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한국에서 양육비를 받지 못하는 아동이 약 100만 명에 달합니다. 법원에서 양육비 지급 판결을 내렸음에도 상대방이 이를 거부하면 그들에게 아무런 불이익이 없기 때문이죠”
양육비를 지급하지 않는 ‘나쁜 부모’들의 신상을 공개하는 단체인 ‘양육비해결하는사람들(양해들)’의 구본창(61) 대표는 한국에서 법적 절차를 통해 양육비를 받아 내는 것이 하늘의 별 따기만큼이나 어려운 일이라고 토로했다.
정부의 ‘2021년 한부모 가족 실태조사’에 따르면 국내 한부모가정은 151만 가구에 이른다. 한부모가정의 80.7%가 비양육자로부터 양육비를 받지 못하고 있다. 72.1%는 단 한 번도 양육비를 받은 적이 없다. 이들 가구는 빈곤율이 매우 높아 최소 100만 명의 아동이 생존 위협에 직면해 있다.
이런 가운데 국내 합계출산율은 지난해 0.72명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개 회원국 중 가장 낮다. 여성이 가임기간 동안 낳을 것으로 기대되는 평균 출생아 수인 합계출산율은 저출생 대책의 실효성을 입증하는 지표다.
저출생은 국가적 재앙이 될 가능성이 크다. 정부도 이를 모르는 건 아니다. 이미 2006년 8월 제1차 저출산고령사회기본계획(저출생 기본계획‧2006~2010)을 수립하고 100조 원 넘는 돈을 쏟아부었다. 그러나 결과는 요란한 빈 수레다. 이런 추세라면 한국은 지구상에서 가장 먼저 소멸하는 국가가 될 수 있다.
구 대표는 한국 사회가 과연 저출생 문제를 해결할 자격이 있는지에 대해 의구심을 나타낸다. 표면적으로는 아이 한 명 한 명의 소중함을 외치지만 정작 태어난 아동들이 당연히 받아야 할 양육비에 관한 권리조차 제대로 보호받지 못한 채 방치되기 때문이다.
“법원에서 양육비 지급 판결이 나와도 상대가 안 주면 이행명령 소송을 해야 해요. 그래도 안 주면 구치소 감치명령 소송을 합니다. 그런데도 여전히 안 주면 1년을 기다렸다가 형사 고소를 할 수 있어요. 이 과정이 평균 4~5년 정도 걸립니다. 그러면 그 긴 세월 동안 양육자들은 아이를 키우고 직장 생활을 하면서 소송에 매달려야 하는데 현실적으로 너무 힘든 거죠.”
그는 이런 몹쓸 행태를 뿌리 뽑기 위해 2018년 7월부터 ‘양해들’이라는 인터넷 사이트에 양육비 미지급자들의 이름과 출생 연도‧거주 지역‧얼굴 사진‧세부적인 직장명 등 신원 및 사생활 비밀과 관련된 부분까지 공개하는 활동을 했다. 이 일로 인해 명예훼손 혐의 등으로 올해 초 대법원으로부터 벌금 100만 원의 선고유예 판결을 받았다.
양육비 미지급은 아동학대
법적인 제재가 마땅치 않은 상황에서 어떻게든 양육비 미지급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벌인 일이었다. 그는 “이행명령 소송만으로도 양육비를 지급하지 않는 부모들이 처벌받을 수 있도록 법적 절차를 간소화해야 한다”고 말한다.
무려 10여년 넘게 무책임한 한국인 부모들의 양육비 문제로 씨름 중인 그는 다 큰 성인들이 “양육비를 주지 않아 자신이 낳은 아이들을 굶기는 게 너무 잔인하다”며 나쁜 부모들을 고발하는 이유를 설명했다.
구 대표는 코피노 문제로 우리 사회에 큰 파문을 일으킨 인물로 잘 알려져 있다. 코피노는 ‘코리안(Korean)’과 필리핀 사람을 가리키는 ‘필리피노(Filipino)’의 합성어다. 한국 남성과 현지의 필리핀 여성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를 일컫는다. 구 대표는 필리핀에 코피노의 수가 총 5만여 명에 이른다고 했다.
코피노 문제는 주로 한국 남성이 필리핀에 체류하거나 여행 중에 현지 여성과의 관계를 통해 아이를 낳고, 이후에 그 아이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음으로써 발생한다. 이런 상황은 개인적 문제를 넘어 사회적·법적 문제로도 연결되며 국제적인 관심을 받고 있는 이슈다.
필리핀에서도 큰 사회 문제로 인식되면서 양육비 미지급 문제나 법적 책임 문제 등이 논의되고 있다. 아이들은 주로 어머니와 함께 생활하지만 한국인 아버지의 지원이 없기에 경제적 어려움을 겪기 마련이다.
구 대표는 애초에 양육비 문제와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 연세대 사회사업학과 83학번인 그는 화곡 대성학원 원장을 지냈다. 매일 14시간씩 일에 몰두하는 워커홀릭이었던 그는 40대 후반 어디에도 구속받지 않는 ‘자연인’이 되고 싶었다고 한다.
“제가 학원 강사로 일하다가 원장을 맡게 되면서 1년 365일 중에 딱 하루만 쉬고 364일을 일했어요. 하루에 14시간씩 일하다 보니 어느 순간에 번아웃(생리적·심리적으로 지쳐 탈진된 상태)이 오더라고요.”
그는 인생 제2막을 위해 필리핀으로 은퇴 이민을 떠났다. 한국을 벗어나 아내와 자녀들과 유유자적한 삶을 살고 싶었다. 하지만 운명의 장난인지 필리핀에서 만난 한 코피노 맘의 사연이 그를 전혀 다른 인생의 길로 내몰았다.
