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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본지 6월14일자 ‘법의 가면을 쓴 특권’과 8월9일자 ‘국회의원 특권 폐지를 위한 헌법소원을 내며’란 제목의 칼럼에서 특권폐지국민운동을 소개한 바 있다. 국회의원과 고위공직자가 누리는 특권 철폐를 주장하는 국민운동 단체인데 올해 4월 출범 후 매주 목요일마다 집회를 이어 가고 있다. 이 운동을 이끄는 상임대표 중 한 명이 진보 운동의 대부로 꼽히는 장기표 신문명정책연구원장이다.
장기표 대표는 서울대 법대 재학 중이던 1970년 전태일의 장례를 서울법대 학생장으로 치르며 민주화운동에 투신한 후 50년 넘게 진보 운동을 하고 있다. 무려 9년이 넘는 기간의 옥고도 치렀는데 국가배상을 청구하면 보상금이 10억도 넘겠지만 그는 청구하지 않았다. 2021년 7월10일 조선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보상금 신청서를 쓰는 게 구차하다. 쪽팔린다. 농사짓는 사람도 공장에서 일하는 사람도 국가 발전에 기여했는데 민주화운동 했다고 보상을 받는 것은 파렴치하다’고 답했을 뿐이다.
그런 장기표 대표로부터 지난 주말 한 통의 메일이 왔다. 첨부된 글의 제목이 의미심장했다. ‘나는 왜 벌금 납부를 거부하는가’였다. 그가 이 글을 쓰게 된 계기는 대통령 선거 경선이 한창이던 2021년 9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통령 후보의 비리 의혹을 누구보다 앞장서 공론화했다. 이재명 후보 아들이 성남시 대장동 사업 관련 회사인 천화동인의 직원이라는 의혹을 제기한 것이 시작이었다. 그 후 서울과 부산·창원·김해 일원에서 대장동 게이트 특검 촉구와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범시민연대 집회를 연이어 개최하며 이재명 후보에 대한 자격 검증을 촉구했다. 이재명은 성남시장 시절부터 불리한 기사가 나오면 고소·고발과 광고를 미끼로 한 회유로 차단해 왔다고 한다. 중앙 언론조차 그에 대한 부정적 보도를 못 할 정도였다고 한다.
그런데 장기표 대표가 나서자 상황이 급반전했다. 모든 언론이 장기표의 뒤를 따라 이재명 후보의 비리 의혹을 보도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제20대 대통령선거(2022)에서 이재명은 낙선했고 윤석열의 당선으로 정권이 교체됐다. 하지만 장기표 대표에게는 시련이 시작됐다. 이재명 씨 아들에 대한 명예훼손과 함께 이재명의 비리 조사를 촉구하는 집회가 선거에 영향을 끼쳤다는 이유로 공직선거법 위반죄로 기소된 것이다.
이 사건 변호를 필자가 맡았다. 공소장을 보면서 우선 기가 막혔던 것은 이재명 아들에 대한 명예훼손 혐의였다. 대통령으로 선출되려면 가족에 대한 검증도 불가피하다. 이회창 씨가 두 번이나 대선에서 낙선한 데는 아들의 병역 비리가 결정타였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가족도 아닌 측근의 국정농단으로 탄핵되고 중형을 선고받았다.
그렇다면 이재명 씨의 아들이 대장동 사업 관련 법인인 천화동인에 근무하는지 여부는 충분히 검증해 볼 만한 사안이었다. 신원을 밝힐 수는 없지만 제보자가 있었고, 이재명 씨 본인이 방송에서 큰 아들이 직원 다섯 명인 작은 회사에 근무한다고 말했는데 천화동인의 직원이 실제로 다섯 명이었다. 하지만 법원은 유죄를 인정했다. 실제 근무하는지 확인해 본 적이 없다는 점도 이유로 들었다. 그러나 회사로 직접 찾아간들 사실대로 답해 줄지 알 수 없다. 사실이 아니라면 그냥 후보자 본인이 부인해 버리면 그만이다.
실제 이재명이 부인했고 장기표도 더 이상 거론하지 않았다. 그것으로 끝내면 되는데도 이재명 후보 캠프에선 기어코 형사고발을 하고 검찰은 기계적으로 기소한 것이다. 미국의 경우 공직자에 대한 명예훼손은 고의를 넘어 현실적 악의(actual malice)까지 요구해서 사실상 처벌하지 않고 표현의 자유를 두텁게 보장하는데 이는 우리의 현실과 극명하게 대비된다.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도 문제다. 범죄 혐의를 받는 후보자에 대해 그 범죄 혐의를 집회 같은 데서 거론하지 말라는 것은 면죄부를 주는 것과 마찬가지다. 자질 여부를 떠나 대통령 후보가 될 최소한의 자격을 갖췄는지, 즉 보통인이라면 즉시 기소되어 유죄 판결을 받을 범죄 혐의가 있는지를 가리는 것은 선거운동 금지 이전에 표현의 자유로 보장받아야 한다.
그래서 무죄를 주장하며 공직선거법 관련 조항에 대한 위헌법률심판까지 신청했지만 법원은 모두 기각했다. 그래서 재판 개시 1년 만에 창원에서 벌금 400만 원, 서울에서 벌금 700만 원을 선고받았다. 대법원 재판을 받을 기회가 남았지만 미련 없이 포기하고 판결을 수용했다. 권력을 갖지 못한 장 대표에게 법원과 검찰은 그 어떤 특혜나 배려도 베풀지 않았다.
그러나 민주화운동 보상금마저 거부한 고령의 장기표 대표에게 1100만 원 벌금은 감당하기 어려운 금액이다. 그래서 장기표 대표는 하루 10만 원씩의 강제노동으로 벌금을 갚는 노역장 유치를 택하고 이달 13일 서울중앙지검을 거쳐 서울구치소로 향했다. 이것이야말로 법치의 작동이고 정상적인 사법 집행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지독하게 벌금 납부를 독촉하던 검찰이 돌연 태도를 바꿔 집행을 보류한다면서 구치소 수용을 거부했다. 하지만 집행이 잠시 보류된 상태에 불과하다.
반면에 검찰과 법원은 이재명 씨에 대해서는 어떤가? 시장 권한을 동원해 친형을 강제로 정신병원에 입원시켜 놓고도 경기도지사 선거 후보자 토론회에서 이를 부인한 이재명에게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파기환송이라는 면죄부를 주었다. 불체포특권을 내려놓겠다고 호언장담한 이재명은 막상 구속영장 실질심사를 앞두고는 체포동의안 부결을 절절히 호소했다. 그리고 법원은 그에게 영장 기각이라는 큰 선물을 안겨 줬다. 판사는 이재명이 정당 대표라는 점을 고려해 영장을 기각했다고 밝혔다. 그렇다면 권력을 가진 이재명은 무죄라는 것인가? 무전유죄 유전무죄 시대가 지나가니 이젠 무권유죄 유권무죄의 시대를 법원과 검찰이 앞장 서 연 것인지 따져 묻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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