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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포커스] 머나먼 ‘공정 보상’(上- 출판업계)
‘검정고무신 비극’ 부른 저작권 분쟁… 배경엔 ‘불공정 계약’
작가 10명 중 6명 불공정 계약·행위 경험… 2차 저작물 피해 41%
고 이우영 작가, 포괄적 계약 탓에 15년간 작품 수익 1200만 원
정부, 표준계약서 개정 약속했으나 현장에서는 강제성 없어 회의적
윤승준 기자 기자페이지 + 입력 2023-04-10 00:07:01
최근 엔터테인먼트업계에 불공정계약과 관련한 다툼이 잇따른 데 이어 출판업계에도 비슷한 내용으로 비극이 발생했다. 1990년대부터 지금까지 사랑받는 ‘검정 고무신’ 작가의 갑작스러운 사망 소식이었다. 앞서 이승기·츄의 사건도 계약 내용이 문제의 발단이었다. 저작권과 관련해 출판·엔터 업계에 만연한 불공정한 관행·계약에 대해 들여다봤다. [편집자 주]

▲ 한국콘텐츠진흥원의 ‘2022년 웹툰산업 불공정 계약 실태조사’에 따르면 조사에 응한 웹툰 작가의 58.9%가 “불공정 계약이나 행위를 경험한 적이 있다”고 응답했다. 신일숙 한국만화가협회장이 지난달 27일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열린 ‘검정고무신’ 고(故) 이우영 작가 사건 대책위원회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뉴시스)
 
[특별취재팀=김학형 팀장|윤승준·장혜원 기자] 인기 만화 ‘검정고무신’을 그린 고(故) 이우영 작가가 출판업체와 저작권 분쟁 중 세상을 떠나면서 창작자의 저작권 보호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올랐다. 국내 웹툰 작가들은 10명 중 6명 꼴로 불공정 계약·행위에 시달리는 열악한 처지에 놓인 상태다. 불공정 계약으로 캐릭터 상품 등 2차 저작물에 대한 수익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2차 저작물이 만들어졌는지 모르는 경우도 허다하다. 이에 정부가 표준계약서 전면 재점검에 나서기로 했지만 법적 강제성이 없는 표준계약서만으로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푼돈 매절계약’ 창작자, 사업 수익서 사실상 배제
 
한국콘텐츠진흥원(콘진원)의 ‘2022년 웹툰산업 불공정 계약 실태조사’에 따르면 조사에 응한 웹툰 작가의 58.9%가 “불공정 계약이나 행위를 경험한 적이 있다”고 응답했다. 활동 분야별로 △그림 작가 73.6% △글(스토리·콘티) 작가 62.4% △작화(선화) 작가 62.2% 순이다. 계약 상대별로는 에이전시와 계약한 작가의 불공정 경험률이 64.6%로 가장 높았다.
 
작가들은 계약 관련 불공정 행위(복수응답)로 △2차적 저작권 등 제작사·플랫폼에 유리한 계약(40.8%) △계약 체결 전 계약사항 수정 요청 거부(32.1%) △특정 작가의 작품 등을 우대(30.9%) △정산내역 불성실 제공·미제공(30.1%) 등을 꼽았다. 작가들 대부분이 만화를 보여줄 수 있는 창구인 플랫폼·에이전시와 불리한 조건에서 계약을 맺고 있는 셈이다.
 
오래 전에 데뷔한 작가도 예외는 아니다. 만화 ‘검정고무신’의 고(故) 이우영 작가는 캐릭터 대행사 형설앤과 사업권설정계약 등을 맺은 뒤 저작권 분쟁을 겪어왔다. 2007~2010년 이 작가 등 원작자 3명은 형설앤 대표 장 씨와 캐릭터 9종에 대해 ‘(형설앤 측이) 포괄적·무제한·무기한으로 저작물 관련 사업을 할 수 있다’는 계약을 체결한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는 목적과 사업권을 특정하지 않고 범위를 지나치게 포괄적으로 담은 계약이었다는 점이다. 계약서에는 “원작물 및 그에 파생된 모든 이차적 사업권을 포괄한다” “일체 작품 활동과 사업에 대한 모든 계약권에 대한 권리를 장 씨에게 양도하고 위반 시 3배의 위약금을 낸다”는 내용이 담긴 것으로 확인됐다. 사업 기간이나 내용을 명확히 알 수 없는 내용이다.
 
