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움과 함께한 70년’ 회고전 여는 황갑주 한국귀금속전통공예연구소장 [인싸의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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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0일 용산아트홀서 회고전… 15일 오프닝
‘은 문자투각’ 창안… 기증관 설립이 꿈

임유이 기자 기자페이지 + 입력 2024-10-15 15:10:15

▲ 용산아트홀 전시장 개인 수집품과 은 문자투각 앞에 선 황갑주 장인. 임유이 기자

주얼리 세공에 있어 국내 최고의 실력자로 인정받고 있는 황갑주(85) 한국귀금속전통공예연구소장의 회고전이 용산아트홀에서 15일부터 20일까지 열린다. 오프닝은 15일 오후 3시.

‘한민족 5000년 귀금속보석 전승공예 입문 70주년 회고전 법고창신’이라는 제목의 이번 전시는 주얼리와 함께한 70년 인생을 정리하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이에 평생 수집해 온 예술 작품 외에 선조들의 보물을 재현한 작품과 남녀 신변장신구 그리고 국내에서 유일하게 개발한 은문자투각 등 350여 점을 한자리에서 선보인다.

큰 전시를 앞두고 작품 디스플레이에 여념이 없는 황갑주 장인을 용산아트홀 전시장에서 만났다.

기술을 배워야 굶지 않는다

▲ 황갑주 장인은 기술을 배워야 밥을 굶지 않는다는 아버지의 말씀에 따라 세공 일에 투신하게 됐다. 용산공예관

그는 일제강점기던 1939년 전남 순천시 저전동에서 태어났다. 저전이라는 그의 호는 그의 출생지에서 따왔다. 그의 집안은 대대로 천주교를 믿었다. 그 역시 모태신앙이다. 평탄한 유년기를 보내던 중 여수·순천사건과 6·25전쟁이라는 국가적인 대사건이 연달아 터진다. 간신히 목숨은 부지했지만 집안은 빈곤의 나락으로 추락하고 만다.

“아버지께서 기술을 배워야 밥을 굶지 않는다고 하셨어요. 당시 저희 세례대자인 조재호 선생께서 보석당이라는 금은방을 운영하고 계셨는데 세공 일을 배워 보면 어떻겠냐고 하여 이 세계에 입문했습니다.”

선생 밑에서 5년간 일을 배운 그는 서울로 올라오게 된다. 그는 중구 신세계백화점 금·은부 1호점에 취업해 조진옥 선배 밑에서 2년간 금·은 세공 기술을 전수받았다. 이후 한국은행 앞 백금보석 특수공방으로 직장을 옮긴다.

“2년가량 근무하는데 사장인 김기철 선배가 공방을 맡아서 해보면 어떻겠냐고 제안을 해왔습니다. 백금보석의 부채 일부를 떠안는 조건으로 공방을 인수했죠.”

새로운 상호는 보영사로 했다. 그의 나이 24세 때의 일이다. 다행히 금·은상 업주들의 적극적인 지원 덕에 사업은 번창일로를 달렸다. 그는 사업에 매진하는 한편 재능 있는 세공 기능인을 발굴하는 일에 힘을 쏟았다. 이에 1969년 4월에는 제자 박천수가 경인 지역 기능올림픽에서 1위를 차지하는 쾌거를 달성했다.

명동 금은방 상권을 휘어잡다

작품성과 성실성을 동시에 인정받은 보영사는 미도파 백화점·롯데 1번가·코스모스 백화점 등 명동 상권을 휘어잡게 된다. 점주들의 요청으로 각 백화점에 지점을 내게 된 것이다. 당시 한·일 관계 정상화로 국내의 금·은상이 호경기였던 것도 매출 증대에 한몫했다. 당시 그가 운영하는 금은방 직원의 수가 50명을 넘어섰다고 한다.

1975년 5월 재단법인 한국귀금속보석기술협회가 설립되면서 그는 설립이사와 초대 명예회장직을 맡아 5년간 활동하게 된다. 협회장을 맡는 동안 전국 세공인의 인권 보호와 단합에 앞장섰다.

1977년 8월에는 미도파백화점 4층 장미화랑에서 국내 최초로 한국 귀금속·보석 작품전을 열었다. 이에 만족하지 않고 미국 뉴욕과 LA 귀금속 시장을 돌아보면서 기술개발에 박차를 가했고 보석감정기·보석감별기 등 각종 세공 관련 공구를 도입해 협회의 발전을 이끌었다.

국내 유일 ‘은 문자투각’ 창안

“단군이 이 나라를 건국한 이래 5000년간 귀금속 보석문화는 석기시대의 옥(玉)으로부터 고구려·백제·신라를 거쳐 고려·조선·근현대에 이르기까지 도자기를 모티브로 한 작품부터 남녀 신변 장식품에 이르기까지 끊임없는 발전을 거듭했습니다.”

그가 귀금속 보석 세공에 입문할 당시만 해도 작품의 주제가 신변장신구에 한정되었다. 그러나 그는 백하 김정섭으로부터 전수받은 금속공예 전통기법과 조각기법을 바탕으로 법고창신(法古創新: 옛것을 본받아 새롭게 창조)의 정신을 살려 삼국 시대부터 조선 시대에 이르는 사리장엄구·고분 출토품 등 무수한 전통공예품을 재현해 왔다. 그 일부는 전북 익산 보석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또한 남주 홍신표로부터 문인화를, 일주 김충현과 벽산 김창섭에게서 익힌 서예는 ‘은(銀) 문자투각’이라는 그만의 독창적인 작품세계를 구축하는 데 중요한 초석이 되었다.

은 문자투각은 국내 최초·국내 유일의 특수 기술로 순은을 넓게 단조(두들김)하여 붓으로 문자를 써 붙이고 구멍을 뚫어 제작한다. 주로 좌우명·가훈·명언·명시 등을 한글 캘리그라피를 이용해 작품화한다. 그는 현재 문자투각의 저변확대를 위해 용산공예관 공방을 열고 제자를 양성하고 있다.

장인 황갑주에게는 작은 소망이 있다.

“70주년 회고전이 끝나면 졸작이지만 기증관을 세우고 싶습니다.”

이에 이제껏 모은 수집품과 도록에 올린 전 작품을 전시관에 기증할 예정이다.

회고라 함은 지난 일을 돌이켜 생각한다는 뜻이지만 내일의 밑거름이 된다는 점에서 그의 회고전은 시작전이 되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