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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중랑구 망우리하면 언뜻 공동묘지가 떠오른다. 한식이나 추석 무렵 성묘객이 이곳을 빼곡히 메웠던 기억이 난다. 망우리공동묘지와 관련한 섬뜩한 귀신 얘기도 많았다. 매장 문화가 대세이던 시절 망우리 공동묘지에는 무려 수만 개의 묘지가 조성돼 있었다.
근심을 잊는다는 뜻의 ‘망우(忘憂)’라는 낱말이 들어간 명칭은 중랑구 망우동 외에 전국 여러 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임진왜란 때 의병장으로 활약한 곽재우의 호가 망우당인가 하면 경기도 파주시와 양주시에도 망우리 마을이 있다. 망우라는 낱말이 들어간 지명은 묘지나 정자와 관련이 있으며, 걱정을 잊고 쉬는 곳이라는 의미를 갖는다.
조선을 세운 태조 이성계가 한양에 도읍을 정하고 현재의 동구릉(경기 구리시 인창동)을 답사한 뒤 환궁하던 중 망우고개 위에서 발길을 멈추고 “내가 명당자리를 얻었으니 근심을 잊을 수 있겠다”고 경탄한 데서 ‘망우’라는 이름이 붙게 됐다고 한다.
망우리는 더 이상 공동묘지가 아니다. 한강이 굽이굽이 내려다보이는 아차산 자락에 이름만 들어도 익히 알 수 있는 근현대사 역사적 인물들이 이곳에 줄지어 잠들어 있다. 시민과 역사가 함께 호흡하는 공간으로 거듭 태어났다.
유관순 열사·만해 한용운·소파 방정환·비운의 천재화가 이중섭, ‘목마와 숙녀’로 유명한 박인환 시인 등의 묘소를 비롯해 죽산 조봉암 등이 잠들어 있다. 이곳을 방문하면 잊고 지내던 인문 정신을 깨우치게 된다. 아름드리 나무 그늘이 있고 길이 잘 닦여 있어 걷기에도 편안하다. 숲에선 새들의 울음소리가 시끄럽다.
‘모란이 피기까지는’이라는 서정시를 지은 영랑 김윤식의 유택이 얼마 전 망우역사문화공원에 재조성됐다. ‘북의 (김)소월·남의 영랑’이라 일컫는 민족시인이다. 일제 강점기에 고향인 전라남도 강진 장날에 독립만세운동 준비 중 구속돼 대구형무소에서 6개월 복역했던 영랑은 6·25전쟁 중 사망했고, 1954년 망우리에 안장됐으나 미망인과 함께 용인천주교공원묘지로 이장해 함께 묻혔다가 망우리로 돌아왔다. 국가보훈부의 애국선열묘역 지정 후 첫 이장이라고 한다.
영랑의 재안장으로 망우역사문화공원이 우리 근현대사의 박물관으로 거듭나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청명한 계절에 접근성이 좋은 이곳을 가족·친구들과 함께 찾아도 좋을 듯하다.
박병헌 취재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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