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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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에 관한 책이면서 역사책이다. 제목은 ‘시문사답- 시가 묻고 역사가 답한다’지만 내용적으로 ‘시는 깨닫게 해주고 역사는 증명한다’를 증명한다. 시에 깃든 진리와 역사적 진리가 묘하게 호응하는 부분에서는 ‘인지상정’이라는 단어가 떠오른다.
저자는 두 명이다. 오정환은 시인이자 자기계발 분야 전문 작가로 ‘교양인을 위한 고전 리더십’ ‘성공, 질문으로 승부하라’ 등의 저작물을 갖고 있다.
김상범은 비즈니스 코치 전문가로 힘들 때마다 시를 외우고 사마천의 사지를 읽었다. 저서로 ‘탁월한 리더는 피드백이 다르다’ 등이 있다. 두 사람의 공통점은 문학과 역사에 해박하다는 것이다.
결핍은 상상력의 어머니
책은 중국의 춘추전국시대와 전한시대를 넘나들며 삶의 교훈을 전달한다. 시는 마중물 역할을 한다. 가슴에 쏙쏙 와닿은 시편들이 이야기의 포문을 열어젖히면 기다렸다는 듯 적절한 역사적 기록이 등장해 독자에게 희망과 용기를 준다.
가령 ‘아픈 흉터, 오늘을 사는 힘’ 꼭지에서는 박시교 시인의 ‘힘’을 소개한 후 그에 상응해 공자의 뛰어난 정신력을 열거하는 식이다. ‘몇 군데 옹이를 박은 소나무’처럼 공자는 어린 시절 아버지를 여의고 가난에 내던져졌음에도 혼자 힘으로 학문에 정진하여 후대에 길이 이름을 남기게 되었다.
저자는 너무나 풍족한 환경에서 성장한 아이들은 혁명적인 아이디어로 대성공을 거두기에는 동기가 약하다는 주장을 펼친다. 인간은 상처 때문에 좌절하기도 하지만 상처를 통해 성공의 기회를 포착한다. 인간은 결핍이 있어야 그것을 채우기 위한 상상력이 발동되는 존재인 것이다.
내용이 어려운 것은 아니지만 중국 역사의 복잡성 즉 다양한 지명과 헷갈리는 인명으로 여러 번 들춰봐야 하는 불편함이 있다. 인물관계도를 머릿속에 그려가며 책을 읽자니 더디기 그지없다. 내용을 다 이해하려고 하기보다 굵직굵직한 것만 기억하겠다는 마음으로 읽어나가는 편이 유익하다.
내면 청소 안 하면 역사에서 소거 당해
개중에도 눈에 쏙 들어오는 이야기가 있다. ‘썩은 살덩이 밀어내듯 쓸어버릴 것’에는 최영미의 시 ‘대청소’를 소개하면서 은나라 주왕 이야기를 꺼낸다.
주나라 은왕이 아니라 은나라 주왕이다. 러시아나 일본의 역사를 공부할 때는 복잡하고 긴 이름으로 인명과 지명이 헷갈리는데 중국 역사는 단 한 글자로 나라와 사람을 파악해야 하니 이 또한 헷갈리기는 마찬가지다.
은나라 주왕은 뛰어난 힘과 능력을 가졌지만 자기 잘못을 감추는 말재주 또한 뛰어났다. 그는 자기 능력을 과신하여 신하를 얕보았고 정치를 우습게 여겼다. 술과 음악에 빠져 지냈으며 여색을 밝혔다.
또한 피같은 세금으로 창고를 채웠으며 정원 연못을 술로 채우고 숲에는 고기를 매달았다. 읽다 보니 이게 주지육림 이야기로구나, 하는 감이 왔다. 그의 포악한 성격은 유능한 신하들을 떠나가게 하는 이유가 되었다. 직언을 무릅쓴 충신은 노예로 만들거나 심장을 도려내 죽였다.
