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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
8·15광복 이후 정부 수립, 6·25전쟁과 빛나는 산업화 시기를 거쳐 대한민국은 오늘에 이르렀다. 격동의 한반도, 美CIA 요원으로 그 한복판에서 활약한 마이클 이 박사의 숨 막히는 체험…. 북한 정권의 실체와 광주5·18 등 좌경 친북세력이 주도한 사건들에 관한 증언과 분석, 급변하는 국제정세의 소용돌이 속 한반도의 미래에 관한 그의 이야기들이 값지다. 이에 美연방정부 공무원으로 살아온 40년 세월을 담은 그의 저서 ‘CIA와 대한민국’을 지면에 연재한다.
기록이 남아 있다
백건우·윤정희 부부 납치 미수 사건이 있은 후 26년이 지난 2003년에 북한이 이 사건을 공식적으로 시인한 외교문서가 발견되었다. 사건 당시에는 자그레브가 유고슬라비아에 속해 있었지만 지금은 신생국가 크로아티아의 수도이다. 이 문서는 현재 크로아티아 정부가 보관하고 있다.
그 당시 유고슬라비아 공산주의자동맹 중앙위원회 행정위원인 도부리보예 비디치가 북한 대사 정광순을 불러 이 사건에 대해 묻자 정광순 대사가 해명한 내용이다. 정 대사는 그 자리에서 이 사건은 현지 주재 북한 외교관들과는 아무 상관이 없으며 평양에서 직파한 공작팀의 소행이라고 밝혔다.
박인경의 이후 행적
이 사건이 있고 17년 후인 1994년 1월부터 박인경(1926년생)은 한국을 드나들었다. 그녀는 서울 종로구 평창동에서 ‘이응노 미술관’을 운영했고(2000년∼2005년 9월) 대전광역시에선 2007년에 ‘이응노 미술관’을 개관하고 박인경을 명예관장으로 추대했다. 일부 언론에서 박인경의 이적 행위를 문제 삼기도 했지만 김대중정부 출범 이후 한국 정부에선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이응노 화백과 그의 두 번째 아내 박인경은 분명 용서받을 수 없는 이적 행위를 범했다. 1958년에 프랑스 파리로 간 그들은 1967년 동백림사건에 연루되어 한국으로 압송되었고 징역 3년·자격정지 3년·집행유예 5년을 선고받고 다시 파리로 돌아갔다. 그때 파리 주재 중앙정보부 요원들이 그들의 가택을 수색했는데 특수단파 수신 라디오와 북한 간첩들이 쓰는 난수표·자살용 청산가리가 발견되었으며 세포조직 명단에는 이응노와 윤이상이 중요 멤버로 올라 있었다. 그런데 한국 정부에서 대전에는 이응노 미술관을 지어 주고, 통영에는 윤이상 기념관을 지어 주었는데 이 일을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과거 해외에서 북한 공작원들에게 협력한 재외동포들은 대부분 지성인들이었다. 그 대표적인 게 바로 파리에 거주하던 이응노 화백의 처 박인경이었다. 그녀는 파리와 자그레브에서 북한 공작원들의 백건우·윤정희 납치 공작에 협조했다. 비슷한 예로 1978년 홍콩에서 이상희라는 여자가 영화배우 최은희의 납북 공작에 협력한 일이 있었는데 그 사건을 좀 자세히 들여다보자.
영화보다도 더 영화 같은 생애
영화감독 신상옥과 배우 최은희, 그리고 나는 전혀 상관이 없는 삶을 살다가 어쩌다 기이한 인연으로 서로 만나게 되었다. 지금까지 많은 사람이 이들의 납북 경위와 북한에서의 행적 그리고 성공적인 탈출에 대해 글을 썼지만 사실과 다르거나 근거 없는 이야기들이 종종 발견되는데 내가 지금부터 서술하는 내용은 그들로부터 직접 들은 이야기·목격한 사실, 그리고 객관적 분석에 근거한 것이다. 단, 그들의 북한 탈출을 위한 미국 정부와 필자의 역할은 미 CIA의 원고 검열 과정에서 삭제되었다.
신상옥(1926.10.18.-2006.4.11) 감독의 본명은 신태익이고 함경북도 청진 태생이다. 그는 대한민국 현대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영화계의 거장이다. 성격이 고지식하고 강한 개성의 소유자로 천재적인 예술 감각을 지닌 인물이었다. 심훈의 장편소설을 각색하여 1961년에 개봉한 영화 ‘상록수’는 신상옥 감독·최은희 주연으로 제작되었는데 박정희 대통령이 이 영화에서 영감을 얻어 ‘새마을 운동’을 시작했다는 소문도 있다. 그만큼 박 대통령과 신 감독은 끈끈한 사이였다.
