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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10월4일 ‘원님재판이 되어 버린 엉터리 영장실질심사’란 본지 칼럼을 통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에 대한 구속영장 기각을 두고 판사에 대한 비판을 넘어 제도의 문제를 살펴야 한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필자가 변호했던 음주운전 피의자 사전구속과 이재명 대표·조국 전 법무장관 불구속을 비교해 구속 결정에 일관된 기준이 없음을 지적했다.
정치 상황에 따라 일관성 없는 구속이 자행되기도 하는데 채널A 이동재 기자 사건이 좋은 사례다. 이동재 기자는 유시민 씨를 신라젠 주가조작의 공범으로 엮으려고 신라젠 전 대표에게 허위 진술을 강요했다는 혐의로 2020년 7월에 기소되었다. 올해 1월에 대법원에서 최종 무죄가 확정되긴 했지만 사전에 구속되는 바람에 이동재 기자는 202일간 옥살이를 하고 회사에서 해고당하기까지 했다.
현직 기자가 구속된 것은 언론의 자유를 침해하는 일대 사건이었다. 그러나 당시 여당인 민주당이 총선에 압승해서 거칠 것이 없었고 국회의원 최강욱과 공영방송 MBC가 앞장서 ‘검언유착’ 프레임을 유포했다. 이렇게 서슬이 퍼렇던 정치 지형에 영향받았는지 영장담당 판사는 ‘언론과 검찰의 신뢰 회복’을 구속 사유로 들었다. 이 기자와 당시 한동훈 검사장과의 공모 관계가 영장에 기재돼 있지도 않았지만 판사는 검찰 고위직과 연결됐다고 단정해 버리기까지 했다.
판사는 검사가 청구한 내용만 갖고 판단해야 한다는 ‘불고불리(不告不理)’라는 대원칙을 어긴 셈인데 판사가 정치적 편견을 갖고 영장을 발부한 것으로 보지 않을 수 없었다. 이동재 기자를 구속했듯이 이재명 대표도 구속했다면 일관성은 유지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재명에 대한 영장은 기각돼 일관성을 상실했다. ‘피의자가 정당의 대표로 감시와 비판의 대상인 점’이 영장 기각 사유 중 하나였다. 감시와 비판을 하는 기자를 구속하면서 그 대상자는 풀어 주면 모순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구속영장 재판은 판사 마음대로 하는 ‘원님재판’으로 전락했다는 것이다. 이렇게 된 데는 제도 자체의 문제가 크다.
‘영장실질심사’는 1995년 제8차 형사소송법 개정으로 도입됐는데 그 전까지는 구속영장 발부 시 피의자 심문 없이 검사가 제출한 증거서류만 놓고 결정됐다. 그러다 보니 영장 발부율이 지나치게 높다는 비판이 있었다. 그래서 판사가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경우 피의자를 불러 심문할 수 있게 해서 영장 발부에 신중을 기하게 한 것이다. 몇 차례 개정을 거쳐 현재는 구속영장 청구 시 예외 없이 피의자를 심문하고 누구나 (국선)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수 있게 해 주었다. 그 결과 20년 후인 2016년 기준 구속영장 발부 건수가 4분의 1로 확 줄었다. 인권보장이 그만큼 강화된 것이다.
그러나 예기치 못한 부작용도 커졌다. 특히 유명인의 경우 영장실질심사 시간이 너무 길고 검토할 수사기록도 방대해졌다. 박근혜 전 대통령 영장실질심사의 경우 수사기록이 10만 쪽이 넘고 영장실질심사에 무려 8시간40분이 걸렸다.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의 경우엔 서훈 전 국가안보실장에 대한 심문이 10시간을 넘어 역대 최고를 기록했다. 최근에 이재명 대표 건도 9시간20분이나 걸렸다. 영장 발부 단계에서 이렇게 방대한 재판을 하니 영장 기각이 무죄 판결인 양 받아들여지는 여론 왜곡도 발생했는데, 한마디로 꼬리(영장재판)가 몸통(본안재판)을 흔드는 ‘왝더독(Wag the Dog)’ 현상이라 할 수 있다.
영장 재판이 국민적 관심사가 된 점도 문제로 들 수 있다. 이번 이재명 건의 경우 영장담당 판사의 실명과 얼굴까지 만천하에 공개되는 바람에 판사의 신변 안전이 우려되기도 했다. 영장 재판에 변호인 입회가 가능하니 돈 많은 피의자에게 유리한 ‘유전무죄 무전유죄’ 현상도 나타났다. 특히 48시간 동안의 구금만 허용되는 체포 단계를 거치지 않고 곧바로 구속영장이 청구되는 경우 영장심사일까지 보통 3~4일의 시간이 주어진다. 이재명 대표의 경우 무려 8일이나 주어졌다. 도주·증거인멸 우려를 심사한다면서 미리 예고하고 시간을 주는 것은 넌센스가 아닐 수 없다. 이 시간 동안에 도주해 버리거나 증거를 인멸하는 것이 이론상 얼마든지 가능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가 이처럼 모순투성이 영장 재판에 에너지를 소모하는 반면 미국·독일·일본 같은 형사소송법 선진국들은 그렇지 않다. 과거 우리나라처럼 검사가 제출한 서면만 놓고 간단하게 심사를 한다. 그래서 영장 발부율이 높을 수 있다. 그러나 구속 직후에 구금을 계속할 필요가 있는지에 대한 판사의 심문이 진행되고 이 과정에서 보석에 의한 석방이 폭넓게 허용된다. 미국의 경우 1년 이상 징역에 해당하는 큰 죄(felony)의 70%·그 이하 작은 죄(misdemeanor)의 90%에 보석이 허가된다고 한다. 보증금 납부나 주거 제한 같은 조치를 탄력적으로 부가해 방어권 보장과 신병 확보의 조화를 꾀할 수 있다. 반면에 우리나라는 일단 구속되면 좀처럼 보석이 허용되지 않는다.
그래서 필자는 구속영장 심사 시 사전심문을 폐지하고 과거처럼 서면 심사로 간소화할 것을 주장하고 싶다. 구속 단계에서는 수사기관의 부담을 최대한 덜어 줄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그 대신 구속 직후 미국처럼 보석을 폭넓게 허용해 인신 구속을 제어하면 된다. 일단 구속을 경험한 피의자는 보석으로 석방된 후에도 보석 조건을 위반하기 어렵다. 형사 재판·수사를 받는 중이니 허락 없는 주거지 변경·장거리 이동이나 증거인멸 시도 같은 것은 절대로 해서는 안 된다는 경각심을 심어 줄 수 있다.
문재인정부를 거치면서 형사 사법 제도의 왜곡이 매우 심해졌다. 공수처 폐지·검수완박법 원상회복과 함께 영장심사제도 개혁도 함께 추진되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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