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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으로 쓰는 역사 [12] 수로부인이 탐낸 절벽 위 철쭉꽃
신라 천년 역사 중 최고의 태평성대를 이룩한 성덕왕 시대
스카이데일리 기자페이지 + 입력 2024-05-20 00:34:49
 
▲ 꽃만 먼저 피는 진달래와 달리 철쭉꽃은 꽃과 잎이 함께 피어난다. 윤상구 사진작가
 
부인께서 암소 잡은 나의 손을 놓게 하시고
나를 부끄러워하지 않으신다면
붉은 바위 끝에 핀 꽃을 꺾어 바치겠습니다(현대어 풀이).
 
이 향가는 신라의 어떤 노인이 지은 헌화가이다. 헌화가는 삼국유사 2 ‘수로부인조에 실려 있는데 수로부인은 성덕왕 때 사람인 순정공의 부인이다
 
절벽 위 철쭉꽃을 꺾어 수로부인에게 바친 노인
 
강릉 태수가 된 순정공 일행은 임지로 가다가 바닷가에서 점심을 먹게 되었는데 그 주변에는 절벽이 병풍같이 둘러져 있었다. 그리고 까마득한 절벽 위에 철쭉꽃이 아슬아슬하게 피어 있었다.
 
그 철쭉꽃을 탐낸 수로부인이 꽃을 꺾어다 줄 사람이 없느냐고 종자들에게 물었다. 그런데 모두 절벽이 높고 가팔라 올라갈 수 없다고 대답했다. 마침 그 곁으로 소를 끌고 지나던 한 노인이 철쭉꽃을 꺾어 와 이 헌화가와 함께 수로부인에게 바쳤다고 한다.
 
수로부인은 해가라는 향가에도 등장한다. 철쭉 선물을 받은 이틀 후 태수 일행이 바닷가로 소풍 갔는데 갑자기 해룡이 나타나 수로부인을 바다로 끌고 들어가버렸다. 그때 또 다른 노인이 와서 옛말에 뭇사람의 입김은 쇠도 녹인다 했으니 용인들 어찌 이를 두려워하지 않겠는가. 경내 백성을 모아 노래를 부르며 막대기로 땅을 치면 나타나리라고 말했다.
 
노인 말대로 사람들이 거북아 거북아 수로를 내놓아라, 남의 부녀 앗아간 죄 얼마나 큰가, 네 만일 거역하고 바치지 않으면 그물로 잡아서 구워 먹고 말리라라는 내용의 해가를 부르며 막대기로 땅을 두드리자 해룡은 수로부인을 다시 육지로 데려왔다.
 
돌아온 수로부인에게 바닷속에서 무슨 일이 있었느냐고 순정공이 묻자 그녀는 칠보로 꾸민 궁전에, 음식이 달고 기름지며 향기롭고 깨끗한 것이 인간 세상의 것이 아니었습니다고 대답했다. 부인의 옷에서는 이 세상에서는 맡아 보지 못한 이상한 향내가 풍겼다.
 
여러 가지 의미로 해석 가능한 헌화가와 해가
 
▲ ‘사랑의 즐거움’이라는 철쭉꽃의 꽃말에서도 한가로움과 여유가 느껴진다. 윤상구 사진작가
 
실제 해룡이 나타났을 리 없고 사람들이 모여 노래 부르며 땅을 두드린다고 정체 모를 바다 괴물이 항복할 리도 없다. 그렇다고 그저 무의미하게 지어낸 얘기라 하기엔 삼국유사라는 역사책의 기록이 무색해진다. 해룡이나 철쭉꽃이, 소를 끌고 지나가는 노인이, 꽃을 꺾어 바치거나 땅을 두드리는 행위가 가진 의미와 상징에 대해서는 많은 학자가 나름의 해석을 내놓고 있다.
 
이 향가들의 시대적 배경이 성덕왕 때라고 정확하게 제시된 것도 예사롭지 않다. 하필 성덕왕 때로 규정된 것도 또 다른 상징을 보여주는 것은 아닐까?
 
성덕왕은 만파식적으로 유명한 신문왕의 둘째 아들이다. 형 효소왕이 후계자 없이 죽자 화백회의에서 성덕왕을 추대했으니 신라 통일 후 세 번째 왕이다. 그의 시대는 신라의 국운이 최고에 달했을 때라 할 수 있다.
 
성덕왕은 36년이라는 긴 재위 기간 많은 일을 했다. 우선 정치적 안정을 도모했고 관료들이 제 도리를 다하도록 단속하고 독려했다. 정치의 성패가 관료들의 자질이나 복무 자세에 달려 있음을 인식한 것이다. 그는 통일로 넓어진 영토 곳곳에 수시로 민정 시찰을 다녔고 죄인에 대한 사면조치를 자주 시행하며 민심을 다독였다.
 
수해와 전염병의 피해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노력했고 농업 생산력을 증대시킬 제도를 도입하여 민생 안정을 꾀했다. 외교적으로도 수완을 발휘해 삼국전쟁 때 적이 되었던 당나라와의 관계를 개선했다. 유교 사상과 의례를 강화하여 국가의 예법을 바로잡고 불교도 호국 종교로 자리를 굳히게 했다.
 
마음의 여유가 있을 때 비로소 꽃이 보인다
 
에밀레종이라 알려진 성덕대왕신종은 바로 이 성덕왕의 공덕을 기리기 위해 만든 종이다. 성덕왕의 아들 경덕왕이 시작하여 그 뒤를 이은 혜공왕 때 완성된 이 종은 높이 3.75m에 입지름 2.27m이며 두께 1125cm에 무게가 18.9t이나 된다. 이 종은 771년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1000년 넘게 으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해냈다.
 
성덕왕 시대는 신라 천년의 역사 중 최고의 태평성대를 이룩한 시기로 알려져 있다. 그렇게 평화롭고 안정된 시대이니 순정공 일행이 임지로 가는 길 한가롭게 바닷가에 앉아 쉴 수 있었고 그 부인이 절벽 위에 피어난 철쭉꽃을 꺾어달라는 무리한 요청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헌화가나 해가의 내용이 성덕왕 때 진짜 있었던 역사적 사실이라 단정짓기는 어렵다. 그보다는 성덕왕 시대에 국가의 위기를 지도자와 백성이 합심하여 현명하게 극복한 내용을 해가로, 당시의 평화롭고 한가한 분위기를 헌화가로 표현했을 수 있다. ‘사랑의 즐거움이라는 꽃말을 지닌 철쭉꽃이 그 나른한 여유를 드러내는 매체가 된 것이다.
 
비단 철쭉꽃만이 아니다. 어떤 꽃이든 마음의 여유가 있을 때 비로소 그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또 꽃의 아름다움과 향기를 만끽하는 것도 여유롭지 않으면 못할 일이다. 그래서 꽃이 있는 풍경은 평화를 나타내고 꽃과 함께 하면 그 삶도 꽃처럼 화사하고 아름다워진다. 그것이 꽃이 인간에게 전하는 마법같은 선물이라 할 수 있다.
 
[글 황인희 사진 윤상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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