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카이 View] ‘민주주의는 피를 먹고 자란다’는 이들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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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양 기자페이지 + 입력 2024-11-22 00:02:40

민주주의의 중심은 국민의 참여와 이를 기반으로 한 신뢰다. 하지만 이 두 요소가 온전히 작동하지 못하면 민주주의 체제는 흔들리게 된다.

최근 미국 대선에서 이 요소들의 중요성을 명확히 보여 주는 두 가지 사례가 있었다. 하나는 전통적으로 정치에 참여하지 않던 아미시 공동체의 선거 참여이고, 다른 하나는 선거 유세 과정에서 보여 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의 부정선거 방지를 위한 대대적 노력이다. 이 사례들은 민주주의를 확립하고 강화하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귀중한 교훈을 준다.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랭커스터 카운티에 집단 거주하는 아미시는 원리주의 개신교 교파의 하나로 현대 문명을 거부하고 자신들만의 전통을 고수하며 살아가는 공동체로 잘 알려져 있다. 아미시는 정치에 무관심한 집단으로 알려져 있었다. 종교적 이유로 세속적인 일에 관여하지 않는 것을 미덕으로 삼으며, 투표는 물론이고 정부 정책에 대한 의견도 거의 내지 않았다.

그러나 최근 몇 년 사이 자신들의 생활 방식과 전통이 외부 세계의 정책과 규제에 의해 위협받으면서 그들의 태도에 변화가 생겼다. 대표적인 사례는 민주당 주 정부가 공중보건과 안전을 이유로 아미시 전통의 유기농 방식으로 생산된 ‘(비살균) 생우유’ 제품에 대한 엄격한 기준을 도입하고 단속한 것이다. 이는 단순한 규제가 아니라 아미시의 전통적 농업 방식 자체를 부정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 2024년 미국 대통령 선거 유세 기간에 ‘근면·성실함을 장려하고, 부당한 이익이나 혜택을 거부한다’는 아미시의 전통 가치를 표현하는 ‘Hard Work=Yes, Illegal Freebies=No’와 함께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후보를 지지하는 대형 입간판이 펜실베이니아주 랭커스터 카운티의 아미시 집단 거주 지역에 세워져 있다. ‘X’에서 캡처

수세기 동안 외부와 거리를 두며 정치와도 단절된 삶을 이어 온 이들이 자신들의 전통을 지키기 위해 매우 이례적인 정치 참여를 결단했다. 이들은 2024년 대선을 앞두고 ‘아미시는 트럼프를 지지한다(Amish for Trump)’는 구호 아래 투표를 통해 정치적 목소리를 내고 자신들의 가치와 권리를 보호하려 나섰다.

트럼프의 작은 정부와 자율성 강조 정책이 그들의 철학과 부합했기 때문이다. 그 결과 아미시의 투표율은 급증했으며, 이는 주요 경합 주인 펜실베이니아에서 트럼프의 승리에 크게 기여했다. 전통을 지키기 위해 목소리를 낸 아미시의 사례는 민주주의 사회에서 권리를 지키기 위한 참여가 얼마나 중요한지 보여 준다.

하지만 민주주의의 정당성을 유지하려면 시민 참여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참여와 함께 공정성과 투명성이 보장될 때 비로소 진정한 민주주의가 실현된다. 트럼프 캠프가 변호사 6500여 명을 동원해 선거 감시 체계를 강화한 것도 바로 이 점에서 비롯됐다. 트럼프와 공화당은 2020년 대선에서 승리를 빼앗아 간 부정선거 논란을 막기 위해 신뢰할 수 있는 선거 절차를 만드는 감시 활동을 강화했다.

여기에 더해 트럼프는 신분증 확인 절차를 강화하고, 전자투표 대신 종이 투표를 사용하는 개선 방안을 제시한다. 또한 투표일을 공휴일로 지정해 하루 동안 모든 유권자가 투표하도록 하여 불법과 조작의 소지가 있는 우편투표를 제한하는 전반적인 선거 제도 보완을 제안했다. 이는 선거 결과의 투명성을 높이고 시스템 오류나 조작 가능성을 줄이기 위한 것이다. 이러한 노력은 단순히 특정 정당의 승리를 넘어 국민이 선거 결과를 믿고 따를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한다는 의미를 갖는다.

아미시의 사례와 트럼프의 노력을 통해 우리는 민주주의는 참여와 신뢰라는 두 축으로 지탱된다는 것을 확인하게 된다.

참여 없는 민주주의는 국민의 뜻을 반영하지 못하고, 신뢰 없는 민주주의는 체제의 정당성을 잃게 된다. 그래서 국민 개개인이 자신의 권리와 책임을 자각하도록 하는 교육이 필요하다. 투표는 단순한 행위가 아니라 자신의 가치와 신념을 반영하고 공동체의 미래를 결정짓는 중요한 수단이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무엇보다 투명한 선거 시스템 구축이 중요하다. 우리의 경우에는 투표함의 이동 없이 동일한 장소에서 투·개표를 진행하고, 사전투표 제도를 보완하거나 본 투표일에 연계하여 투표지 관리의 신뢰를 높일 필요가 있다. 또한 선거관리를 주관하는 중앙선거관리위원회와 잘못된 행위를 심판하는 법원 간의 이해충돌을 방지하기 위해 법원장의 선관위원장 겸임을 금지하는 식으로 선거관리 체계를 개선하는 것도 제시되고 있다.

민주주의는 결코 저절로 유지되지 않는다. 국민 각자가 민주주의의 가치와 책임을 되새기고 지속적인 참여와 신뢰를 통해 부단히 노력해야만 그 체제를 지켜 나갈 수 있다.

2020년 제21대 국회의원 총선 이후 시민단체들의 반복적인 부정선거 의혹 제기를 정부와 언론, 그리고 정치권이 여전히 외면하고 있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민주주의는 피를 먹고 자란다’며 폭력을 미화하거나 선동하는 괴물들의 출현을 막으려면 이제 우리가 행동에 나서야 한다.

허양 hy@skyedaily.com 기자페이지 +