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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CIA 前요원 마이클 이가 평가한 ‘건국대통령’
美의회서 ‘한미방위조약’ 공식화… 이승만 최대 업적
공산국가 인접한 극동 지역서 생명선 만든 혜안
상해임시정부보다 40년 외교 노력이 더 큰 역할
허겸 기자 기자페이지 + 입력 2024-02-19 18:40:00
 
▲ 마이클 이 박사는 이승만 대통령의 미 의회 연설에 대해 “‘한미상호방위조약’을 공고하게 호가인한 역사적인 순간”이라고 촌평했다. 그래픽 @스카이데일리
 
“나는 우리나라를 지켜 준 미국에 감사합니다. 그리고 사랑하는 아들과 딸들을 아낌없이 죽음의 한국 전선에 보내 준 미국의 모든 어머니에게 특별히 감사합니다.(My special thanks to all American mothers.)” 
 
미국 연방의회를 이내 눈물바다로 바꾼 1954년 7월28일의 연설문은 이승만 건국 대통령이 직접 작성하고 낭독했다. 전장터에서 스러져 간 자녀들의 죽음이 결코 헛되지 않았으며 미국인 부모들의 슬픔을 한미동맹의 수혜 국가인 대한민국이 잊지 않겠다는 깊은 울림을 전한 순간이었다. 연방 상·하원 합동회의장을 가득 메운 참석자들의 눈시울을 붉히게 만든 당시의 연설은 곧 한·미 관계의 굳건한 초석을 다지는 이정표와도 같다는 평가를 받았다. 6·25전쟁 휴전 직후 이 대통령을 세계적 정치가이자 전략가로 존경해 온 미국의 정치인·외교관·군인·학자와 시민들은 40분의 연설 시간에 무려 33번 기립박수를 보냈고 70년이 흐른 오늘날까지 미국은 혈맹인 한국에 대한 우방으로서 의리를 지키고 있다. 
 
미 중앙정보국(CIA) 동북아 담당 요원을 지낸 마이클 이(91) 박사(조지 워싱턴대·정치학)는 이 대통령의 미 의회 연설에 대해 “대한민국의 생명선이자 이승만의 최대 업적인 ‘한미상호방위조약’을 공고하게 확인한 역사적인 순간”이라고 촌평했다. 특히 “격변하는 국제정세 속에서, 그것도 공산국가들이 인접해 있는 극동지역에서 한국이 자유민주국가로서 발돋움할 수 있는 든든한 발판이 된 계기”라고 강변했다. 
 
CIA와 미 국방성 정보국 등 정보 계통에서 40년간 근무하며 크고 작은 한국 현대사 질곡의 역사에 직접 관여하고 격동의 한반도를 조사했던 이 박사는 18일(현지시간) 스카이데일리와 가진 국제 통화에서 “이승만이 결속한 한미동맹의 진가와 위대함을 재평가해야 할 때”라며 “좌익친북세력의 득세로 대한민국의 존립이 위태로워지고 있고 국제정세가 혼미 속에 소용돌이치고 있을 때 대한민국을 지키기 위해 건국 국부에 대한 국민적 각성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그는 “반공 국시·친미 외교·기독교 복음을 건국이념의 기초로 삼은 이승만의 신념과 정치철학, 빵이 없는 자유는 자유가 아니라는 그의 경제 개념 등 그분은 참으로 우리 현대사의 선지자였다”고 평가하며 “이토록 위대한 건국 대통령을 아직도 국부로 모실 생각이 없는 이들에게 ‘당신들이 대한민국에서 자유와 풍요를 누리고 살도록 해 준 건국 국부가 과연 누구인지 아는가’라고 되풀이해서 묻지 않을 수 없다”고 일갈했다. 
 
미 연방상원은 2020년 1월8일 한미동맹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결의안을 만장일치로 채택했다. 이 박사는 “우리 대·내외 적대세력의 오판을 사전 차단하기 위한 절묘한 조치였다”고 봤다. 결의안 본문에는 크게 4가지 핵심 내용이 담겨 있다. △우리는 상해임시정부가 아닌 1948년 8월15일 이승만이 건국한 대한민국을 동맹국으로 하고 그 정통성을 인정한다 △한·미 양국은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 인권 법치의 가치관을 공유하며 동맹관계를 유지하는 동반자다 △우리는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외교 안보 경제번영을 증진하는 데 있어서 결사적 역할(vital role)을 하는 동맹관계를 유지한다 △미국에 거주하는 200만 한국계 미국 시민의 미국 국익에 이바지하는 지대한 역할과 한미관계를 공고히 하는 역할을 인정한다는 것이다. 
 
