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카이 View]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교육부 장관’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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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영 금융부동산부 부장대우 기자페이지 + 입력 2024-09-04 00:02:40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국가 중앙은행의 수장이자 대한민국 기준금리 정책을 총괄하는 엄중한 입무를 맡고 있다. 그런 만큼 이 총재의 언행 하나하나에 금융시장은 물론 국가 경제까지도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다.

그런 자리에 올라 있는 이 총재가 갑자기 SKY대학교(서울대·고려대·연세대)가 신입생을 지역별로 비례 선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총재는 8월27일 서울대에서 열린 ‘서울대 국가미래전략원-한은 공동 심포지엄’에 참석해 위와 같이 밝히고 “이렇게 되면 한은이 금리를 조정하는 것보다 수도권 부동산 가격이 더 안정될 것이라 믿는다”고 말했다.

이 총재의 말을 듣고 가장 먼저 들었던 생각은 ‘뜬금없다’는 것이었다. 이 총재는 금융당국의 수장이지 교육부 장관이 아니다. 심지어 교육부 장관이라고 해도 SKY대학이 신입생 선발 시 지역별로 비례 선발해야 한다는 말을 하는 것은 경우에 맞지 않다.

고려대와 연세대는 사립대학이다. 사립대학의 경영은 학교를 소유하고 있는 교육재단인 학교법인이 맡고 있다. 신입생 선발과 같은 사립대학교의 운영은 해당 사립대 총장의 권한이다. 교육부 장관이 이래라 저래라 지시할 수 없는 영역이다.

대한민국 미래의 청사진을 그리기 위해 서울대와 한국은행이 공동으로 머리를 맞댄 자리에서 국가균형발전을 논하는 것까지는 좋다. 작금의 수도권 부동산 가격 문제의 근간엔 지방 소멸과 지역 불균형 사태가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는 이 총재의 지적 또한 타당한 해석일 수 있다.

하지만 이를 해소하기 위해 이른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상위 3대 명문대라고 할 수 있는 SKY대학들이 신입생을 지역별로 비례 선발해야 한다는 주장엔 동의하기 어렵다. 수도권 집값 상승은 사교육 집중화가 아닌 대출 규제와 금리정책 및 주택 공급·수요 불균형에 근본 원인이 있다.

이 총재는 “(SKY대학이 신입생을 지역 비례로 선발하면) 특정 지역에 몰린 사교육이 전국으로 분산돼 지방에서 입시를 위해 서울로 이주해 올 필요가 없어지고 수도권 부동산 가격도 안정된다”고 주장했다.

과연 그럴까. 지금 주택 시장 상승세는 서울 지역 그것도 집값이 비싼 강남3구와 마용성(마포·용산·성동) 등 서울 안에서도 일부 지역 ‘신축 아파트’에만 국한된 현상이다. 대부분의 서울 여타 지역이나 서울 밖 비 수도권의 주택은 여전히 거래가 뜸한 상황이다.

집값이 뛰고 있다는 강남3구와 마용성 신축 아파트의 집값 상승도 이 총재의 생각처럼 사교육 집중화 현상 때문이 아니다. 서울의 3대 학군지인 대치·목동·중계 지역 가운데 강남3구에 해당되는 학군지는 대치동 학군뿐이다. 심지어 대치동 아파트는 대부분이 구축 단지라 여타 다른 강남 지역 아파트 상승세에 비하면 오름폭도 그리 크지 않다.

더군다나 강남3구와 함께 현재 서울 아파트 집값 상승의 양대 축 가운데 하나인 ‘마용성’은 애당초 학군지도 아니다. 마용성 아파트의 가격 상승은 학군이 끌어올리는 것이 아니라 서울의 3대 도심 업무지구 중 2곳인 CBD(종로·중구 등 구도심)와 YBD(여의도) 업무지구가 가까워 이른바 ‘직주근접(직장과 주거가 가까움)’의 혜택을 누릴 수 있는 입지의 힘이 크다.

‘직주근접’ 입지의 신축 아파트를 선호하는 현상은 현재 주택 시장의 주요 트렌드다. 주요 대기업과 관공서 및 금융사 등이 몰려 있는 광화문과 여의도로 출퇴근이 편한 곳이 마용성 지역이다. 그리고 그 마용성 안에서도 지하주차장과 개별 세대가 곧바로 연결돼 있고 단지 내에 여러 다양한 커뮤니티 시설이 갖춰져 있어 거주 환경이 우월한 일부 신축 아파트가 각광을 받는 것이다.

SKY대학에 들어가기 위한 사교육을 위해 ‘마용성 신축 아파트’를 구매하고 이로 인해 수도권 집값이 상승한다? 전혀 틀린 해석이다.

더욱 문제되는 부분은 이 총재가 단순히 SKY대학이 신입생을 지역 비례로 선발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을 넘어서서 “교수님들이 (신입생 지역 비례 선발에 대해) 결단만 해 주시면 된다”고 말하면서 사실상 사립대학 정책에 입김을 넣으려는 모양새다.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삼성전자나 현대자동차가 주관한 포럼 행사에 참석해 지방 불균형 해소를 위해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가 신입사원 선발 시 지역 비례 선발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고 가정해 보자. 이창용 한은 총재의 행보가 이와 무슨 차이점이 있을까.

사립대학도 민영기업과 같이 이익을 추구하는 법인이다. 기업이 수익을 내기 위해 최상의 마케팅을 수행하는 것처럼 사립대는 더욱 우수한 신입생을 선발하고자 노력한다. 사립대에 신입생 선발 시 더 우수한 학생을 뽑기보다 지역 안배를 우선하라는 것은 무리한 주문이다.

한국은행 총재는 우리나라 금리 기조와 통화 정책을 관장하는 막중한 임무를 맡고 있다. 그러나 이런 막강한 권한을 가진 한은 총재도 사립대 운영에 훈수를 둘 권한은 없다. 이창용 한은 총재가 다시 한 번 ‘자신의 자리’가 가진 무거움을 되돌아보길 바란다.

임진영 금융부동산부 부장대우 jyim@skyedaily.com 기자페이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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