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월환의 시사저격] 1인 사당화 공천 분란 속 총선 비관론 커지는 민주당

이 시간 주요기사

뉴스 > 전문가칼럼

“이재명 지원 유세 거절하겠다” 거부감 팽배
비명횡사·방탄공천 반발로 대표직도 총선도 위기
한동훈 ‘공익 우선’ vs. 이재명 ‘사익 우선’ 비교

구월환 필진페이지 + 입력 2024-02-29 06:31:30

만약 2016년 박근혜 정권 때처럼 청와대 내리꽂기 공천 파동 같은 것이 일어났다면 현재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진퇴양난의 계곡에서 진땀을 빼야 하는 상황은 피할 수 있었을지 모른다. 이른바 ‘윤심 공천’ 파동이 일어나면 그 와중에 ‘이재명 사단’ 구축을 위한 방탄기획 공천이 비교적 무난하게 지나갈 수도 있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한동훈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의 등장으로 모든 게 빗나가고 있다. 한동훈의 철저한 선민후사·공익주의 노선은 의외로 ‘조용한 공천’을 만들어 내면서 총선에 대한 기대감을 높이고 있는 반면에 민주당은 70년사에 그늘을 드리우는 최악의 공천 파동을 겪고 있다. 총선 패배의 위기감과 극심한 내부 분열로 분당론까지 나오고 있는 형편이다.

여기서 일단 한동훈의 깔끔한 클린 리더십을 칭찬하지 않을 수 없다. 상대방이 흠집 투성이인 반면에 흠잡기가 마땅치 않다. 산뜻한 외모에 걸맞게 말이나 행동·처신이 깔끔하다. 상대 정당의 리더에게서 느껴지는 불순한 꼼수·뭔가 석연치 않은 뒷구석 같은 게 없다. ‘선민후사’ 하겠다는 초심은 잘 지켜지고 있는 것 같다. 이것만 해도 어딘가. 만약 여당 지도부가 바뀌지 않았다면 어쩔 뻔했나.

집권 여당의 대표란 원래가 권력에 취해 거들먹거리기 쉬운 자리인데 한동훈의 처신에서는 그런 게 보이지 않는다. 처음부터 너도나도 매달리는 국회의원 배지 안 달겠다·선거에 지면 떠나겠다·모든 힘을 소진시켜 이기는 선거를 하겠다… 등등 국민의 맘에 쏙 드는 말만 골라서 하더니 놀랍게도 언행일치를 보여 주고 있다. 혹시, 마을 주민을 괴롭히는 악당들을 능란한 솜씨로 처치하고 표표히 떠나는 서부영화의 주인공처럼 하려는 게 아닌가 하는 느낌마저 준다.

하여튼 여당의 고질병인 낙하산 공천 파동이 일어나지 않았다는 점에서 이미 절반의 성공은 거둔 것이다. 그러잖아도 국회 의석 과반수 거대 야당에 시달려 온 마당에 공천 악수(惡手)로 죽을 쑤었다면 참으로 암담했을 것이다. 이런 불행을 막은 데는 물론 윤석열 대통령의 자제력도 한몫을 했겠지만 작년 10.11강서을 구청장 선거의 참패가 준 교훈과 ‘김경율 발언’ 파문의 수습 과정에서 이뤄진 새 당·정 관계가 순기능을 한 덕도 있을 것이다. 민주당이 피를 본 2012년 총선, 보수당이 피를 본 2016년 총선 등 공천 파동이 선거의 무덤이 된다는 것은 한국 정치의 변함없는 이치라 할 것이다.

그럼에도 민주당이 피를 보는 방향으로 가게 된 것은 한두 가지도 아니고 열 가지나 범죄 혐의를 주렁주렁 매단 분이 당의 지배자로 등장할 때부터 이미 예견되었던 일이다. 그 자신이 살기 위해서는 당이 죽어야 하고 국가와 국민도 손실을 봐야 하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어떤 평론가의 말마따나 한동훈은 사익과 공익이 일치하지만 이재명은 두 개가 부딪치기 때문에 1인 정당화와 공천 파동은 불가피한 일이라 하겠다.

당연한 결과로서 지금 민주당에서 벌어지고 있는 ‘내사람 심기’ 공천과 극심한 반발 사태는 상상 이상의 초현실이다. 어제까지만 해도 이재명의 사법리스크를 막기 위해 방탄 졸병을 마다 않고 충성을 바쳤던 의원들이 갑자기 공천 불합격 판정이 나오자 ‘멘붕’에 빠진 것이다.

그럼 그들은 왜 이런 사태를 막지 못했을까? 여기에 대해서는 판사 출신 이수진 의원의 항변 속에 어느 정도 그 답이 들어 있다. 이 의원은 “위기 때마다 이 대표를 앞장서서 지지하고 도왔고, 오늘의 당 대표를 만드는 데 그 누구보다 열심이었다”면서 “그동안 막가파식 인신공격으로 국회의원들 대다수가 건강한 비판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억울함과 비정함이 자살로까지 이끌겠다는 걸 절감했다” “배신과 모함이 난무하는 민주당 지도부의 행태를 보고 탈당을 결심했다”고 했다.

그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이재명 측근으로 당의 실력자인 김병기 공천검증위원장이 지역구에서 돈을 받았다는 고발 편지가 들어와 이를 이재명 대표에게 넘겼는데 그 편지가 김 위원장 손에 들어갔고 자신은 공천 탈락을 당했다고 했다. 경찰에 범인을 고발하자 그 고발장이 어느새 그 범인에게 전달됐다는 영화를 연상시킨다. 성남시를 좌지우지하던 대장동 마피아식 리더십의 한계를 보는 것 같다.

무자비한 친명 친위대 위주의 노골적 공천 행태에 대한 아우성은 이제 비명친문의 문턱을 넘어 도처에서 터지고 있다. ‘비명(非明)횡사’라는 신조어에 이어 ‘개판공천’(설훈 의원)이라는 혹평에 줄 잇는 탈당까지, 민주당 공천사상 최악의 현상이다. 민주당을 감싸 온 한겨레신문의 한 칼럼도 “공천만 확정되면 이재명 대표와 함께 찍은 사진 다 떼고 지원 유세를 온다고 해도 거절할 생각”이라고 했다는 현역 의원의 말을 전하고 있다. 이재명의 현주소를 잘 드러내는 말이다.

구월환 필진페이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