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규나 연재소설 ‘최초의 당신’ [167] 버들강아지처럼 부드럽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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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톱을 드러낸 성난 고양이처럼 앙칼지게

김규나 필진페이지 + 입력 2024-09-04 06:30:10

하운이 두 팔을 올려 동우의 목을 바싹 당겨 끌어안았다. 입을 동우의 귀에 들이대고 속삭이는 것 같았다. 두 사람은 마치 반갑게 엉겨 붙어 키스라도 나누는 연인 같았다. 예상하지 못한 하운의 대담함에 동우가 당황한 건 분명했다. 잠시 후 하운은 능숙하게 동우를 풀어 준 뒤 능숙하게 그의 넥타이를 매만져 주고는 내가 처음 만났을 때 보았던 당당하고 자신만만한 미소를 매력적으로 지어 보였다. 순간 동우의 얼굴이 빨갛게 귓불까지 달아올랐다.

누군가 뒤통수를 잡아당기기라도 하는 것처럼 흘끔, 그가 뒤를 돌아보았다. 그들을 조마조마하게 바라보고 있던 아기 엄마의 얼굴이 파랗다 못해 아예 하얗게 질린 걸 보고 동우의 얼굴 또한 사색이 되었다. 투 스트라이크가 확실했다.

“어서 가 봐. 너그러운 어린 아내와 주니어 동우가 기다리고 있잖아.”

하운이 버들강아지처럼 부드럽게, 발톱을 드러낸 성난 고양이처럼 앙칼지게 말했다. 스트라이크 아웃!

퇴장해야 할 동우가 뜻밖에 나를 쳐다보았다. 나는 영화에서 본 것처럼, 들어 올릴 모자는 없었지만 동우를 향해 상냥하고 의젓하게 눈인사를 보냈다. 뒤로 돌아선 동우가 그의 여자에게로 걸어갔다. 뒷모습이 처음보다 한결 작아 보였다. 삼진아웃으로 말끔히 타자를 처리한 투수에게 대견하다고, 나는 하이 파이브라도 해주고 싶은 심정이었다.

“뭐라고 했어요?”

내가 물었다. 동우가 잃어버린 줄도 몰랐던 아이에 대해 밝혔을지 모른다고, 나는 추측하고 있었다. 그러나 하운은 몸을 돌려 찌를 것 같은 눈빛으로 내 눈을 바라보며 말했다.

“오늘 밤 어때? 우리, 뜨거웠잖아.”

하운은 나직하고 깊게, 사내라면 절대 잊을 수 없는 유혹적인 목소리로 말했다. 하운은 미소 짓지 않았다. 지난밤 그녀의 모습이 떠올랐다. 나의 맥박이 빨라졌다. 얼음 창날이 심장에 박힌 듯 가슴이 서늘했다.

“아내가 물을 거예요. 동우는 내가 악랄한 장난을 시작했다는 걸 알고 당황할 거고. 둘러대겠죠. 동우, 거짓말하면 귓불까지 붉어지거든요. 아내는 추궁할 거고, 사실대로 말해 주면 아내는 절대 머리에서 지우지 못할 거예요. 동우가 털어놓지 않는다면 끝없이 상상할 테고요. 불신이 시작되는 거죠. 여자한테 유감은 없는데 동우는 좀 괴롭히고 싶었어요.”

하운은 그들을 싸늘하게 건너다보았다.

“그래도 헤어지지는 않을 거예요. 저 여자는 어리고 아이도 낳아 줬으니까. 무릎 꿇고 싹싹 빌지도 모르겠네요.”

그사이 어린 아내는 눈초리가 뾰족해져서는 아기를 끌어안고 푸르르 계단을 내려갔다. 동우는 내 말 좀 들어 보라며, 아내가 놓고 간 젖병 보따리를 주섬주섬 챙겨 서둘러 그녀를 따라 나갔다. 하운을 돌아볼 여유는 없어 보였다. 그래도 저들이, 계속 살아갈 수 있으리라는 하운의 생각에는 나도 동의했다. 아내는 감정을 파르라니 드러낼 줄 알았고, 동우 역시 변명하며 아내를 따라갈 줄 알 만큼 지혜로워진 것을 보면.

“왜, 저 남자였어요?”

내가 물었다.

[글 김규나 일러스트 임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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