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월환의 시사저격] 불신 받는 지도부 공천에 얼마나 승복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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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국의 장수는 읍참마속 해야 하는 자리
총선 앞두고 공천 파동이 일면 참패 지름길

구월환 필진페이지 + 입력 2023-12-13 06:30:23

정당 혁신의 꿈을 안고 상경한 시골 의사는 여지없이 나가떨어졌다. 인요한의 메스는 껍질을 벗기는 데 실패했다. 꾀가 많다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만들었던 혁신위가 그러했던 것처럼 국민의힘 혁신위도 흡사 예정이라도 했던 것처럼 쓸쓸하게 막을 내렸다.

민주당의 혁신위원장은 이재명에게 가장 쓴 약(불체포 특권 포기)을 권유하던 중 난데없이 노인비하 발언이 빌미가 되어 퇴장했는데, 인요한도 가장 쓴 약(지도부 퇴진 등)을 내밀다가 ‘준석이는 도덕이 없다·부모 탓이다’ 운운으로 된통 얻어맞다가 기력을 잃었다.

그는 10월 순천에서 올라올 때 자신의 운명이 민주당의 경우처럼 끝날 줄은 꿈에도 몰랐을 것이다. 그것은 옛날 순진한 시골 청년이 꿈에 부풀어 멋모르고 서울역에 내리자마자 맞닥뜨려야 했던 풍경과도 흡사하다. 닳아 빠진 서울 깍쟁이의 꼬임에 빠졌다가 실망을 안고 결국 낙향해야 했던 쌍팔년도 어느 시골 청년의 모습이 오버랩된다. 그 순진한 시골 청년은 “눈 감으면 코 베어 가는 세상”이라는 말을 남겼는데 인요한은 “정치가 얼마나 험난하고 어려운지 알았다”는 말을 남기고 떠났다. 간단히 말해서 ‘사기’를 당한 것이다. 그의 뼈 있는 한마디는 두고두고 씁쓸한 여운을 남길 것이다.

그러나 입장을 바꿔 보면 집권당의 대표가 어떤 자리인데, 대통령이 얼마나 신임하는데, 기다리고 기다리던 공천 밥상이 바로 눈앞에 어른거리는데 갑자기 물러가라니 어림도 없는 일이었을 것이다. ‘칼을 대는 체하라고 했지 진짜 칼을 쓰라고 했나! 큰일 낼 사람이네!’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결국 5일 윤석열 대통령이 용산 대통령실 오찬에서 김기현 지도부의 손을 들어 주었고 이어서 8일에는 김기현·인요한 두 사람을 불러 다독거리는 것으로 상황은 일단 종료됐다. 일련의 과정은 정치보다는 행정에 가까운 처리 방법이다. 윤 대통령을 보좌하는 측근 참모들의 면면도 행정적이다.

그러나 국민의 마음은 그처럼 행정적으로 쉽게 처리할 수 없다. 국민은 행정 처리의 대상이기도 하지만 선거 때는 무서운 심판자다. 심판자를 만족시키지 않고 자기 식구를 만족시키려고 한다면 선거에서의 결과는 예측하기 어렵지 않다.

위기감이 고조되자 김기현 지도부의 퇴진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높아졌다. 심지어 국힘을 망치는 민주당x맨이 아니냐는 극언까지 나오고 있다. 여론조사 결과도 매우 어둡다. 국힘 텃밭인 대구·경북을 제외한 모든 지역에서 윤 정권을 견제하겠다는 표심이 높게 나왔다는 것이다.

최근 부산 엑스포와 혁신위의 실패 그리고 김건희 여사와 관련된 문제 등의 여파도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더 거슬러 올라가면 잼버리대회 망신, 서울 강서구 보궐선거 참패 등도 영향을 주고 있을 것이다. 이런 사태가 일어났을 때 정치적 문책은 보이지 않고 행정적 편의로 적당히 넘겼다. 윤 대통령은 한번 믿으면 끝까지 간다고 말했다는데 이런 생각은 평생 직장·평생 오너의 경우에는 몰라도 임기 5년의 국가 최고지도자, 읍참마속을 해야 하는 일국의 장수에게는 맞지 않는 말이다. 국민이 분노하는 잘못에 엄중한 문책이 없다 보니 여론이 악화되는 것은 당연하다. 친윤 핵심 장제원 의원이 불출마를 선언했다고 하지만 더 많은 추가 희생의 시범이 없다면 정권 지도부의 말은 먹혀 들지 않을 것이다.

사실 국힘을 이끌고 있는 김기현·윤재옥 이 두 간판 인물의 역량 자체가 큰 문제다. 그런 언변(말솜씨)으로는 곤란하다. 국민이 주시하고 있는데 눈을 내리깔고 뭔가 적어온 것을 더듬더듬 읽어 내려가는 모습이나 어눌한 표정들은 그야말로 꼰대를 연상케 한다. TV정치에서 이런 이미지의 영향은 치명적이다. 현 정권에 대한 청·장년층의 지지도가 심지어 10~20%대까지 내려가는 것도 이런 둔감하고 완고한 보수꼰대적 이미지 탓도 크다.

여기에 국힘 지도부의 구성도 문제다. 원내대표·사무총장·인재영입 위원장이 경찰 출신이다. 최근에 새로 취임한 임명직 최고위원도 경찰 출신이다. 최고위 회의 때 TV 노출이 가장 많은 정중앙 3인이 모두 영남 출신이기도 하다. 윤 대통령의 뜻인지는 모르나, 이런 현상은 소위 전국 정당이란 곳의 조직 원리에도 어긋난 것이고 전례도 없던 일이다.

리더십과 신뢰 수준이 부실한 지도부와 경찰당·영남당 소리가 나오는 편중 구조에서 생성될 공천 결과에 대해 당내에서 과연 얼마나 승복할지 의문이다. 공천이란 정치적 사생결단 작업인데 잘해도 반발이 따르는 법이다. 낙천자들의 입에서는 당장 누가 누구를 자르느냐, 당신들이 먼저 물러가라는 아우성이 나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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