고, 졸아도 안 되고, 손뼉 칠 때 등을 제외하면 소리를 내도 경고를 받는다. 적막과 엄숙함 그 자체다. 핸드폰을 몰래 갖고 들어갔다 발각되면 평생 출입금지를 당하며, 맥주를 그린으로 던졌다가는 유치장 신세를 질 게 뻔하다.
 
미국 애리조나주 스콧데일 TPC 스타디움 코스에서 매년 2월에 열리는 피닉스 오픈은 ‘골프 해방구’로 유명하다. 선수들에게는 ‘지옥’이다. ‘콜로세움’이라 불리는 16번 홀(파3)은 티박스에서 그린까지 사방을 스탠드로 둘러쌌다. 지붕만 없을 뿐 마치 실내 경기장처럼 느껴진다.
 
2만석 규모의 16번 홀 관중석은 먹고 마시며 왁자지껄하며 흥겹게 응원하는 장소다. 더러는 선수와 갤러리들 간에 싸움도 빚어진다고 한다. 저스틴 레너드(미국)는 야유하는 관중에게 가운뎃손가락을 내밀기도 했고, 라이언 파머(미국)의 캐디는 관중과 멱살잡이도 했다. 이 대회만의 매력이라면 매력이다. 티샷을 그린 위에 못 올리는 선수들의 실수에는 엄청난 야유가 쏟아지고, 굿샷에는 우레같은 박수를 보내는 곳이 ‘골프 해방구’다.
 
우즈도 이곳 홀 인원이 인생 샷
 
25년 전인 1997년 ‘골프 황제’ 타이거 우즈(미국)가 이 홀에서 홀인원을 했는데 역시 환호와 더불어 맥주 캔들이 사방에서 날아들었다. 우즈는 이 샷을 인생 샷으로 꼽는다. PGA투어 모든 선수가 이곳에서 홀인원을 하고 싶어한다. 지난 13일 피닉스 오픈 3라운드에서 7년 만에 홀인원이 터졌고, 14일 최종 4라운드에서도 연거푸 홀인원이 나왔다. 관중은 이번에도 어김없이 맥주캔과 물병을 일제히 그린 위로 던지며 흥분과 열광의 도가니에 빠져들며 해방감을 즐겼다. 광란 그 자체였다. 이를 치우느라 경기가 20분가량 지연됐지만 주최 측은 전혀 아랑곳하지 않았다. 대회 주최 측 WM은 쓰레기 관리업체다. 이곳은 갤러리들의 스트레스 분출구이기도 하다. 재미교포 제임스 한(한국명 한재웅)은 2013년 이 홀 그린에서 당시 유행하던 ‘강남 스타일’ 말춤을 춰 환호를 받기도 했다.
 
‘잔디 위의 가장 위대한 쇼’라는 별명이 붙은 피닉스 오픈은 일주일 동안 70만명 정도의 관중이 몰린다. 특히 PGA투어 대회 가운데 유일하게 음주가무와 고성방가가 허락되는 해방구의 묘미를 위해 야구장처럼 스타디움을 꾸몄다. 관중은 음악을 틀고 고성을 지르며 경기에 아랑곳하지 않는다.
 
일주일간 70만여명의 갤러리 입장
 
피닉스 오픈이 대단한 것은 최종 4라운드가 미국풋볼리그(NFL) 결승전인 슈퍼볼과 날짜가 겹친다는 점이다. 미국에서 슈퍼볼의 인기는 너무나 막강하기 때문에 다른 스포츠를 비롯한 모든 이벤트가 슈퍼볼 일정을 피하기 마련이다. 흥행이 실패할까봐서다. 지난주 열린 PGA 투어 파머스 인슈어런스 오픈은 NFL의 준결승격인 NFC 챔피언십과 일정이 겹쳐 현지 시각 토요일에 경기를 끝냈다. 방송중계 사정이 있긴 했지만 피닉스 오픈과는 대비가 된다.
 
