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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대 대통령 선거에서 윤석열 후보가 당선되면서 '주 52시간제'에 대한 논의가 다시 뜨거워지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은 선거 기간 동안 여러 차례 주 52시간제로 인해 발생하는 문제점을 언급하며 제도 개편을 예고한 바 있다.
주 52시간제 개편에 대해 기업들은 대체로 환영하는 입장이지만 근로자들의 의견은 엇갈리고 있다. 이에 더해 포괄임금제 등 노동시간과 관련된 다른 주제에 대한 목소리도 터져나오고 있다.
업종 특성 미반영·임금 감소… 주 52시간제 부작용 뚜렷
문재인 정부는 휴식이 있는 삶을 보장하겠다며 ‘일·생활 균형 및 1800시간대 노동시간 실현’을 국정과제로 삼아 노동시간을 주 최대 68시간에서 52시간으로 단축하고 특례업종을 축소하는 내용을 담은 근로기준법 개정안(주 52시간제)을 마련해 2018년 7월 1일부로 시행했다.
주 52시간제는 노동자의 삶의 질을 개선한다는 도입 취지는 인정을 받았으나 추진 과정에서 산업 현장의 목소리를 충분히 반영하지 못해 적잖은 반발을 낳은 바 있다. 더욱이 업종 특성상 특정 기간에 일거리가 몰려 집중 근무가 필요하거나 근무 시간이 일정하지 않은 분야에서 특히 거센 반발이 일었다.
건설업계의 한 직원은 “건설 현장은 비가 와서 공사가 중단되면 다음날 밀린 일을 해야 하니까 더 일한다거나 하는 식으로 근무 일정이 들쑥날쑥한 경우가 많기 때문에 일주일에 몇 시간 일한다는 개념을 정확하게 잡기 힘들다”며 “9시 출근, 6시 퇴근하는 직종들과는 다른 계산법이 필요하다”고 답답한 심경을 토로했다.
잔업 시간이 제한되며 근로자 소득이 감소한 것도 문제로 부각되고 있다. 지난해 중소기업중앙회(중기중앙회)가 주최한 ‘주 52시간제 전면시행, 중소기업에서의 문제점과 개선방안’ 세미나에서 이정 한국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발표한 바에 따르면 주 52시간제 시행으로 중소 조선·뿌리 업체 근로자 임금이 30~40% 넘게 감소했으며, 이로 인해 숙련공들이 이탈해 인력난이 심화되는 등의 부작용이 적지 않다는 것이다.
또한 일부 기업에서는 주 52시간제를 적용해 일정 시간 근무하면 사무실 전력을 차단해버리기 때문에 직원들이 일정을 맞추기 위해 울며겨자먹기 식으로 퇴근후 재택근무를 하는 경우도 적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 경우 근무 시간으로 잡히지 않기 때문에 일을 더 하고서도 추가 수당을 받을 수 없어 문제가 되고 있다.
이러한 폐해를 해결하기 위해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은 주 52시간제 개편을 공약으로 내세웠다. 윤 당선인은 사업주와 근로자의 합의를 전제로 연장근로 및 탄력근로 단위 기간을 3개월이나 6개월 등 월 단위 이상으로 확대해 주 52시간제를 탄력적으로 운영하기로 했다.
이에 대해 중소기업계는 환영하는 입장이다. 중기중앙회는 대선 개표 후 입장문을 발표해 “윤 당선인은 주 52시간제와 최저임금 개선 등 중소기업계가 요구해온 과제들을 대부분 공약에 반영했다”며 “중소기업 정책공약들이 새 정부의 국정 아젠다로 이어져 국민 모두가 행복한 688만 중소기업 성장시대가 만들어지길 기대한다”고 입장을 밝혔다.
전문가들은 주 52시간제는 도입 초기부터 문제가 있었던 만큼 개편은 선택사항이 아니라 필수라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조동근 명지대학교 경제학과 명예교수는 “주 52시간제의 취지는 근로 시간을 선진국 수준으로 줄이자는 것인데 1년이 52주니까 한 주에 40시간만 일해도 연 2000시간을 훌쩍 넘는다”며 “선진국들의 근로 시간이 1700시간 정도인 이유는 직장인들이 일을 적게 하는 게 아니라 파트타임 근무가 많기 때문인데 이런 점을 간과하고 단순히 근로 시간만 맞추려고 하다보니 부작용이 생길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조 명예교수는 이어 “강제로 노동 시간을 제한하기보다는 일을 더 하고 싶은 사람은 일하게 해주고 장시간 일하기 힘든 사람은 적게 일하는 식으로 (근로시간 제도를) 개편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장시간 노동 우려·낙관론·환영 의견… 노동계 목소리 각양각색
주 52시간제 유연화에 대한 논의가 제기되면서 경제계에서는 긍정적인 반응이 나오는 반면 노동계의 의견은 엇갈리며 대조를 보이고 있다. 특히 평균 근무 시간이 긴 업종을 중심으로 잦은 야근과 주말 근무로 인해 삶의 질이 훼손될 수 있다는 우려가 분출하고 있다.
