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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
8·15광복 이후 정부 수립, 6·25전쟁과 빛나는 산업화 시기를 거쳐 대한민국은 오늘에 이르렀다. 격동의 한반도, 美CIA 요원으로 그 한복판에서 활약한 마이클 이 박사의 숨 막히는 체험…. 북한 정권의 실체와 광주5·18 등 좌경 친북세력이 주도한 사건들에 관한 증언과 분석, 급변하는 국제정세의 소용돌이 속 한반도의 미래에 관한 그의 이야기들이 값지다. 이에 美연방정부 공무원으로 살아온 40년 세월을 담은 그의 저서 ‘CIA와 대한민국’을 지면에 연재한다.
서울에 와 보니
황장엽은 망명 초기 안기부의 보호를 받았지만 김대중·노무현 집권 기간(1998-2008) 10년 동안에는 국가정보원(국정원) 안가에 연금되어 모든 활동에 제약을 받았다. 그래도 그는 열심히 강연과 논문·출판을 통해 북한의 실상을 폭로하며 한미동맹의 중요성을 강조했고 국제사회가 나서서 북한의 반인륜적 인권 말살과 체제 모순을 종식시켜 줄 것을 호소했다.
그러나 남북 관계의 민감한 사항에 대해서는 그가 소신대로 말을 다 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것은 김대중·노무현정부 10년간 정권의 대북 정책과 황장엽의 북한 비판이 불협화음을 이루었기 때문이며 햇볕정책에 대립각을 세웠기 때문이다. 분명히 황장엽의 입에는 재갈이 물려져 있었다. 그런 점에서 망명 동반자인 김덕홍은 황장엽이 그 재갈을 뱉어 버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가 목숨을 걸고 하고 싶은 말을 다 하지 못한 것을 불만스럽게 생각한 것이다. 아무튼 그 기간에 황장엽은 정부의 감시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임수경이 탈북인을 ‘배신자’라고 말한 것처럼 김대중·노무현 정권 또한 황장엽이 김정일을 배신했다고 보았을 것이다. 그러니 그들의 눈에 황장엽이 곱게 보일 리 만무했다. 황장엽은 미국 방문을 희망했고 미국 정부에서도 그의 방미를 요청했지만 무엇을 두려워했는지 김대중이 신변 안전을 구실로 그의 방미를 허락하지 않았다. 그가 서울에서 말하지 못한 것을 미국 정부에 폭로할지도 모른다고 염려했는지 모르지만 정확하게 그가 무엇을 염려했는지는 아직도 의문이다.
그러나 노무현정부 시절에 원로 정치인 이철승과 미국의 북한 인권운동가이며 디펜스포럼 회장인 수잔 쏠티의 막후교섭으로 2003년 10월27일부터 11월4일까지 그가 워싱턴에 다녀왔다. 그러나 4명의 경호 감시원이 밀착 동행해 그곳에 가서도 황장엽은 소신껏 하고 싶은 말을 다 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다만 노동당 군수공업 담당 비서 전병호의 말을 근거로 북한의 핵개발 수준과 비참한 인권탄압 실태·체제 모순에 대해 증언하며 김정일을 제거해야 한다는 것을 국제사회에 강력히 호소했다.
송두율은 누구인가
국내에선 황장엽이 재독학자 송두율은 ‘김철수’라는 가명으로 활동하는 북한 노동당 정치국 후보위원이란 사실을 폭로했다. 그러자 노무현 정권과 친북 단체들이 사실무근이라며 강력히 반발했다. 노무현 정권은 송두율(1944년 10월12일생)을 서울에 불러들여 친북 세력의 이론적·정신적 지도자로 심어 두려고 했으나 법원의 조사에서 황장엽의 진술이 사실로 드러났다.
그러자 노무현 대통령은 송두율을 관대히 처분해 달라고 호소했고, 그 당시 법원은 그가 독일 시민이란 이유로 외국인으로 취급해 외국인이 외국에 거주하면서 북한을 드나들며 이적 행위를 했다 할지라도 국가보안법의 적용 대상이 아니라며 2004년 8월에 서둘러서 그를 독일로 돌려보냈다.
과연 송두율은 누구인가. 그 당시 북한은 독일과 정식으로 외교 관계가 없었기 때문에 베를린에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 이익대표부’라는 간판을 걸고 활동하고 있었다. 이 대표부 안에 북한의 통일전선부 공작원이 배치되어 있었고 그가 유럽 일대 교포 사회의 친북 인사들을 접촉하고 관리하고 있었다. 송두율이 그중에 핵심 인물이었다.
그가 비록 독일 시민권을 갖고 있었다 할지라도 대한민국은 그의 조국인데 한겨레신문을 통해 그가 전개한 이론이나 주장은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파괴하는 데 상당한 역할을 했다. 그의 논리는 소위 ‘내재적 접근법’이라는 황당무계한 이론으로 북한의 모든 문제는 북한의 입장에서 해석하고 분석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는 민족 반역자 김일성을 존경한다고 했고 대한민국 건국의 정당성과 정체성을 극구 부정했다. 다시 말하면 북한의 정통성과 정당성을 북한이 말하는 그대로 믿어야 하며 역사의 날조도 그대로 믿고 남한에 대해서는 북한이 말하는 그대로 부정해야 한다는 이론이다. 노무현정부 시절에 송두율의 내재적 접근법을 따르는 학자들이 우리 사회를 혼란스럽게 했는데 그 대표적인 인물로는 동국대학교의 모 교수와 노무현 밑에서 통일원 장관을 역임한 모씨를 지적할 수 있다.