이 박사는 대한민국 조야 일각에서 대한민국의 탄생은 구한 말 대한제국의 연속 또는 상해임시정부 투쟁의 결과로 보는 견해에 극구 반대한다. 그는 “대한민국의 독립을 공약한 1943년 11월27일 카이로 선언의 배경에 이승만의 집요한 외교 노력이 있었다”며 “상해임시정부의 노력보다 이승만 한 사람의 40년간 외교노력과 투쟁이 우리의 독립 투쟁사에서 더 위대한 역할을 했고 소련, 그리고 김일성과 내통한 박헌영·여운형이 주도 하는 해방정국의 혼란을 극복한 것도 그(이승만)였다”고 단언했다. 
 
특히 “얄타회담의 아이러니와 남북분단의 38도선 설정 등 부정적인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소련의 야욕을 물리친 이승만의 승리가 대한민국의 탄생으로 귀결됐다”며 “김구는 독립투사로 존경받아 마땅하나 김일성과 남북합작을 모색했고 대한민국의 건국을 정면으로 거부했기 때문에 이승만과 동격의 국부로 인정할 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 
 
영화 ‘건국전쟁’의 흥행 돌풍으로 새삼 회자되고 있는 김구의 공산주의적 정체성에 대해서도 곁들였다. 이 박사는 “김구가 대한민국 탄생을 거부했다”고 한마디로 요약했다. 그는 “국제연합한국임시위원단(UNTCOK)이 남한 총선을 감시하기 위해 서울에 파견됐을 때 중국 장개석 국민정부의 유어만(劉馭萬) 대표가 서울 경교장에서 김구를 예방하고 이승만 주도의 대한민국 건설에 적극 참여할 것을 권유했지만 김구는 자기가 북에 가서 사태를 파악한 결과를 언급하며 그의 정체성을 드러낼 결정적인 말들을 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김구는 대세가 김일성 주도의 공산주의 통일로 갈 것이다. 대한민국이 건국된다 해도 얼마 안 가서 조선 반도는 막강한 군사력과 조직을 구비한 김일성 북조선의 힘에 의해서 소멸될 것이다. 나는 그때를 기다리겠다. 그래서 나는 대한민국 탄생에 참여할 의사가 없다”고 말했다고 이 박사는 ‘김구·유어만 비망록’ 기록을 근거로 지적했다. 
 
3.15 부정선거와 연결지어 이승만 대통령을 깎아내리는 풍조에 대해서도 손사래를 쳤다. 이 박사는 “1960년 4·19 당시 이 대통령은 85세 노령이었고 자유당 실세들은 이 대통령의 눈을 가리고 이기붕의 부통령 당선을 위한 3.15 부정선거를 획책하려 했다”며 “그때 야당 후보 조병옥 박사가 월터 리드 미 육군병원에서 서거했기 때문에 이 대통령은 단일후보가 돼 무투표 당선이 이미 확정된 상태였으므로 3.15 부정선거를 이 대통령과 연결시켜서는 안 된다”고 못 박았다. 그는 이어 “엄밀히 말해서 4·19 혁명은 자유당의 부패가 표적이 돼야 했고 이 대통령의 건국이념과 업적을 부정할 명문은 없다”며 “지금 이승만 대통령을 폄하하는 세력은 그분이 김일성-김구 방식의 남북합작, 결국은 공산주의 통일국가를 이룩하기 위한 남북합작의 최대 방해자였기 때문”이라고 쏘아붙였다. 
 
