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이 약을 부른다… 죽음에 이르는 ‘연쇄 처방’

이 시간 주요기사

뉴스 > 제약·바이오·의료

65세 이상 노인의 80%가 5개 이상 의약품 복용
약사가 DUR 경고 알림 무시하는 경우 허다해

이소정 기자 기자페이지 + 입력 2024-04-23 12:19:10

약물의 부작용을 새로운 증상으로 인식해 또 다른 약을 처방하는 ‘연쇄 처방’이 흔하게 일어나고 있지만 뚜렷한 해결책이 없어 문제가 되고 있다.

23일 통계청에 따르면 5개 이상의 의약품을 복용하는 고령 환자의 비율은 65세 이상 노인의 80%에 달한다.

올해 77세인 김포에 사는 장모 씨는 혈압약·당뇨약·심장약·고지혈증약·관절염약·위장약·수면제까지 젊은 사람도 헷갈릴 정도로 다양한 약을 10년째 복용하고 있다.

그는 설상가상으로 23일 매봉역 연세대 세브란스 병원에서 환절기 감기를 진단받아 약의 개수가 두 배로 늘어났다.

제주도에 사는 변모 씨(92)는 지난해 12월 무릎 통증 때문에 목동 소재 이화여대 병원에서 진료를 받고 진통소염제와 위장약을 처방받았다.

관절염으로 먹기 시작한 진통 소염제가 고혈압을 유발하게 됐고 혈압 수치가 높아지자 그는 제주도 소재 한 내과에 방문해 혈압약과 위장약을 처방받았다.

혈압약을 복용하다 보니 다리가 계속 부어 걷지를 못한 상태가 되자 이상하다고 생각해 한 정형외과에서 이뇨제와 위장약을 처방받았다.

최근 변 씨는 이뇨제의 부작용으로 통풍 진단을 받은 상태다. 그는 약의 부작용을 제거하지 못한 채 증상 치료에 힘쓰며 하루에 3번 4알의 같은 성분의 위장약을 복용하고 있다.

실제로 많은 어르신이 하루에도 10개 이상의 약물을 복용하고 있다. 이 중에선 중복된 약물도 있고 특정 약의 부작용을 해결하기 위한 약을 위한 약도 있다.

백지연 서울아산병원 노년내과 교수는 “다제약물 복용만으로도 병원 입원율은 2배 이상 그리고 낙상·치매 발생 및 사망률 위험도가 1.3배에서 1.5배까지 높아진다”며 “다제약물 복용도 질병처럼 주기적인 관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는 약을 의사가 처방하고 약사가 조제할 때 의약품안전사용서비스(DUR)를 좀 더 신경 쓰면 해결되는 문제다.

DUR이란 의약품 처방·조제 시 함께 먹으면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는 약 등의 정보를 의사와 약사에게 컴퓨터 화면으로 실시간으로 제공해 부적절한 약물 사용을 사전에 점검하는 서비스다.

경기도 성남 소재 한 약국 관계자는 “보통 환자분들이 처방전을 가져오고 바코드를 찍으면 컴퓨터 화면에 중복되는 약이 있다는 알림이 계속 뜨지만 대부분 무시한다”며 “다시 약을 처방한 의사에게 전화해서 ‘약을 바꿔야 한다’고 말하는 게 여간 귀찮은 일이 아니고 바쁠 때는 다들 약을 내놓기 바쁘다”고 말했다.

이소정 기자 lsj@skyedaily.com 기자페이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