남한의 권력 깊숙한 곳에 김일성의 충복이
1998년 7월 서울의 모 잡지사 기자가 황장엽과 김덕홍을 인터뷰했는데 그 자리에서 그들이 세 가지 충격적인 사실을 증언했다.
첫째는 1980년 5·18 광주사태에 북한이 개입했다는 사실이었다.
둘째는 황장엽이 망명을 결행하기 전에 북한에서는 황장엽과 뜻을 같이하는 몇 명의 고위급 인사들이 김정일 제거를 구상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한 채 몇 사람은 죽고 아직도 한 사람이 생존해 있다고 했다. 그들이 구상한 방법은 김정일의 해외 망명을 유도하는 것이었으며 민중 봉기로 그를 타도하거나 비밀결사 조직을 통해 그를 처단하는 것이었다.
구체적으로 황장엽의 아들 황경모는 호위총국 인맥을 통해 김정일 암살을 계획한 일도 있었지만 그 계획을 실행할 만한 여건과 시간이 없어서 황장엽이 다급하게 망명의 길을 선택하게 되었다고 한다.
셋째는 남쪽의 권력 깊숙한 곳에 김일성이 심어 놓은 충복이 있다는 사실과 북쪽에도 체제를 전복시킬 만한 실력자가 김정일 측근에 잠복하고 있다는 이야기였다.
그러나 그 기자는 TV 인터뷰에 나와서 사실을 분명히 말하는 대신 암시적으로 표현했고 남북 관계의 정치적 민감성을 고려해 말을 삼가며 관련 인물들의 이름을 밝히지 못했다. 그러나 때가 되면 모든 사실이 자연스럽게 세상에 알려질 것이다. 굳이 캐묻는다면 나는 이렇게 말하겠다. “남한의 그 사람은 2009년에 병사했고, 북한의 그 사람은 2013년에 처형되었다.”
지성인의 고독한 최후
그는 고독한 지성인이었다. 많은 사람이 그가 북한에서 존경받는 최고의 정치인 가운데 한 사람이면서 그 사회 체제의 모순에 불만을 품고 남한으로 온 것을 환영했다. 김정일을 비판하고 북한의 참상을 폭로한 그의 이야기는 다른 어느 누구의 말보다도 설득력이 있었으며, 특히 많은 남한의 정치인과 학자들에게 북한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을 갖게 했다.
반면에 언론 일각에서는 황장엽이 40여 년간 북한의 최고 권력 주변에서 영화를 누렸고, 주체사상 이론으로 일당 독재·일인 독재의 기틀을 마련하고 수령 절대주의를 합리화하는 데 봉사했으며, 자유민주주의 민족 통일이나 평화 통일을 위해 꿈꾸거나 특별히 노력한 일이 없다는 점을 지적했다. 그리고 김정일로부터 생명의 위협을 느껴 남한으로 도망쳐 온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특히 그가 2010년 10월10일에 강남구 논현1동 자택에서 향년 87세로 숨을 거두었을 때 이명박정부가 그를 대전 국립현충원에 안장할 뜻을 밝히자 그 부당성을 지적한 사람들도 있었고, 그가 김정일을 비판한 것을 공로라고 인정한다면 남한에는 그보다 더 강도 높게 김정일을 비판한 인사들이 얼마든지 있는데 그들도 죽으면 현충원에 가야 할 것이 아니냐고 하면서 항의하기도 했다.
결국 고심 끝에 이명박정부는 국립현충원 안장을 정당화하기 위해 황장엽에게 1등급 훈장인 무궁화훈장을 추서했다. 그리고 2010년 10월14일에 그를 대전 국립현충원에 안장했다.
필자는 그 일을 아주 잘한 일이라고 평가한다. 왜냐하면 대한민국은 가슴이 넓은 나라이며, 황장엽이 과거에는 김일성을 위해 평생 충성을 다했다 할지라도 그 일을 뉘우치면서 일단은 대한민국의 품에 들어왔고 마지막 인생을 대한민국을 위해 수고하고 노력하다가 갔기 때문에 그의 마지막 행보를 존중해 주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정리= 박혜수 편집위원
프로필
△ 美 연방정부 40년 근속
(DIA(Defense Intelligence Agency·국방정보국) 16년·CIA(중앙정보국) 24년)
△ 1976년 미국 외무고시 합격
△ 미국 조지워싱턴대학 정치학 박사
△ 美 국무성 동아시아 문제 수석연구원
△ 美 국무성 외교연수원 교수
△ 주한 미국대사관 정무관
△ CIA 한·미 안보협력 조정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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