“필리핀에서 한 코피노 맘을 알게 됐죠. 한국인 유학생과의 사이에서 낳은 한 살배기 딸이 병으로 죽었다고 해요. 서럽게 울더군요. 남자는 임신 사실을 알고 ‘부모님 허락을 받고 오겠다’며 한국으로 떠난 후 종적을 감췄고요. 분노가 치밀었죠.”
이 일을 계기로 코피노 문제에 눈뜨게 되면서 그는 2014년 겨울 ‘WLK(We Love Kopino)’를 설립했다. 이후 ‘코피노 아빠 찾기’ 사이트를 만들고 한국 법무법인과 양육비 청구 소송을 진행했다. 코피노 아빠의 대부분은 1990년대 중반 이후 필리핀에서 공부한 한국 유학생이거나 필리핀으로 어학연수 간 직장인들이었다.
WLK는 해마다 100건가량의 양육비 청구 소송을 진행했다. 승률은 95% 수준이다. 그는 이 일을 하면서 코피노 아빠들로부터 신변의 위협을 받거나 여러 음해로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WLK에서는 코피노맘들이 양육비를 받도록 소송 지원을 하는데 현지 스태프 인건비·사무실 운영비 등 코피노맘 소송 지원 비용이 발생한다. 소송에서 이겨 양육비를 받게 되면 그중 50%는 코피노 맘에게 줬고 20%는 법무법인이, 30%는 WLK가 가져갔는데 이를 돈벌이로 이용했다고 방송이 되면서 곤욕을 치러야 했다.
“코피노 관련 소송을 진행할 때 한국 변호사들에게 비용이 얼마나 들겠냐고 물었더니 공익적으로 도와준다고 해도 600만 원에서 800만 원 정도는 받아야 한다고 하더군요. 코피노들은 그 돈을 마련할 수 없잖아요. 그래서 변호사들에게 물어봤죠. ‘이 소송이 복잡한가요?’ 복잡하지 않다고 하더군요. 애 아빠가 누구인지만 확인되면 이길 수 있는 소송이니까요. 그래서 변호사들에게 후불제로 진행하게 하고 승소 후에 받은 돈을 나누는 방식으로 하자고 제안했죠”
그는 당시 문제를 제기한 방송이 한국 법조계의 실상은 외면한 채 무한정 공익 기준을 높여 코피노에 대한 현실적인 해결을 어렵게 했다고 지적했다.
“여전히 상황은 변하지 않았어요. 상대방이 양육비를 안 주려고 작정하면 법적으로 그걸 강제할 방법이 사실상 없죠. 그래서 한국에서 양육비 피해자가 이렇게 많고 미지급률이 80%나 되는 겁니다. 필리핀에 있는 코피노 아이들은 말할 것도 없고요.”
양육비 해결을 위한 법안 통과 촉구
구 대표는 OECD 회원국 중 양육비 미지급을 아동학대 범죄로 취급하지 않는 나라는 한국밖에 없다며 강력한 제재 수단이 필요하다고 거듭 강조했다. 세계경제 10위권의 대국답지 않다는 얘기다.
미국에서는 주에 따라 양육비를 지급하지 않은 사람에게 최대 10년의 징역형을 선고할 수 있다. 더 나아가, 국세청(IRS)·사회보장국(SSA)·연방수사국(FBI)까지 동원되어 양육비를 강제 징수한다. 양육비 미지급자의 신상이 공개될 때는 사진뿐만 아니라 신장·체중·눈동자 색깔까지 상세하게 기록한다. 이는 양육비 미지급자에 대한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며, 엄격한 법적 제재를 통해 이를 예방하려는 목적에서 비롯된 사회적 조치다.
“양육비 해결하는 사이트에 신상 공개된 사람들 98%는 본인이 경제적으로 어렵다고 주장해요. 그러나 진짜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죠. 이건 지출 우선순위의 문제예요. 지출에서 양육비가 1순위가 돼야 하는데 현실은 그렇지 않죠. 자기 생활‧용돈‧품위 유지‧경조사 등이 우선이 되고 양육비는 한 12번째쯤으로 밀리는 거죠. 그러니 줄 돈이 없다고 하는 거예요.”
그가 생각하는 양육비 해결책은 양육비 이행강제 간소화와 양육비 미지급자에 대한 처벌 강화다. 양육비를 주지 않은면 큰 불이익을 당하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22대 국회에서도 양육비 이행강제법이 통과될 가능성이 낮다고 본다.
“지금보다 훨씬 강력한 제재 법안들이 발의가 돼 있지만 언제 통과될지 기약이 없죠. 21대 국회에서도 폐기되었죠. 4년 동안 통과를 못하고 있어요. 이번 국회에서도 통과된다는 보장이 없죠.”
그는 우리 사회가 양육비 미지급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모르고 있는 것이 아니라고 했다. 다만 양육비 피해자들이 힘없는 존재들이기에 그들의 고통은 쉽게 외면당하고 있을 뿐이라고 짚었다.
“저출생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국가가 어마어마한 돈을 쏟아붓고 있잖아요. 근데 근본적으로 이런 의심이 들어요. ‘개식용 금지법’ 최고형은 3년 이하 징역입니다. 그런데 아이들의 양육비 미지급자에 대한 최대 형사 처벌 형량은 고작 1년 이하 징역이에요. 아이들의 권리가 반려견만도 못한 현실인 거죠. 태어난 아이들의 권리가 반려견만도 못한데 어떻게 아이를 낳으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화성=임한상 기자
◆구본창 대표 프로필
△1963년 충남 부여 출생
△연세대 사회사업학과 졸업
△화곡 대성학원 원장
△2014년 ‘WLK’ 설립
△2018년 양육비해결하는사람들 대표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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