결국 주나라 무왕이 그를 토벌하러 나섰다. 은나라 주왕은 녹대로 도망쳐 보물과 옥으로 된 옷을 입고 불 속으로 뛰어들어 죽었다. 어리석은 일이다. 불 속으로 뛰어들어 죽는데 보물과 옥으로 된 옷이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과거 대청소를 하게 되면 필요 없는 물건은 불에 태워 소각했다. 충신이 나쁜 습관을 직언했을 때 그것을 받아들여 스스로 몸과 마음을 정결이 했다면 불에 자신을 소각해버리는 비참한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저자는 군주가 청소할 것을 청소하지 않으면 자신이 청소된다는 엄혹한 교훈을 전하고 있다.
낭비 없이 살게 하는 공자의 시간
“황새는 날아서/ 말은 뛰어서/ 거북이는 걸어서/ 달팽이는 기어서/ 굼벵이는 굴렀는데/ 한날한시 새해 첫날에 도착했다// 바위는 앉은 채로 도착해 있었다.”
반칠환 ‘새해 첫 기적’이라는 시다. 저자는 이 시를 소개하면서 역사적 인물의 시간 활용법에 대해 다룬다. 진시황의 18번째 아들 호해는 아버지가 객사하자 간신들의 계략으로 왕위에 오른다.
출발이야 어떻게 됐든 나라를 잘 다스리면 되는데 그는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을 놀고 즐기는 데 바치기로 마음먹는다. 또한 그는 삶의 즐거움을 누리려면 반란의 싹을 잘라야 한다는 간신의 말에 솔깃해 충신들을 제거하고 골육의 형제들을 살해하는 만행을 저지른다.
이와 대비돼 낭비 없는 시간을 보내기 위한 방편으로 공자의 시간을 설명한다. 공자는 일생을 10년 단위로 끊어 설명했다. 15세에는 배움에 뜻을 세우고, 서른에는 자립하며, 마흔에는 미혹되지 않고, 쉰에는 하늘의 뜻을 아니 예순에는 귀가 순해지고 일흔에는 마음대로 해도 경우를 넘어서지 않게 된다는 것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지우학·이립·볼혹·지천명·이순·종심소욕 불유구가 그것이다.
“모든 사람이 공평하게 같은 분량의 시간을 받으며 살지만, 어떤 사람은 호해처럼 살고, 어떤 사람은 영원이나 공자처럼 목표를 세우고 달성하기 위해 열심히 산다. 그 결과 어떤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주고, 어떤 사람은 도움을 받는다. 심지어 끼니와 잠자리를 스스로 해결하지 못하고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받는다.”
저자는 사람마다 처지가 달라지는 이유는 시간을 어떻게 보내느냐에 있다며 목표를 세우고 하루하루 충실히 살 것을 강조한다.
마지막 장은 인생의 마무리, 죽음을 준비하는 방법을 다루고 있다. 조선시대 점술가 홍계관에 얽힌 일화는 우리가 죽음을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지 큰 지혜를 준다.
홍계관이 한 정승을 만나 언제 죽을지 알려주었다. 홍계관의 실력을 잘 아는 정승은 그가 예언한 해에 인생을 마무리하며 죽을 날을 기다렸다. 그런데 그해 죽지 않았다. 자신의 점괘가 틀릴 까닭이 없다고 생각한 홍계관은 정승을 찾아가 물었다.
"혹시 다른 사람에게 은혜를 베푼 적이 있으십니까?"
그러자 정승은 자신이 겪은 일을 다음과 같이 말했다.
"옛날 숙직을 마치고 집에 오다가 황금으로 만든 술잔 한 쌍이 든 붉은 보자기를 주었네. 대전 별감이 자식 혼사에 쓰려고 궁중의 금잔 한 쌍을 잠시 가지고 나갔다가 길에서 분실했다더군. 이 사실이 발각되면 죄를 면치 못할 것이라 별감에게 금잔을 주었지. 혹시 이런 것도 은혜가 되는지 모르겠네."”
홍계관은 이 얘기를 듣고 바로 그 일이 음덕이 되어 수명이 연장된 것을 알았다. 정승은 이후 15년을 더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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