하지만 박 대통령과 신 감독 사이를 불편하게 만든 사건이 있었다. 그것은 1970년 11월13일 평화시장 봉재공장 재봉사로 일하던 전태일이 분신자살한 사건이었다. 그는 혹사당하는 저임금 노동자들의 분노를 세상에 알리기 위해 22살의 새파란 나이에 목숨을 던졌다. 당시는 박 대통령이 대한민국의 경제 부흥을 위해 노심초사하고 있을 때였다. 하지만 당시 우리 경제는 아직도 걸음마 수준이었으며 사회 구석구석에 비리와 부조리가 지병처럼 도사리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전태일의 분신자살은 노동쟁의와 노사분규의 촉매제가 되었다.
그런데 이 사건을 소재로 신 감독이 영화를 제작하려 한 것이다. 그것은 불난 집 앞에서 모닥불을 피우는 격이었고 박 대통령이 영화 제작을 만류했지만 신 감독은 고집을 꺾지 않았다. 두 사람이 팽팽하게 맞선 가운데 박 대통령은 끝내 신 감독의 영화제작사 사업 허가를 박탈하고 말았다.
김정일의 신상옥·최은희 납치 결심
그 무렵 신 감독은 신인 여배우 오수미와 깊은 관계를 맺고 아들 상균과 딸 승리를 낳았으며 아이가 없었던 최은희 여사와는 1976년에 이혼을 했다. 신 감독은 국내에서 영화제작 활동을 할 수 없었고 최 여사는 안양예술고등학교를 설립해 운영하고 있었으나 두 사람 모두 은행 빚으로 고전하고 있었다.
이 두 사람이 슬럼프에 빠져 있다는 소식을 북한의 김정일이 들었다. 김정일은 수천 개의 영화 필름을 소장하고 있는 영화광이었다. 그런 그가 한국 최고의 영화인으로 알려진 신상옥과 최은희가 고전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두 사람을 북으로 데려갈 생각을 품게 된 것이다. 김정일이 그런 생각을 품기 시작한 것은 1972년, 이후락 중앙정보부장이 평양을 드나들며 남북 화해 무드가 조성되고 있을 즈음이었다.
1972년 5월, 김일성의 밀사로 서울에 왔던 부수상 박성철에게 중앙정보부에서 흑백영화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의 필름을 선물로 주었다. 당시 북한에서 영화는 노동당의 선전선동을 위한 도구였을 뿐 예술 영화를 제작할 만한 사회 분위기가 아니었다. 그런 상황에서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 같은 애틋하고 한국적인 순수 애정 영화를 본 김정일의 마음이 들뜨기 시작한 것이다. 당시 노동당의 선전선동 담당 비서였던 김정일은 신상옥과 최은희를 북으로 데려오라고 대외연락부 부부장 임호군에게 지시했다.
함정에 빠진 최은희
최은희(본명 최경순)는 1926년 11월20일 경기도 광주에서 태어났다. 그는 1947년에 영화 ‘새로운 맹세’를 통해 데뷔했는데 6·25전쟁 때는 북으로 납치되어 청천강 부근까지 끌려갔다가 구사일생으로 탈출하는 고초를 겪었다. 그 후 1954년에 영화감독 신상옥과 결혼하고 1960·70년대 한국 영화계의 황금기에 독보적인 인기 배우로 활약했다. ‘성춘향’ ‘상록수’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 ‘빨간 마후라’ ‘벙어리 삼룡이’ 등의 작품에서 보여 준 그의 한국적 미모와 연기는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그러나 그 자신이 출연했던 영화보다도 더 영화 같은 파란만장한 생애를 통해 또 하나 불행의 그림자가 그를 덮치기 시작했다.
1976년에 신 감독과 이혼하고 안양에서 홀로 고생하고 있을 무렵이었다. 1978년 연초에 홍콩에서 이상희(당시 52세)라는 교포가 최은희를 방문했다. 그때 최 여사는 물론 아무도 이상희가 홍콩에서 활동하는 북한의 대남 공작원이라는 사실을 몰랐다.
이상희는 홍콩의 유력 재벌이 운영하는 영화사에서 최 여사와 합작으로 ‘양귀비’라는 영화를 제작하려 한다고 했다. 일이 잘되면 홍콩 영화사가 운영하는 현지 예술학교와 최 여사의 안양예술고등학교가 자매결연을 맺을 거라고도 했다. 이 말을 들은 최 여사는 하늘에서 자신을 도와 살길을 열어 주시는 거라 믿고는 기쁜 마음으로 이상희를 따라 1월11일에 홍콩으로 갔다.
홍콩에 도착한 최 여사는 푸라마 호텔에 여장을 풀었다. 그러나 최 여사를 만나고 싶어 한다는 재벌가에선 아무도 나타나지 않았다. 이상희의 말에 의하면 그 재벌 총수에게 갑자기 급한 일이 생겨서 출타 중인데 2·3일 내로 돌아온다는 것이었다.
프로필
△ 美 연방정부 40년 근속
(DIA(Defense Intelligence Agency·국방정보국) 16년·CIA(중앙정보국) 24년)
△ 1976년 미국 외무고시 합격
△ 미국 조지워싱턴대학 정치학 박사
△ 美 국무성 동아시아 문제 수석연구원
△ 美 국무성 외교연수원 교수
△ 주한 미국대사관 정무관
△ CIA 한·미 안보협력 조정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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