그러나 피닉스 오픈은 오히려 용감하게 슈퍼볼 당일 대회를 열면서도 무모하게 싸우지 않고 식전 행사 비슷한 전통을 만들어냈다. 코로나19가 여전히 기승을 부리고 있음에도 최종일인 14일에도 무려 12만여명의 관중이 찾았고 통제는 전혀 없었다. 가장 인기가 좋은 16번홀의 그린 사이드 좌석을 앞다퉈 차지하기 위해 경기장 문이 열리기 전인 새벽부터 관중은 장사진을 쳤다. 맥주 판매를 1인당 10잔 이내로 제한하는 규정도 있는 걸 보면 관중이 술 마시는 데 얼마나 돈을 많이 쓰는지 쉽게 추측하고도 남는다.
 
1932년 아리조나 오픈으로 시작된 이 대회는 PGA투어에서 다섯번째로 오래된 대회다. 대회 초창기에는 변두리 사막 지역에서 열리는 마이너 대회 성격이 강했지만 골프는 정숙해야 한다는 인식을 180도 바꾼 발상의 전환으로 인기대회로 급부상했다.
 
모든 곳이 해방구 되는 것은 무의미
 
다른 대회들은 피닉스 오픈을 부러워하며 따라하고 싶어한다. 그러나 모든 곳이 해방구가 된다면 일상적인 곳이지 해방구가 아니다. 골프는 갤러리와 선수가 매우 근접하는 스포츠다. 티잉 구역 등에서는 바로 옆까지 접근한다. 이런 곳을 해방했다간 사고가 나기 십상이다.
 
피닉스 오픈도 코스 전체를 ‘해방’하지는 않는다. 해방구 16번 홀은 관중이 티잉 구역과 멀리 떨어져 있다. 갤러리는 선수들을 가까이서 보지 못하는 대신 소리는 마음껏 지를 자유를 얻는 것이다.
피닉스 오픈처럼 관중이 많아야 해방이 가능하다는 얘기다. 코스 난이도도 중요하다. 피닉스 16번 홀은 비교적 쉬운 홀이다. 약 170야드에 호수 등 물도 없다. 이 홀에서 선수들은 대부분 8,9번 아이언을 쓴다. PGA 투어 혼다 클래식이 2018년 피닉스오픈을 따라 ‘해방구’를 만든 적이 있다. 대회장인 PGA 내셔널은 어려운 코스인데 주최 측은 까다롭기로 이름난 ‘베어 트랩’이라는 별명이 붙은 17번 홀을 해방했다. 홀은 190야드로 길고, 그린은 작다. 바로 앞까지 호수인데 뒤로는 내리막 벙커다. 바람도 심하다. 이 홀에서 스트레스를 받던 선수들은 소음에 실수가 늘어나 짜증을 냈다. 해방구는 피닉스 16번 홀 하나로 충분하다는 게 선수들 의견이었고, 혼다 클래식 해방구는 이내 사라졌다. 한국프로골프협회(KPGA)가 올해 피닉스 오픈과 비슷한 대회를 만들어 보겠다고 한다. 자칫 선수들에게 스트레스를 주는 우를 범하지 말고 절묘한 운영을 하길 바란다.
 
거대 미국의 자유주의에 부러움
 
지난해 피닉스오픈에는 코로나19로 하루 5000명만의 관중으로 제한됐으나 올해에는 전면 허용했다. 사회적 거리두기나 마스크 착용도 강제하지 않았다. 비록 피닉스 오픈 16번 홀이 아니더라도 PGA와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 등 골프 경기에 갤러리 입장이 허용된 것은 아주 오래전 일이다. 거대 강국 미국의 자신감과 자유주의와 힘을 보는 듯했다. 우리로서는 마냥 부러울 따름이다. 일방적인 규제와 통제 일변도의 우리나라 방역대책과는 크게 대조를 이룬다. 실외 스포츠인 골프에도 갤러리가 2년째 일체 허용되지 않았던 게 우리 현실이다. 그간 선수들의 부모도 입장하지 못했다. 4월부터 기지개를 켜는 국내 골프 대회에는 관중이 과연 대회장에 입장할 수 있을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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