민주노총 화섬식품노조 IT위원회 관계자는 “게임 업계가 크런치모드 등 과도한 노동 시간으로 인해 과로사 피해자가 나오는 등 많은 사건 사고가 있었기 때문에 우려가 크다”며 “노사합의를 통해 결정한다고 해도 회사 규모와 관계없이 아직 노동조합이 없는 회사가 많은데, 회사가 과도한 노동 시간을 제시했을 때 개인이 현실적으로 거부할 수 있을지에 대한 우려가 가장 큰 상황”이라고 속내를 털어놨다.
다만 52시간제 유연화가 실시된다고 해도 근무시간이 예전처럼 늘어나지는 않을 것이라는 견해도 있다. IT업계의 한 종사자는 “요즘에는 오히려 근무시간을 40시간보다 더 줄이는 기업도 나올 만큼 근무시간이 복지의 하나로 자리잡은지 오래다”면서 “주 52시간제가 개편된다고 해도 예전처럼 장시간 노동에 시달릴 일은 많지 않을 것 같다”고 내다봤다.
여기에 개인의 선택에 따라 주 52시간제를 폐지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제기되고 있다. 금융업계의 한 직원은 “흔히 노동 시간이 줄면 좋다고 하지만 장시간 일하더라도 더 많은 급여를 받고 싶은 나 같은 사람도 있다”며 “정권이 바뀐 김에 주 52시간제도 유연하게 손봐서 돈 좀 더 벌었으면 좋겠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주 52시간제와 함께 오랜기간 문제로 지적받았던 포괄임금제에 관한 이야기도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포괄임금제는 근로 형태나 업무 성격상 추가 근무수당을 임금에 포함하는 제도로, 노동법으로는 규정돼 있지 않지만 판례와 행정해석을 통해 존재하는 예외적인 형태다. 포괄임금제는 노동 시간과 상관없이 임금을 받기 때문에 결론적으로 장시간 저임금 노동을 위한 도구로 사용되고 있는 비판을 받아왔다.
IT업계의 한 종사자는 “근무 시간이 늘어난다면 그만큼 돈도 더 받아야 하는데 우리 회사는 포괄임금제를 적용하기 때문에 오랜 시간 일해도 돈은 그대로 받아 간다”며 “근무 시간만 논의하지 말고 근무 시간에 대한 보상도 논의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최준선 성균관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포괄임금제 연봉 책정은 결국 한 달 동안 어느 정도 업무를 해야 할지 예상해서 돈을 주는 건데 갑자기 일이 쏟아질 수도 있고 반대로 일이 없을 수도 있기 때문에 근로자와 회사 모두 손해를 볼 가능성이 있다”며 “노동에 대한 보상은 일한 만큼 얻어가는 것이 맞고 그런 의미에서 포괄임금제와 같은 방식이 맞다고 본다”고 진단했다.
한편 노동 시간이 일정하지 못한 업종의 경우 노동 시간 측정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주 52시간제와 상관없이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기 때문에 이에 대한 대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힘을 받고 있다.
방송업계의 한 직원은 “촬영을 몇 시까지 하는지 확실히 알 수 없고 촬영이 끝난다고 바로 갈 수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근무 시간을 정확히 알 수 없는데다 따로 근로시간을 체크하지도 않는다”면서 “52시간제가 있으나 없으나 큰 차이가 없는 것 같다”고 볼멘소리를 하기도 했다.
김용문 덴톤스 리 법무사무소 변호사는 “52시간제 관련 사건에서 법적인 입증 책임이 근로자 쪽에 있기 때문에 근로 기록이 남아 있지 않아 수당을 받지 못하거나 근로시간을 인정받지 못한 사례가 많다”고 지적한 뒤 “근무 시간만 다룰 것이 아니라 근로 시간을 측정할 체계를 갖추는 것도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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