이 박사는 “이 대통령이 20대 초반 약관의 나이에 저술한 ‘독립정신’은 대한민국 건국의 바이블과도 같은 것이었다”고 높게 평가했다. 그레그 브래진스키 조지워싱턴대 사학과 부교수는 “한국 근현대사에서 이승만을 빼놓고는 어떠한 사건도 설명이 안 된다”고 언급했고 세브란스병원 설립자 올리버 R 애비슨 박사는 “이승만은 한국이 배출한 세계적인 위인이며 조지 워싱턴과 토머스 제퍼슨·에이브러햄 링컨을 합친 것보다 더 위대한 인물”이라고 평가하였다. 매튜 리지웨이 미8군 사령관은 “이승만이 공산주의와는 절대로 타협을 거부했기 때문에 위대한 대한민국이 탄생했다”고 치하했다. 
 
우리나라 역사 이래 최초의 국민국가를 건설하고 농지개혁과 교육제도를 확립한 공로도 잊어선 안 된다고 했다. 이 박사는 “건국 당시 국민의 70%가 소작농이었으나 그들에게 토지를 상환 조건으로 분배해 소유권을 보장했고 해방 직후 국민의 78%가 문맹이었지만 그분의 통치 기간 내에 적극적인 교육정책으로 문맹률이 10%로 급감해 이는 국가산업화에 크게 이바지했다”고 밝혔다. 영국 셰퍼드대의 한 논문은 “역사 속에서 강대국 사이에 끼어 시달리던 100개 국가를 추적해 보니 모두 이웃 나라에 흡수 또는 통합되며 망했지만 생존한 나라가 두 나라가 있다”며 “하나는 국민의 강력한 애국심으로 나라를 지킨 핀란드이고 또 하나는 한미동맹 덕분에 생존하고 급성장한 대한민국”이라고 평가했다고 이 박사는 전했다. 
 
또한 이 대통령이 집필한 책 ‘코리아 완충지대론’은 러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이 머지않아 아시아 패권을 장악한 뒤 미국에 도전할 것이란 점을 암시했다. 1941년 6월에는 저술한 책 ‘제팬 인사이드 아웃(Japan Inside Out)’이 뉴욕에서 출판됐다. 일본의 본질과 정체를 폭로하면서 불원간 일본이 미국을 공격한다는 확신을 언급한 책이다. 정확히 6개월 후인 그해 12월7일에 진주만 폭격 사건이 발생했다. 그 책에서 이승만은 결국 연합군의 승리로 끝나고 대한민국 독립의 문이 열리고 독립된 대한민국은 세계열강과 어깨를 겨누는 강국으로 성장할 것이라고 예언했고 모두 현실이 됐다. 노벨 문학상을 받은 펄 S 벅 여사는 “이승만은 20세기 최고의 전략가”라고 극찬했고 미 국방성은 이 책 수십만 권을 사서 군인들에게 필독서로 배포했으며 이 책은 영국과 프랑스에서 베스트셀러로 팔렸다. 
 
대한민국 건국의 역사는 기독교 정신으로 시작했다고도 강조했다. 이 박사는 “5000년 역사에서 처음으로 탄생하는 민주주의 국민국가 건설을 위해 1948년 5월10일에 국민이 투표해 198명의 제헌 국회의원이 선출되고 국회의장으로 선출된 이승만은 개원 연설에서 ‘우리나라에 민주주의 국가가 탄생하게 된 것은 사람의 힘으로 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총과 도우심으로 성취됐다’고 공을 돌리며 종로갑에서 당선된 이윤영 의원(감리교 목사)을 불러 내 개원 기도를 시켰다”면서 “1948년 8월15일 건국 기념식에서도 이 대통령은 헌법책 위에 성경책을 올려놓고 그 위에 손을 얹은 채로 ‘우리 민족을 사랑하시는 살아계신 하나님과 삼천만 동포 앞에서 헌법을 준수하는 충실한 대통령직을 이행하겠다’고 고 취임 선서했을 정도로 대한민국은 기독교 정신을 바탕에 두고 건국된 나라”라고 설명했다. 
 
이 박사는 “대한민국은 건국 역사를 가르치지 않는 유일한 나라”라고 통탄하면서 “지금 전 세계에서 건국 국경일을 지키지 않고 국부의 생일을 국경일로 지키지 않는 나라는 우리나라뿐이다. 서울 광화문 네거리에 우리의 자랑스러운 국부 이승만 대통령의 동상이 우뚝 서는 날이 곧 대한민국의 단추가 제대로 끼워지는 날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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