쪼개진 지분도 문제였다. 계약 당시 원작자 3명과 형설앤은 ‘지분 쪼개기’ 형태로 계약을 맺었다. 캐릭터 9종 사업에 대해 이 작가 27%, 이우진 그림 작가 10%, 이영일 글 작가 27%, 장 씨 36%씩 지분을 나누는 계약이었다. 그러나 2011년 형설앤이 글 작가에게 지분(17%)을 양도받아 과반 이상을 확보하자 주도권은 한쪽으로 기울었다. 이를 통해 이 작가는 원작자로서 정당한 수익 배분을 받지 못할 뿐만 아니라 ‘검정고무신’ 캐릭터를 그릴 수 없었다.
 
이우영작가사건대책위원회 대변인 김성주 변호사(법무법인 덕수)는 “약 15년 동안 ‘검정고무신’으로 사업화를 한 개수가 77개를 넘어가는데 정작 이 작가가 수령한 금액은 총 1200만 원에 불과하다”며 “계약기간을 설정하지 않아 영구적인 사업권을 설정한 점, 사업 내용과 종류를 전혀 특정하지 않았고 원작자 동의 절차도 없다는 점, 사실상 포괄적 권리를 양도받으면서도 이에 따른 대가는 지급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계약은 불공정하다”고 주장했다.
 
▲ 크게 보기=이미지 클릭 / (그래픽=박서현 기자) ⓒ스카이데일리
 
문화계 ‘불공정 계약’ 문제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오래 전부터 쭉 있었다. 그럼에도 창작자들 대부분은 여전히 표준계약서에서 크게 벗어난 계약을 맺고 있다. 법률적 지식이 부족해 어려운 말로 가득한 계약서의 부분을 세세하게 이해하기 어렵고 신인 입장에선 하루라도 빨리 창작물을 세상에 내놓길 원하기 때문이다. 계약서 앞에서 완전한 ‘을(乙)’인 셈이다.
 
출판사 등이 계약서에 ‘포괄적 위임’ 등의 표현을 써서 창작자에게 일정 금액을 지불한 뒤 2차 저작물에 대한 권한을 포기시키는 경우도 흔하다. 이를 매절계약이라고 부른다. 매절계약을 맺으면 원작자는 2차 저작물에서 추가 수익이 발생해도 이를 한 푼도 받을 수 없다.
 
백희나 작가의 동화책 ‘구름빵’이 대표적인 매절계약 사례다. 백 작가는 신인 시절인 2003년 한솔교육과 “저작인격권을 제외한 저작재산권 등 일체의 권리를 한솔교육에 양도한다”는 내용의 계약서에 서명했다. 당시 백 작가가 받은 돈은 850만 원에 불과했고 이후 지원금을 포함한 총수입이 2000만 원에도 못 미쳤다.
 
반면 출판사는 ‘구름빵’이 40여만 부 팔리면서 20억 원의 매출을 올렸고 애니메이션·뮤지컬·캐릭터 상품으로 2차 사업화를 하면서 수천억 원의 가치를 창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백 작가는 저작권 침해 금지 소송을 제기했지만 2020년 원고 패소 판결이 확정됐다.
 
작가 10명 중 9명, 수익배분 50% 이하로 정산
 
웹툰업계 상황은 어떨까. 웹툰업계는 MG(Minimum Guarantee) 제도를 기반으로 작가와 수익배분 계약을 맺는다. MG제도란 ‘최소보장금액’이라는 뜻으로 플랫폼 또는 에이전시가 작품의 미래 수익을 당겨 작가에게 일정 금액을 미리 지급하는 것을 말한다. 표준계약은 아니다. 2015년 웹툰 플랫폼 레진코믹스가 이를 도입하고 업계 표준처럼 굳어졌다.
 
그 다음 플랫폼 또는 에이전시는 작가와 RS(Revenue Share)이라고 하는 수익분배비율을 정한다. 작품에서 발생한 수익을 나누는 것이다. 콘진원의 ‘2022년 웹툰 작가 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조사에 참여한 작가(708명) 중 대부분이 50% 이하의 RS로 계약을 체결했다. △40% 초과 50% 이하 24.7% △20% 초과 30% 이하 20.3% △10% 초과 20% 이하 14.8% △50% 초과 14.1% △30% 초과 40% 이하 13.6% △10% 이하 12.4% 순이었다.
 
후차감 MG도 문제다. 후차감 MG는 플랫폼(에이전시)과 작가가 작품 수익을 RS에 따라 우선 나눈 뒤 남은 이익에서 MG를 갚는 방식이다. 예컨대 월 4회, 1회당 100만 원의 MG를 받는 계약을 맺고 플랫폼(에이전시)과 RS를 5:5로 정했을 때 회당 수익이 150만 원이 나면 작가는 75만 원을 수익을 받고 100만 원의 MG를 채워야 한다. 작가의 최종 몫은 -25만 원인 셈이다. 적어도 MG보다 수익이 두 배 많아야 돈을 조금이라도 벌 수 있는 구조다.
 
