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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 해는 망했는데 내년은 좋으려나?', '‘이번 해는 망했고, 다음 해는 좋으려나?’ 새해 운세가 궁금하...'))
연말이 다가온다. 마음은 벌써 새로운 시작에 닿았다. 성격 급한 나는 올해를 마무리하고 돌아보기보다 일단 다 털어 내고 새 판을 펴고 있다. ‘이번 해는 망했고, 다음 해는 좋으려나?’
새해 운세가 궁금하다. 누구는 삼재가 끝나 간다고 좋아하고 누구는 삼재가 시작된다고 울상이다. 운세란 무엇인가. 하늘과 땅의 기운이다. 이제는 문명의 품에 안긴 인간이 본래 자연에서 온 존재임을 실감하는 터전이다.
운세는 돌고 도는 것이니 공평하다. 해마다 오는 세운(歲運)은 누구에게나 동일한 기운으로 오지만 10년을 주기로 바뀌는 대운(大運)은 각자 다르다. 인생 전반부에 좋았다면 후반부는 힘들고, 또는 그 반대이기도 하다. 재미있는 것은 60대에 오는 여섯 번째 대운은 누구에게나 위기 또는 기회의 큰 전환점이 된다는 점이다. 옛날에야 60세를 사는 것도 힘들었으니 6대운의 영향이 무색할 수 있었겠지만 100세를 넘어 120세를 바라보는 현대의 6대운(60대)은 인생의 거대한 획이 된다.
내가 세상에 던져지는 시각, 세상과 만나는 시각이 바로 나의 운명이라면 그것이 나의 모든 생을 결정해 줄까. 다른 말로 하면 내가 부모님으로부터 받은 생명의 비밀코드인 유전자가 나의 삶을 규정할까. 답은 ‘전적으로 그렇지는 않다’이다. 생물학에는 ‘후성 규칙’이란 게 있기 때문이다. 나는 어머니와 아버지 두 분의 성염색체로부터 매우 복잡하기 짝이 없는 유전자 조합을 받아 태어난다.
우연과 필연의 이중주가 ‘나’이다. 나의 유전자는 정해져 있지만 나의 운명은 그렇지 않다. 후성 규칙은 끊임없는 조율의 법칙이다. 살아가면서 나의 유전적 기질을 세상에 맞대어 보고 순간순간 수정하는 것이다. 유학에서 말하는 ‘수신(修身)’의 작업이다. 욱하는 성질 때문에 실패를 맛보면 성질을 죽이려고 노력하게 되고, 시작만 잘하고 마무리를 못하는 경우는 뒷심을 키운다.
생명이란 게 살아내야 하니 바보가 아니라면 시행착오를 거쳐서 이러한 과정에 들어서게 되어 있다. 조숙하다면 10대나 20대에 자기수정 작업이 끝나 후성 규칙의 도움을 받겠지만 늦어도 6대운에 들어서면 조율할 줄 알게 된다. 신기한 것은 우리가 자신을 개선하면 세포 속 화학물질도 이에 따라 변화가 일어난다는 점이다. 참으로 놀랍지 않은가. 새로운 세포를 가지게 된 나는 새로운 존재가 된다. 자연스레 이전의 나와 다른 마음이 되어 다른 인생을 산다.
다시 생각해 보자. 유전자는 자연이다. 저절로 그렇게 타고났으니 나의 의지가 개입될 여지가 전혀 없다. 나라를 선택할 수도, 시대를 선택할 수도, 계절을 선택할 수도, 부모를 선택할 수도 없다. 그런데 잘 살다 보면 유전자에 변화가 온다는 것이 후성 규칙이다. 인간의 의지와 노력이 자연에 개입한 일대 사건이다. 좀 더 확장해서 보면 인간이 자연에 힘을 보태 자연을 변화(개선)시키는 일이다. 이것을 ‘천인상조’라 한다. 인간이 자연을 돕는 천인상조는 아주 흔하다.
작물을 보자. 우리가 즐겨 먹는 양배추는 동그랗고 단단하다. 하지만 원래 모습은 사방으로 뻗쳐 자란 자유로운 잎을 가진 식물이었다. 육종학자들의 쉬임없는 노력으로 이 이파리들은 옹골차게 안으로 뭉쳤고 싱싱하고 달콤한 양배추가 되었다. 가축도 마찬가지다. 인간이 사냥한 거대 동물의 살점을 얻어먹으려고 기웃거린 호기심 많고 겁없는 늑대를 살갑게 순치하여 개로 만들었다.
양배추와 개가 없다면 우리의 삶의 질은 뚝 떨어질 것이다. 그들의 타고난 ‘자연’을 변화시킨 인간의 지혜가 놀랍지 않은가! 주로 하늘이 인간을 돕지만 이처럼 인간이 때때로 자연을 돕기도 한다. 사마천은 ‘사기’에서 흥미로운 말을 했다.
“하늘은 불완전한 까닭에 세상 사람들이 집을 지을 때 기와 세 장을 붙이지 않고 늘어놓아 하늘에 응한다. 천하에는 등급이 있고 사물은 불완전하게 생겨난다.”
하늘(자연)조차 기왓장 세 장만큼은 불완전한 구석이 있으므로 인간이 하늘을 도와야 한다는 적극적인 발언이다.
이러한 마음은 인간 문명을 발전시켰다. 문명은 자연을 돕고 좋은 쪽으로 변화시킴에서 비롯됐다. 지금은 개선을 넘어 개악이 되는 불행한 결과로 치닫고 있지만 시작은 그러했다. 자연으로서의 나, 태어난 그대로의 나는 어떤가. 내가 지닌 하늘은 어떤가. 나는 이 하늘(천성)을 돕고 있는가. 나의 유전자는 좋아지고 있는가. 후성 규칙이 내 안에서 작동할 여지가 있는지. 돌고 도는 운세, 돌고 도는 자연 속에서 내가 나를 적극적으로 아끼고 사랑하고 있는지를 물어볼 차례이다. 이 가을, 다음 생을 기약하는 낙엽을 밟으며 내 마음도 꼭꼭 밟아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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