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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희문의 영화세상] 영화로 만나는 이승만과 김대중
조희문 필진페이지 + 입력 2024-01-25 06:30:40
 
▲ 조희문 영화평론가·前영화진흥위원회 위원장
이승만 건국 대통령과 정치인 김대중이 만난다. 영화를 통해서다. 이승만 대통령의 재임 시절 전후를 다룬 ‘건국 전쟁’(이하 이승만)과 정치인 김대중이 집권 권력에 맞서는 저항의 상징으로 떠오르기까지의 과정을 그린 ‘길 위에 김대중’(이하 김대중)이 맞붙기 때문이다. 제작비나 상영관 개수 등을 비교하면 이미 개봉한 ‘김대중’이 월등하게 앞서고 2월1일 개봉하는 ‘이승만’은 힘겹게 고개를 넘는 처지다. 두 편 모두 다큐멘터리라는 점에선 같지만 의도하는 바는 확연히 다르다. ‘이승만’은 호도된 진실을 바로 잡으려 하고 ‘김대중’은 신화를 더욱 과장하려 한다.
 
대한민국 현대사에서 이승만 대통령만큼 넓고 깊게 오랫동안 비난받아 온 인물을 찾기 어렵다. 일생을 통해 그가 집중적으로 비난받은 시기는 대한민국 정부수립과 초대 대통령 선거에서 김구를 제치고 대통령으로 선출되어 온갖 난관을 헤쳐 나간 끝에 미국과 한미상호방위조약을 체결한 시기를 전후하기까지의 몇 년간에 집중되어 있다. 하지만 이것으로 북한의 한반도 적화통일 계획이 심각하게 타격을 받았고 한반도에 미군이 주둔한 이후에는 북한도 함부로 대한민국을 어쩌지 못하는 지경이 되었다. 이승만이 대통령이 된 이후에 생긴 변화였다.
 
그런데도 한반도의 정통성은 북한이 계승하고 있다는 것을 선전하기 위해서 북한 정권은 필사적으로 이승만을 비겁하고 야비한 인간으로 몰아 갔다. 숨 쉬는 것조차 트집을 잡을 만큼 사사건건 시비였고 마침내 성공했다. 이승만 대통령은 ‘야비하고 무능하며 측근에 둘러싸여 지낸 독재자’라는 이미지로 조작되었다. 북한 김일성 세력이 이승만 이미지 파괴를 조직적으로 선동했고 그 지침을 따르거나 동조한 친북 잔당들의 확대 재생산의 효과였다. 그런 말이 퍼져도 그게 무슨 뜻인지 몰랐거나 오히려 그 말에 동조하며 맞장구를 친 우파들의 무심함과 무능함이 겹쳐진 탓이다.
 
시간이 지나는 동안 말도 안되는 일들이 사실인 것처럼 굳어지고 건국 대통령이자 대한민국을 적화의 위기에서 구해 낸 위대한 지도자는 탐욕스럽고 무능한 인물이 되었다. 정부수립 후 토지개혁 시행으로 지주에게 목숨 걸고 살아온 소작농들을 자기 땅을 가진 경작자로 만들어 주었고, 이들의 재산을 지키려는 처절한 열망이 전쟁 상황에서도 대한민국을 지키는 눈에 보이지 않는 방어선 역할을 했다. 한국전쟁이 끝나고 미국을 국빈 방문한 이 대통령이 미국 조야의 열렬한 환영을 받았다는 것, 4·19 시위로 국민적 저항을 받았을 때 부상당한 학생들을 오히려 격려한 사실, 그리고 스스로 권좌에서 물러난 대통령이라는 부분은 언급조차 않는다. 어느 독재자가 제 발로 물러나는 경우가 있는가.
 
다큐멘터리 ‘이승만’은 이 과정을 꼼꼼하게 추적한다. 풍부한 자료 화면으로 이 영화가 사실을 근거로 했음을 보여 준다. 목소리를 높이지 않으면서도 차분하게 이승만의 발자취를 복원한 덕분에 지금까지 나온 ‘이승만 영화’ 중 가장 구체적이고 설득력 있게 보인다.
 
김대중 탄생 100주년을 기념해 공개한 ‘김대중’은 ‘선생님 찬가’처럼 보인다. 영욕이 엇갈리는 인물이고 정치를 수완과 기교로 헤쳐 온 인물이란 사실은 무시하고 찬양으로 일관하고 있기 때문이다. 박정희 대통령이나 전두환 대통령 시절에 있었던 극적인 사건들은 그를 민주화운동의 상징처럼 각인시키긴 했지만 시간이 지난 후에 돌아보면 ‘김대중 정신’의 실체가 무엇인지 모호하다. 화해와 용서를 강조하기에는 지역과 계층의 갈등이 갈수록 심해지고 남·북한 평화공존을 떠올리기에는 북한의 위협이 한반도를 전쟁 위험지역으로 내몰고 있다. 술수와 기만으로 일관했다는 것이 그만의 특별한 잘못은 아닐 것이다. 그가 살아온 시대의 정치는 밤과 낮이 다른 모습이 일상이었다. 국회에서 상대방을 비판하면서도 그 적에게 정치자금을 받는 일이 허다했고 스스로 내뱉은 말도 시간이 지나고 입장이 달라지면 교묘하게 번복되곤 했다.
 
‘김대중’에서는 그가 활동했던 시절의 정치 풍토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는다. 박정희·전두환 대통령 시절에 겪었던 일들을 일방적인 탄압으로 설정한다. 그러고는 그를 시대의 불의에 맞선 위대한 지도자·모든 일을 미리 예견한 탁월한 지도자·오로지 국민만을 생각하고 헌신한 인물로 둔갑시킨다. 이 영화의 무리한 점은 나레이션의 일방적인 나열이다. 사실을 그린 다큐멘터리처럼 보이지만 편중된 감독의 시각이 여과 없이 전달되는 것이다. 더구나 다음 영화가 또 나올 것이라는 마지막 부분의 예고는 특정인 선전 작업을 계속하겠다는 선언처럼 다가온다.
 
‘이승만’과 ‘김대중’은 다큐멘터리의 두 얼굴이다. 하나는 왜곡된 거짓을 바로잡으려 하고 다른 하나는 과장된 신화를 더 부풀린다. 용서와 화해를 강조한 그의 말이 진심이 아니란 뜻인가. 아니면 그를 지지하고 추종하는 세력들이 다른 길을 가고 있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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