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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희문의 영화세상] ‘살해 협박’ 담은 현수막은 정치 테러다
조희문 필진페이지 + 입력 2023-11-09 06:31:20
 
▲ 조희문 영화평론가·前영화진흥위원회 위원장
이건 테러다. 살해 협박을 담은 플래카드를 버젓이 내걸다니. 더불어민주당 이원욱 의원 지역구에 내걸린 ‘나에게 한 발의 총알이 있다면 매국노를 처단할 것’이라는 내용을 담은 대형 현수막은 이재명의 열혈 지지자가 비판 세력에게 보내는 협박이자 경고다.
 
양반의 수탈에 맞서는 ‘군도-민란의 시대’(2014)나 멕시코 마약 갱단의 내부를 조명하는 ‘시카리오-암살자의 도시’(2015) 같은 영화들에는 사람의 목을 잘라 걸어 놓은 장면이 등장한다. 반역을 했다는 핑계로 또는 조직을 배반했다는 이유로 처형을 하고, 다른 사람에게 공포심을 주어 딴마음 먹지 못하게 하는 겁 주기다. 잔인한 방법일수록 공포 효과는 더 커진다. 총·칼 같은 물리적인 무기를 사용하는 것만이 테러가 아니다. 말이나 글·현수막 따위를 내걸며 위협하는 것 역시 폭력이고 테러다. 하지만 대한민국은 민주화된 현대 사회다. 다른 나라의 원조로 겨우 연명하던 전쟁 직후의 나라도 아니다.
 
사교 집단의 광신적인 숭배 모습은 간헐적으로 드러날 때마다 사회의 시선을 모았다. 1937년 경찰에 적발된 ‘백백교’ 사건은 살해 암매장된 시신만도 346명이 나왔고 교주는 마음에 드는 여신도가 있으면 끌어다 성폭행하고 시녀로 삼았다고 하며 그 수가 60명이 넘었다고 한다. 오대양 교주와 신도들의 집단 자살 사건도 세상을 발칵 뒤집었다. 1987년 8월 경기도 용인 남사면에서 발생한 이 사건은 교주 박순자가 오대양이라는 사업체 겸 사교 조직을 만들어 운영하던 중 추진하던 사업이 실패하면서 궁지에 몰리자 열혈 추종 신도들과 함께 집단으로 목숨을 끊은 것이다.
 
이들 사건의 공통점은 교주가 무슨 말을 하든 신도들이 맹신한다는 점이다. 교주의 말 앞에서는 재물도 의미가 없고 정조 역시 헌납 품목에 지나지 않는다. 심하게는 목숨까지 헌신짝 버리듯 내놓고 내세나 환생을 확신한다.
 
사교 집단에서나 볼 수 있었던 열혈 추종이 정치권으로 옮겨 간 것은 ‘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노사모)이 처음이다. 2000년 4월, 16대 총선에서 새천년민주당 후보로 출마했던 노무현이 낙선하자 그를 지지하기 위해 만들어진 정치인 팬클럽이다. 선거유세 지원을 했고 2002년 대통령 선거에서 노무현 후보가 당선되는 데 기여를 했지만 단체 내부의 노선 갈등이 있었다. 과격하고 격렬한 지지활동이 ‘배타적인 추종’이란 비난을 받자 2019년 9월, 새로 설립된 노무현재단에 자료 일체를 넘겨주고 자진 해산했다. 단체 이름은 없어졌지만 주도 인물 대부분은 그대로 옮겨 갔다는 점에서 얼굴 화장만 바꾼 채 추종 활동은 계속하고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한때 ‘노사모’는 ‘노빠’라고 불리며 특정 정치인을 추종하는 극렬지지자의 대명사처럼 통했다.
 
여기에서 한 발 더 나간 집단이 ‘대깨문’(대가리가 깨져도 문재인)이다. 이들은 무조건 문재인을 지지한다. 대통령 취임 초기 ‘이니 마음대로 해’라는 구호는 이 집단의 맹목성을 보여 주는 상징이 되었다. 상대적으로 노사모가 선택적 비판이라도 한 것과는 달리 문재인이 하는 일이라면 막무가내로 지지한다는 점에서 더 열혈 집단이 되었다. 다른 명칭으로는 ‘문빠’라고 불리지만 광신도적인 행동을 조롱하는 비하적인 느낌이 강하다. SNS상의 지지 활동을 이어 가며 누군가 문재인을 비난하는 일이 있으면 그가 누구이든 공격하고 사이버 테러까지 저지른다. 김경수 경남지사의 ‘드루킹 댓글’ 사건에 이르러 이들은 정치에 노골적으로 개입하고 여론을 조작하는 지경의 빗나간 범죄 조직이 되었다.
 
이재명을 추종하는 ‘개딸’은 극단성이 극대화한 광란 집단의 상징이다. 어느 드라마에서 ‘개 같은 성격의 소유자’라는 뜻으로 처음 사용했지만 어느 사이 ‘개혁의 딸’을 줄인 말로 통하게 되었고, 빗나간 추종자를 가리키는 멸칭이 되었다. 이재명을 지지하는 수준을 넘어 반대자에 대한 겁 주기, 여러 개의 범죄 혐의를 받고 있는데도 무조건 지지하기, 검찰 조사나 법원 출석 때 모여서 연호하기 등 민주사회를 유린하는 행동들을 계속하고 있다.
 
반대자라면 죽일 수도 있다는 현수막을 보란 듯이 내건 것은 정치적 구호의 한계를 넘어 우리 사회에 대한 협박이자 공개 테러다. 누군가 ‘총이 있다면 범죄 백화점의 주인공 이재명을 처단할 것’이라고 걸었다면 길길이 날뛰었을 것이다. 그런데 주요 언론에서조차 이것을 과격 집단이 벌인 해프닝 정도로 여기며 대수롭지 않게 넘기고 있다. 강 건너 불 보듯 하기는 경찰도 마찬가지다. 실제 해꼬지를 당해야 긴장할 건가. 좌표 찍기로 겁박하고 살해 위협까지 공공연히 하는 세상이라면 더 이상 민주사회가 아니다. 우리 사회의 안전을 위해서라도 한계를 정해야 한다. 정치활동과 폭력은 구분되어야 마땅하고 건전한 지지자라면 분별심을 갖고  창조적 비판을 할 수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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