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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선경 연재소설 ‘위선의 시대’ [24] 남겨진 시어머니, 부양의 몫
박선경 필진페이지 + 입력 2025-01-13 06:30:39
 
 
승연에게 최고급 나파(NAFA)나 블랙그라마(BLACKGLAMA) 밍크코트를 받는 것이었다. 그런 밍크 정보는 어디서 들었는지, 그런 요구가 창피하긴 했는지 남편에겐 비밀로 하자면서. 시어머니는 밍크 타령을 하면서 승연을 빗대 학벌이 어쩌고 하며 속을 뒤집어 놨다. 그러니까 밍크는 승연의 부족한 학벌 값이었다. 승연은 초라했고 비위가 상했다. 승연 어머니가 밍크코트를 허락한 건 밍크코트를 입고 싶어 하는 시어머니의 욕망을 이해해서였다.
 
남편의 큰형이 교통사고로 죽자 미국 유학은 예정에 없었던 둘째 형이 갔다. 셋째 형은 지방대학 교수 자리가 나자 얼른 수락했다. 겉으로는 먹거리 구현, 안으로는 시어머니로부터의 탈출이었다. 시어머니는 자식들에게서 보상받으려는 심리가 지나쳤다. 지난했던 세월을 자식을 통해 보상받길 원했다. 가부장적 전통에서 가족을 위해 희생을 강요받고 강인한 모친상을 최고의 도덕 이념으로 삼았던 유교 이데올로기 영향일 것이다.
 
유교 이념의 잔재와 전쟁·분단·산업화의 격동기를 겪은 여성들이 자신의 꿈을 실현할 사회적 조건이 마련되지 않은 상태에서 자식 교육에 자신의 꿈을 투영한 것은 어쩌면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과정이라 이해했다. 그걸 알아서 자식들은 시어머니의 과한 요구와 지나친 욕망을 탓하지 못했다. 큰아들이 죽고 얼마 되지 않아서 시아버님도 돌아가셨다. 홀로 남겨진 시어머니를 모시겠다는 며느리는 없었다.
 
둘째는 미국으로, 셋째는 지방으로 시어머니 영향권에서 도망친 상태였다. 승연은 시어머니 부양에 침묵했다. 시집 안 간 딸이 둘이나 있었다. 굳이 며느리와 살 이유는 없었다. 둘째 며느리·셋째 며느리·승연이 부쳐 주는 시어머니 생활비는 넉넉했고 좋은 직장에 다니는 시집 안 간 딸 둘도 시어머니에게 용돈을 드렸다. 건강한 시어머니 혼자 얼마든지 살 수 있는 환경이었다.
 
시어머니는 잘난 아들이 셋이나 있는데 혼자 살게 방치하는 건 패륜이라며 시어머니 부양을 당당하게 요구했다. 미국도, 지방도 갈 수 없노라 했다. 어머니가 함께 살고 싶은 며느리를 승연이라고 점찍은 거나 다름없었다. 둘째와 셋째는 모시려 해도 당신이 싫다고 하시니 하며 쾌재를 불렀다. 예전부터 시어머니는 막내며느리 승연과 살고 싶다는 의사를 은근슬쩍 띄웠다. 며느리 중 승연이 가장 만만했다. 시어머니는 승연이 전업주부라 일하느라 바빠서 못 모신다는 핑계를 댈 수 없다는 걸 알았다. 게다가 어른을 공경하는 태도가 그랬다.
 
누울 자리 보고 발 뻗는다고 승연이 부잣집 딸로 자랐어도 모난 데 없고 사람 잘 챙기며 어른 공경할 줄 알았다. 시어머니도 날이 갈수록 내심 그런 승연이 기특했으나 그렇다고 칭찬하거나 고맙다는 표현은 하지 않았다. 시어머니는 평생 며느리가 남의 가족일 수밖에 없다고 믿었다. 승연은 시어머니가 막내와 살고 싶다는 내색을 할 때마다 모른 체했다. 대신 남편에게 이렇게 말했다.
 
“여보, 우리도 미국에 공부하러 가면 안 돼?”
 
[글 박선경 일러스트 임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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