▲ 크게 보기=이미지 클릭 / (그래픽=박서현 기자) ⓒ스카이데일리
 
한 달마다 초기화되는 ‘월 MG’에서는 그나마 양호하다. 플랫폼(에이전시)이 ‘-’로 남은 액수를 청구하지 않기 때문이다. ‘누적 MG’에서는 다르다. 작가는 연재기간 동안 다음 화 수익으로 ‘-’를 메워야 한다. MG를 못 채우면 연재중단이나 매절계약을 요구받을 수도 있다.
 
경력 15년차인 A작가는 “MG제도에 대해 정확히 설명하긴 어렵다. 작가마다 회사마다 서로 다르게 이해하고 있다”며 “물론 MG제도 자체는 잘 쓰면 여러 작가들에게 돈이 고루고루 분배가 될 것 같기도 한데 요즘은 작가에게는 돈을 최대한 안주려고 하고 회사가 더 가져가려는 것 같다”고 말했다.
 
경력 3년차 작가인 B씨도 “아무것도 없이 시작하는 신인작가들의 문턱이 낮아진다는 면에서는 긍정적이지만 업계에서 이걸 유행으로 다 따르면 안 된다”며 “최소 금액이 보장이 되더라도 매출이 적게 나오면 작가가 눈치를 보게 되고 또 작품에 영향을 주게 되고 에이전시가 떼어가는 수수료가 많아졌다”고 말했다.
 
이 같은 ‘불공정 관행’에 정부도 움직였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지난달 15일 불공정 계약을 막기 위해 ‘만화 분야 표준계약서’에 2차적 저작물 작성권 관련 내용을 구체적으로 넣을 계획이라고 밝혔다. 표준계약서에 △2차적 저작물 작성권 이용 허락 계약서 및 양도 계약서 신설 △제3자 계약 시 원저작자 사전 동의 의무 규정 등을 넣어 저작권 보호 장치를 마련한다는 방침이다. 오는 6월 이러한 내용을 담은 만화 분야 표준계약서를 고시한다.
 
현장 반응은 회의적이다. 표준계약서는 법적 구속력이 없어 ‘불공정 계약’ 문제를 해결하는데 한계가 있어서다. 불합리한 ‘관행’이 사라질지도 의문이다. 문체부가 표준계약서를 과거 여러 차례 개정했음에도 표준계약서는 아직까지 현장에서 제대로 정착하지 못한 상태다.
 
실제로 표준계약서를 사용하는 작가들은 많지 않다. 콘진원의 ‘2022년 웹툰 작가 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표준계약서를 인지하고 있는 사람은 조사대상 846명 중 606명(71.6%)에 달했지만 이들 중 ‘표준계약서 양식을 그대로 사용한다’고 답한 비율은 11.6%에 그쳤다. 41.4%는 ‘일부 계약 조항만 활용’을, 46.7%는 ‘표준계약서 양식 미사용’으로 응답했다.
 
박광철 한국만화가협회 이사는 “표준계약서는 내용적으로 창작에 관여하지 않은 제작사가 쉽게 공동제작자가 되는 길을 제시하는데 이는 이우영 작가가 겪은 고통을 업계 표준으로 확장하는 위험한 계약서다”며 “지금이라도 표준계약서와의 제작 과정과 세부 내용을 투명하게 공개해 이해관계자들이 논의에 참여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상명대학교 대학원 석사 박다현 씨는 논문 웹툰 저작권 불공정계약과 해결방안에 대한 연구’(2022)에서 저작권법에 저작권 계약내용이 성문화돼 있지 않아 최소한의 기준을 마련하면 불공정계약을 완화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박씨는 법제화로 계약 당사자들의 권리관계를 분명하게 해 웹툰 표준계약서로는 강제할 수 없었던 부분을 법률적으로 강제화한다는 점에서 기존보다 강하게 저작자를 보호할 수 있다사업자 측면에서도 계약 전 불공정한 내용이 될 수 있는 부분을 규정상 피할 수 있고 불공정한 계약이 체결되는 상황을 피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추가보상청구권은 사전적 방안에도 불구하고 저작권 계약 체결 당시에는 고려하지 못한 상황이 사후적으로 발생할 경우 일정 조건 하에 계약 변경을 요구하고 추가보상을 청구함으로써 저작자가 합당한 보상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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